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을 향한 계승과 혁명
나는 록 밴드 애니메이션을 상당히 좋아한다. 록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감상하게 된 작품들 중 유명한 것들을 추려보자면 <케이온!>이나 <봇치 더 록!>, <BanG Dream!> 애니메이션 시리즈 등이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선호에도 불구하고, 오랜 감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록 밴드'라는 장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작품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어떤 작품들은 록 밴드의 구성을 빌려 일상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작품들은 록 밴드를 그저 캐릭터들의 관계를 확립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록 밴드'라는 장르 그 자체를 완벽하게 파고든 작품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나의 앞에 한 작품이 당도했다. <걸즈 밴드 크라이>. 제목부터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그런 만큼 나는 의문을 품었다. '차세대 걸즈 밴드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되었던 <BanG Dream!>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상태에서 <걸즈 밴드 크라이>라는 새로운 IP의 런칭이 과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기우였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록 밴드라는 장르의 정체성을 끝까지 놓지 않은 채, 3D CG 애니메이션의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론으로 록 밴드의 정체성을 표현해 내면서 TV 애니메이션 <걸즈 밴드 크라이>를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역사로 남게 될 걸작으로 탄생시켰다. 이번 글에서는 그 탄생의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할 생각이다.
근원을 향하여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록 밴드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자부한다. 그런 만큼, 최근의 록 밴드 애니메이션들에는 감탄과 실망이 교차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난 2년 간을 되돌아보도록 하자. TV 애니메이션 <봇치 더 록!>은 일상 코미디 장르로서는 걸작의 반열에 들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록 밴드라는 장르는 그저 코미디 일상 장르를 특별하게 꾸며줄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사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케이온!>이 더 뛰어나기도 하다). 또한,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It's MyGO!!!!!>의 경우에는 훌륭한 라이브 장면을 통해 록 밴드라는 장르에 다가가는 듯했지만, 결국 관계가 장르에 선행해 버리고 만다는 점에서 아쉽다. 'MyGO!!!!!'라는 밴드는 다섯 멤버들이 백합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차세대 걸즈 밴드 프로젝트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왜 밴드를 하는가?'라는, 장르적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MyGO!!!!!'는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답은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BanG Dream! It's MyGO!!!!!>라는 애니메이션은 애초에 '그들'을 극대화하여 수작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고, 그렇기에 밴드 결성까지의 이야기만을 다룬 다음 소소한 후일담은 게임 등의 미디어믹스로 다루고자 하는, 즉 음악의 이유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애초부터 아니며, 그 결과물을 폄하할 생각 역시 나에게는 없다. 다만, 나는 아쉬웠을 뿐이다. 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걸즈 밴드 크라이>가 너무나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노력이 화면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기 때문에. <걸즈 밴드 크라이>의 주인공 밴드 '토게나시 토게아리'가 추구하는 것은 빙자를 통한 일상의 지속도,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로서의 국한도 아니다. 그들은 과거의 록 밴드 애니메이션들이 외쳤던 '노려라 무도관!'을 다시 한번 외치면서 전통을 계승하고, 이를 중심으로 '토게나시 토게아리'라는 밴드를 정립한 다음, 끝내 해내고 싶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것은 가시적으로는 밴드로서의 성공으로 나타나며 록 밴드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심층적으로는 '우리 마음속의 모든 것을 외쳐내어 그것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어떤 영향이든 끼쳐내겠다'는 음악 정신을 선포한다. 또한, 그러한 음악 정신이 손가락을 내세우는 행위로 이미지화되어 시청자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까지 하면서, <걸즈 밴드 크라이>의 장르적 정체성은 공고해져 간다.
최근의 록 밴드 애니메이션들은 밴드를 결성했을지언정 이와 같은 음악 정신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봇치 더 록!>이나 <BanG Dream! It's MyGO!!!!!> 등의 작품들에서 밴드란 캐릭터들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공간일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다. 그러나 <걸즈 밴드 크라이>는 만남, 갈등, 화해, 돈독 등의 모든 결성 과정이 밴드로서의 성공과 음악 정신의 선포라는 대전제로 향하도록 만드는 이야기를 통하여 결국 특별해진다. 모모카와 니나의 갈등, 토모와 스바루의 고민, 니나와 가족들의 갈등과 같은 멤버들의 모든 성장통들이 결국에는 록 밴드라는 근원으로 항하기 위한 자양분으로 해소되어 가는 것이다. 성장통과 함께 결성된 밴드와 그들이 향하고자 하는 대전제의 이야기, 그것이 결국 <걸즈 밴드 크라이>라는 작품을 '록 밴드' 애니메이션으로서도, 이를 더 높은 곳에서 포괄하는 '음악' 애니메이션'으로서도 걸작으로 남게 만든다.
