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달 Jan 09. 2023

조롱이 상처가 되지 않는 법

"엄마, 친구들이 나보고 자꾸 짜장머리라고 놀려. 나는 왜 이런 머리로 자라는 거야? 놀림받는 거 싫어."


처음부터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린 아이든, 다 큰 성인이든 '말'에 신경 쓰이는 건 마찬가지다. 초등학생 때 울면서 엄마한테 하소연한 적이 있다. 친구들은 모두 길게 뻗은 머리카락인데 혼자만 꼬불거리는 곱슬머리는 놀림받기 딱 좋은 타깃이었으니 말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친구들이 놀린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그냥 무시하면 친구들도 더는 안 놀릴 거야. 네가 안 들은 척 무시하면 돼."


내가 원했던 건 그저 나를 놀리는 친구들을 혼내주겠다는 뉘앙스 정도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우리 엄마는 그때 당시 몰랐을 거다. 나는 놀림을 받았을 때 무시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싸워보기까지 했으니까. 모든 게 소용없다는 걸 알고 엄마에게 울면서 이야기를 했던 건데 엄마는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해결책을 제시해줄 뿐이었다. 친구들도 미웠지만 놀림받는 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엄마도 미웠다.


희롱과 조롱을 무시하라는 말은 오히려 독이 된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조롱에 반응해주지 않으면 반응을 할 때까지 놀린다는 특징을 엄마는 과연 몰랐을까.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놀림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다. 아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쓸데없는 조롱을 듣는다. 머리에 새치가 난 것부터 시작해서 '누구 닮았다', '저번에 보니 술을 못 마시는 거 같다' 등등. 더 나아가서는 특정 브랜드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브랜드 옷을 입으면 왜 그런 브랜드를 입느냐는 소리까지 들어봤다. 어떡해서든 논란을 조장하려고 생각 없이 뱉는 상대방의 말이 나에게는 생길 필요가 없는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고 그렇다고 반응을 해주면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제는 혐오스러워졌다.


엄마는 어른이었으니깐 무시하라는 말이 성인들에게는 통할까? 어림도 없다. 사람이란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남을 깎아내리는 재주가 있으니 말이다. 무시한다고 달라졌다면 이 세상에 왕따와 외톨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고민 끝에 '무시'하는 행위보다 반대로로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이후 곱슬머리로 창피한 날들을 보냈던 유년 시절과는 다르게 '펌'을 해서 새로운 머리 스타일로 살아본다거나 새치가 났다고 놀려댔던 사람 앞에 먼저 가서 머리에 새치가 났는지 안 났는지 확인해달라고 한다. 대학은 나왔는지, 연봉은 얼만지, 어디서 일하고 연애는 하는지 물어보는 질문에도 숨김보다는 있는 그대로 답해줬다.


신기하게도 떳떳하게 약점을 말했더니 그들은 더 이상 나의 약점에 대해 묻지 않는다. 위축되어야 할 내가 자신감이 넘쳐 보였으니 말이다. 조롱을 통해 자신을 세워야 하는데 도리어 당당하게 약점을 드러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겠지.


약점의 매듭은 헐렁하면 잡아당기기 쉬워서 풀어헤쳐 상대방이 가지고 놀기 쉽지만 단단하게 조인 매듭은 아무리 힘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풀리지 않는다. 나의 약점과 조롱이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 단단히 묶은 약점을 드러내면서 살고 있다. 그 누가 풀어헤치지 못하고 다른 곳에 묶이지 않도록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미용실에서 소개팅을?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