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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너구리 DHMO Oct 04. 2022

자카르타 돌아다니기, 2018년 10월


생각난 김에 이제까지 다녔던 도시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인 자카르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 봤을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이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지구상 최대의 섬나라인데,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와 섬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섬이기도 하다. 이렇게 커다란 섬나라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으로 자카르타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도네시아에 관광을 간다고 하면 보통 나라 이름보다 더 많이 알려진 발리 섬을 찾거나, 배낭여행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신선한 여행지를 찾아 들어오곤 한다는 욕야카르타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 출장이 아닌 다음에야 오로지 여행 목적으로 자카르타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실제로 내가 출장으로 자카르타를 가게 된 2018년을 기준으로 보아도, 자카르타 여행 후기는 인터넷에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현지 한국 교민들이 자카르타에서의 일상을 기록해 둔 글들은 종종 있었지만, 순전히 자카르타에 볼거리와 먹거리를 찾아서 가는 사람은 무척 드물어 보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카르타 출장이 급작스럽게 결정난 2018년 10월 초에는 정말 유용한 정보라고는 요만큼도 준비하지 못한 채 얼떨결에 비행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플래그캐리어인 가루다 인도네시아의 서비스가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점이 나를 그나마 위안케 했다. 비행 시간 동안에는 인도네시아어가 생각보다 배우기 쉽다는 '그 위키'의 말에 넘어가 산 기초 인도네시아어 책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인도네시아어가 정말로 생각보다 배우기 쉬웠다는 점이었다. 공항에서 택시 호객꾼들을 떨쳐낼 때와 호텔에 도착했을 때 택시 기사님께 영수증을 달라고 할 때 실제로 책으로 배운 구문들을 써먹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타러 갈 때 받은 가장 강렬한 느낌은, '10월인데도 미친 듯이 덥다'라는 점과 '공기질이 정말 안 좋다'는 점이었다.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 허름한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서 있는 초호화 고층 빌딩들이 두드러지게 모여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호텔이 그 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 차라리 뿌옇기까지 한 시야, 극명한 빈부 격차. 이것이 자카르타를 찾은 나의 첫 인상이었다.


호텔 객실에서 내려다본 자카르타 시내의 풍경. 하늘이 먼지 때문에 뿌옇다.


도착한 첫날은 호텔에서 식사를 한 뒤 잠을 청했고, 둘째 날에는 본격적으로 출장 일정을 소화했다. 본래는 셋째 날에도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된 탓에 점심 식사 이후에는 시간이 붕 뜨고 말았다.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자카르타 시내를 한번 돌아보기로 작정했다. 지도를 보니, 대충 국가기념탑(모나스)Monumen Nasional, Monas 근방으로 가면 그 주위에 돌아볼 게 많아 보였다. 호텔 직원에게 모나스로 가고 싶으니 택시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자, 택시는 금방 왔다.


자카르타의 버스중앙차로. BRT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택시의 대표격인 블루버드 택시를 타고 모나스로 향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나 한국과는 다른 이모저모들이다. 제일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도로 한복판에 철통같이 세워져 있는 콘크리트제 차선분리대와 그 안쪽을 쌩쌩 달리는 버스들. 자카르타 BRT의 노선들이다. 철도교통은 미비하지만 도로교통은 상대적으로 정비되어 있는 자카르타의 특성을 활용하여, 중앙차선을 아예 버스 전용으로 분리해 두고 마치 철도마냥 별도 신호체계, 별도 차로, 스크린도어가 갖추어진 별도 승강장을 두어 운영하고 있다. 운임이 제법 싸다는데, 멋모르는 외국인이 타기에는 노선이 너무나도 복잡하여 탑승은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모나스 주위에 내리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원과 그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건물군이 시선을 압도한다. 모나스 주위에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의 관청들이 모두 모여 있는 탓이다. 한국에서 자동차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 대통령궁 '이스타나'를 비롯하여 국립박물관, 국방부, 총참모본부, 종교부 등의 관청들이 모나스 광장 주변을 죽 둘러싸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나스는 무엇인고 하니,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횃불 모양의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생김새의 탑이 탁 트인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주변을 압도하는 모나스Monas.


약간의 입장료를 내면 지하 전시관과 2층 전망대를 관람할 수 있다. 돈을 더 내면 횃불이 붙어 있는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하지만, 유료 전망대라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성정상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의 나라 역사라는 것은 항상 내 흥미를 끌어당기는 무언가이다.


(좌) 1500년대 포르투갈의 침략을 막아낸 순다클라파 전투. (우) 일제의 강제 징용.
(좌) 최초의 인도네시아 총선거. (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의 존재감을 전면에 드러낸 반둥 회의.