계승과 혁명
3D CG는 그러한 장르적 정신을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로 표현해내기 위한 수단이다. 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이어져온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3D는 언제나 부수적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작화로 움직임을 부여하기에는 자본과 인력이 아까운 사물이나 배경 등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곤 하던 것이 3D CG였으니까. 그러나, <BanG Dream!>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등장과 함께 일본의 3D CG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되었다. 작화의 한계로 인하여 존재했던 여러 제약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산지겐의 <BanG Dream!>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그 사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It's MyGO!!!!!>에서 그 정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3D CG의 활용 덕분에 시도할 수 있게 된 다양한 카메라 앵글의 적용으로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무대 위에서 단번에 발산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훌륭한 라이브 장면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3D CG 애니메이션은 셀 애니메이션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였다. <BanG Dream!>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위시한 여러 3D 애니메이션들은 결국 셀 애니메이션의 영향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작되었던 상당수의 3D CG 애니메이션들은 표현법에 있어 늘 셀 애니메이션의 영향에 구속되어 있었다. 셀 애니메이션은 시간, 인력, 자본 등의 문제로 인하여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조절하거나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이야기를 진행하는 일종의 속임수를 사용해 왔다.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본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3D CG 애니메이션들은 이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셀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모방하기만 할 뿐이라면, 결국 3D CG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은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시 격의 작품으로 역시 <BanG Dream!>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들 수 있다. 물론, 산지겐은 앞서 이야기한 일본 셀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3D CG로서 더욱 공고히 다지고자 하는 콘셉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특유의 캐릭터 디자인이나 프레임 조절 같은 특징은 모방하되, 작화 붕괴와 같은 단점은 원천 차단하여 셀 애니메이션의 작풍을 흔들림 없이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훌륭하게 증명해 보인 작품이 바로 <BanG Dream! It's MyGO!!!!!>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3D CG 애니메이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어째서 3D CG로 만들어져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에 완전한 대답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걸즈 밴드 크라이>는 셀 애니메이션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3D CG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걸작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걸즈 밴드 크라이>의 3D CG는 이전의 것과 다르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조절하는 속임수를 기본적으로 적용했던 셀 애니메이션과 그 모방작들과는 달리 풀 프레임, 즉 24 프레임을 전부 표현해냄과 동시에 작화로는 완전히 구현할 수 없는 역동적인 카메라 구도를 잡아내고, 결정적으로 캐릭터의 모델링 자체가 일본의 셀 애니메이션 특유의 작풍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24 프레임은 영상 촬영의 기준점이다. 따라서, 그 안의 움직임 역시 24 프레임을 기준으로 한다. <걸즈 밴드 크라이>는 그 기준을 충족하며 카메라의 예술이기도 한 영상 예술의 근원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다가감'은 이어지기 시작한다. 역시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카메라의 존재를 완전히 구현할 수 없었던 셀 애니메이션과 달리, <걸즈 밴드 크라이>의 3D CG는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던 듯 다양한 촬영 구도를 시도한다. 라이브 장면들에서 보여주었던 현란한 화면 구도나, 실제 카메라의 렌즈 왜곡을 반영한 듯한 롱 숏 구도 등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러한 영상 예술의 본질, 카메라는 애니메이션 예술의 본질인 움직임과 융합한다. <걸즈 밴드 크라이>가 카메라의 특징만을 3D CG로 구현했을 뿐이었다면, 나는 이를 역사에 남을 작품으로 칭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걸즈 밴드 크라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 걸작이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3D CG는 셀 애니메이션과 달리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걸즈 밴드 크라이> 속 인물들의 움직임은 손 작화의 한계로 인하여 그려지지 못한 세밀함까지 전부 그려져 있는 움직임이다. 록 음악이라는 작품의 메인 장르를 표현하는 라이브는 물론, 이야기를 이어주는 다양한 감정적, 일상적 장면 속의 인물들은 모두 세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5화와 11화의 라이브, 7화의 휴게소 사진 촬영 장면, 그리고. 롱 숏 구도의 장면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그 안에서 세밀하게 움직이는 연주자들, 그리고 끝내 터져 나오는 하고 싶은 말들. 5화를 기점으로 <걸즈 밴드 크라이>는 걸작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했고, 11화에서는 이전부터 거론되었던 모든 장점들이 하나로 정립될 수 있었다. 심지어 산지겐이 오랜 시간 동안 노하우를 쌓아 완성해 낸, 무대 위에서 인물들의 모든 서사와 감정을 정립하고 단숨에 발산해 끝내 매듭짓는 궤변적인 연출을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록 밴드 애니메이션 제작에 데뷔하자마자 구사해 내었다는 점에서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이는 비단 장르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토게나시 토게아리'라는 밴드가 결성되고, 그들이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움직임은 역시 개입한다. '토게나시 토게아리'가 결성되어 가는 순간 촬영되는 사진, 그 촬영의 과정 속 움직임은 너무나 세밀하다. 바른 자세로 사진 촬영을 기대하는 니나, 그다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 티를 팍팍 내는 모모카와 토모,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하여 눈빛을 교환하는 스바루와 루파의 움직임은 한 화면 속에서 전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토게나시 토게아리'는 하나가 되어가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 이외에도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다른 셀 애니메이션 작품들에서는 제대로 그려내기 힘든, 롱 숏에서의 움직임을 3D CG의 힘으로 전부, 세밀하게 그려내는 디테일을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놓치지 않는다.