지하 전시관은 유물 같은 것이 다수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법 정교한 디오라마를 활용해 선사 시대부터 독립과 수하르토 독재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인도네시아 역사의 명장면들을 재현해 두고 있었다. 영어 설명도 충실하게 붙어 있으니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외국인이라면 무리 없이 전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150여 년에 걸친 네덜란드 식민 통치와 2차 대전기의 일본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인도네시아 제도 전체에 통일된 정체성을 심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전쟁을 통해 독립을 성취해 낸 인도네시아인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좌) 인도네시아 여성운동의 기수 까르티니 선생. (중) 독립운동에서 개신교회의 역할을 설명한 부분. (우) 독립운동에서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설명한 부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은, 세계 최대의 이슬람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임에도 독립운동에서 기독교(가톨릭 및 개신교)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과,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점을 디오라마 한 칸씩을 할애하여 비중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슬람 신자이지만 굳이 히잡을 쓰고 다니지 않는 여성들도 많을 만큼 세속화된 국가답다는 감상이 들었다. '다양성 속의 통일Bhinneka Tunggal Ika'이라는 국가표어가 무색하지 않은 부분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라면, 가족 단위의 인도네시아인 관람객들 가운데 전시실 한가운데에 자리를 깔거나 아예 맨바닥에 드러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1년 내내 뜨거운 날씨가 지속되는 만큼 바깥을 일부러 돌아다니기보다는 전시실 같은 그늘에서 느긋하게 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리석 바닥은 시원할 테니까. 다만 그늘을 굳이 공공 장소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으나, 우리나라도 공항이나 은행에 일부러 찾아가 여름 한철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좌) 이스타나 대통령궁  (중) 인도네시아 대법원  (우) 인도네시아군 합동참모본부.


탁 트인 모나스 광장을 한동안 하릴없이 돌아다니다가 북쪽 출구로 나왔다. 기왕 이 동네에 온 김에, 조금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면서 무슨 시설들이 있나 알아보기로 한다. 광장 북서쪽 꼭지점에 면해 있는 야트막하지만 우아한 건물이 눈에 띈다. 대통령 관저인 이스타나 대통령궁이다. 구중 궁궐마냥 일반인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깊숙한 곳에 있는 정부수반 관저(예: 청와대)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대로변에 있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 총리관저와 내각관방도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 떡하니 서 있고, 대만 총통부도 차들이 휙휙 지나다니는 대로변에 위치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러하다. 본래는 네덜란드 총독의 관저였던 것을 개수하여 대통령부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만의 총통부와도 유사하다. 이스타나 옆에는 높고 권위적으로 생긴 인도네시아 대법원이 위치해 있다. 모나스 광장 서쪽에 헌법재판소가 있다는 것과, 이스타나 주변으로 행정부 각부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도네시아 국회만 엉뚱하게 중앙자카르타(Jakarta Pusat)의 남서쪽 끄트머리에 동떨어져 위치해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철길 위로 자카르타 통근열차가 지나간다.

여기에서 조금 더 북서쪽으로 걸어가면 또다시 한국인의 관념과는 괴리가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고풍스러운 가톨릭 대성당과 압도적인 규모의 이슬람 모스크가 좁은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자카르타 대교구의 주교좌인 자카르타 성모 대성당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인 이스티클랄 모스크(독립사원)이다.


좌측에 거대한 돔의 일부분이 보이고, 우측에는 뾰족하게 솟은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세계 어딜 가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자카르타 대성당은 본래 1860년대에 처음 지어졌으나 대지진으로 무너진 이후 1890-1900년대에 재건된 것이다. 서울의 명동성당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으니, 건물 자체의 역사는 엇비슷한 셈이며 더욱이 같은 고딕 리바이벌 양식으로 세워져 성당 내부는 명동성당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다만 첨탑이 존재하지는 않는 명동과는 달리, 자카르타 대성당은 두 개의 특징적인 첨탑이 성당 파사드 위로 우뚝 솟아 있어서 보다 고딕 양식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성당 내부는 웅장하면서도 어딘가 아늑한 느낌을 주었는데, 마침 미사 시작 전이었지만 시간 관계상 미사 참례는 포기하고 다른 곳을 돌아보기 위해 성당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미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드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이스티클랄 모스크는 그 건물이 한눈에 안 들어올 만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주의할 것은, 사원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할머니들이 다가와 신발을 담을 검은 봉투를 외국인에게 파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돈도 비싸거니와, 어차피 입구로 가면 외국인 대상 가이드들이 상주하고 있다가 알아서 신발을 맡아 주기 때문에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나는 얼떨결에 낚여서 웬 할머니에게 돈을 주고 검은 신발 봉투를 사긴 했는데, 봉투를 털레털레 들고 모스크 입구로 갔더니 가이드들이 '아... 또 낚인 외국인 하나 왔군' 하는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보기에 그제서야 당한 줄을 알았다. 뭐 큰 돈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지만.