이로서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표현의 제약이 셀 애니메이션 대비 확고하게 덜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3D CG의 장점을 완벽하게 이해하여 애니메이션 예술의 근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제한 없이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모에와 데포르메의 계승을 통하여 결국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잇는다. 하지만, 나는 앞서 이야기하였다. 정작 모에와 데포르메의 총체가 되어야 할 <걸즈 밴드 크라이>의 캐릭터 디자인은 일본의 셀 애니메이션의 방식을 따르고 있지 않다고. <BanG Dream!>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셀 애니메이션을 의식하여 모델링의 선을 상당히 부각하는 것으로 셀 애니메이션 풍 3D CG 애니메이션을 추구하려는 것과 달리, <걸즈 밴드 크라이>의 모델링은 콘셉트 일러스트의 작풍을 반영하기는 했어도 기존 셀 애니메이션의 디자인과 이를 따른 3D CG 애니메이션의 모델링과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비디오 게임의 모델링과 비슷하달까?
그럼에도 <걸즈 밴드 크라이>의 모델링이 모에와 데포르메를 계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풍부한 표정 묘사에 있다. 나는 진지하게 일본의 3D CG 애니메이션들 중에서 <걸즈 밴드 크라이>만큼 표정 묘사를 제대로 해낸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장 산지겐의 작품들 속 표정 묘사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3D CG 애니메이션 영화 <낙원추방>에서 좋은 표정 묘사를 보여주었던 미즈시마 세이지 감독의 <D4DJ>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외하면 별로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전에 훌륭한 3D CG 라이브로 호평한 적이 있었던 <BanG Dream! It's MyGO!!!!!>도 표정 묘사에 있어서는 결국 아쉬움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않다. 상황에 맞는 다양하고 세밀한 표정 묘사들은 작품의 볼거리를 풍부하게 만듦과 동시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에와 데포르메를 표현한다.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 풍'과는 확실하게 다른 길을 걸음에도 불구하고 특색 있는 모델링과, 이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표정의 향연은 시청자로 하여금 재미를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모에와 데포르메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TV 애니메이션 <걸즈 밴드 크라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지금까지 이어왔던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3D CG '애니메이션'으로서 혁명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따라서, 나는 선언하고자 한다. TV 애니메이션 <걸즈 밴드 크라이>는 반드시 일본 3D CG 애니메이션의 변곡점이 되는 걸작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총평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TV 애니메이션 <걸즈 밴드 크라이>는, '록 밴드'라는 장르와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3D CG' 두 요소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고 전면적으로 내세운 끝에 걸작으로 거듭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르의 이름을 뒤집어쓴 채 다른 길로 빠져들었던 작품들과는 달리 끝까지 장르의 정통성을 추구하고, 분명 혁명을 주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성적인 방식에 구속되어 있던 3D CG를 드디어 독자적으로 활용해 낸 결과물로 등장한 <걸즈 밴드 크라이>, 이 애니메이션은 이전까지 시도된 적 없었던 새로운 방법론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진보적이고, 그럼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이덴티티를 이으며 '록 밴드'라는 장르의 정수를 지켜낸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걸즈 밴드 크라이>는 이들이 끝내 융화하는 작품이다.
나는 상극의 두 요소가 아름답게 융화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손가락을 내세우는 행위로 이미지화되는 지난날의 아픔과 록으로서의 승화, 이를 전부 잡아내고 표현하는 3D CG를 통하여 셀 애니메이션의 제약을 풀어내고 움직이는 화면. 이들의 아름다운 융화가 결국 <걸즈 밴드 크라이>라는 작품을 록 밴드 애니메이션을 뛰어넘은 음악 애니메이션으로 남도록 만든다. 소리와 박자로 나의 감정을 타인의 감정과 공명하도록 만드는 '음악'의 힘을 3D CG를 통하여 움직이도록 그려내어서, '애니메이션'으로 탄생시킨 결과물이 바로 <걸즈 밴드 크라이>인 것이다. 결국, 나는 줄곧 간직해 왔던 도발적인 생각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곧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변곡점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