참배객들을 따라 입구까지 찾아가면 문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안내원들이 있다. 그리로 찾아가서 "외국인인데, 내부를 관람하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물어보면 된다. 얼마간의 돈을 낸 다음, 신발을 맡기고(이슬람 사원에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이다) 나서 가이드를 따라 사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머리를 바짝 깎은 젊은 남자 가이드를 따라 들어가게 되었는데(외국인이 별로 없어서 운이 좋게도 일대일 전담 마크를 받았다), 인도네시아어 발음이 물씬 묻어나긴 해도 상당히 유창한 영어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상당히 흥미롭고 즐겁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도 관심이 상당히 많아서, 한국에 이슬람교 신자가 매우 적다는 사실과 (당시) 최근에 한국 대통령과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던 내용들까지도 상세하게 알고 있었기에 그에 관련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슬람이 궁금해서 찾아온 이교도(?) 한국인에게 이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설명에도 깊이가 있었을 뿐더러, 무슨 질문을 해도 바로바로 답이 튀어나올 만큼 자신의 종교에 대해 애정이 깊다는 것이 느껴졌다. 관람을 마치고 어떻게 숙소로 돌아가냐길래 전철을 타고 가 보려 한다고 했더니, 가장 가까운 전철역 개찰구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어떻게 전철표를 사야 하는지까지도 알려 주었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팁까지 더 쳐서 그에게 쥐어 주고, 언젠가 다시 보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나와 동갑인데도 벌써 결혼해(그 당시 나는 미혼이었다) 아내와 아이를 두고 있다는 그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코로나가 그와 그의 가족을 피해갔기를 기도한다. 


가이드 군에게 들은 재미있는 사실들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한다.


1. 이슬람 예배당은 사람들이 아무리 적더라도 반드시 정해진 구역 안에 다닥다닥 붙어서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다. 이유인즉슨 듬성듬성 자리를 떼어서 절하게 되면(이슬람 예배당에는 의자가 없고 깔개나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형식으로 예배한다) 그 사이로 악마(데몬)가 숨어들어 신도들에게 악한 마음을 품게 하기 때문이란다. 교회나 성당에서 사람들이 드문드문 떼어 앉아 미사나 예배를 드리는 장면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폭소를 터뜨릴 만한 부분이다.


2. 인도네시아는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나라인데, 수니파 무슬림의 예배 인도자(이맘)들은 계단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설교대에 올라 예배 중 설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맘은 반드시 설교대 꼭대기에서 한두 칸 내려온 자리에서 설교를 하게 되어 있는데, 설교대 꼭대기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 무함마드를 위한 자리로 비워 둬야 하기 때문이라고.


3.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이 많은 나라인데, 상당히 세속화가 많이 진행되어 종교적인 갈등은 그다지 없는 편이라고 한다. 종교를 전담하는 정부부처인 '종교부(Ministry of Religious Affairs)'가 이스티클랄 모스크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며, 대부분의 무슬림 사원은 이 곳에서 관리한다고 한다(이스티클랄 모스크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 독특한 것은, 인도네시아인들은 반드시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 유교, 불교, 힌두교, 토속신앙 중 한 가지의 종교를 가지도록 헌법에서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종교 선택의 자유는 있으나 종교의 자유는 없는 셈. 무신론자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나중에 자료조사를 해 보니, 대다수의 무신론자는 경찰에 잡혀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강 가장 머릿수가 많은 종교인 이슬람교를 자신의 종교로 적어 내기 때문에 이슬람 신도 수가 실제보다 다소 많게 집계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4. '이스티클랄'은 아랍어로 '독립'을 뜻하는데, 인도네시아 독립을 기념하여 세워진 모스크의 이름답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은 아랍어로만 되어 있다 보니,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어릴 적부터 아랍어를 공부해야 한다. 이스티클랄 모스크 안에도 아예 아랍어를 가르치기 위한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5. 항상 궁금했던, 인도네시아 대통령들이 맨날 쓰고 다니는 원통형 모자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별건 아니고, 이쪽 동네의 남성 이슬람 신자들이라면 공식적인 자리에서 격식을 차리기 위해 쓰는 모자란다.


마스지드 이스티클랄(독립사원)의 입구.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이드의 안내로 찾아간 3층 난간에서 바라본 예배당의 모습. 축구장이 아닐까 싶을 만큼 넓다. 상부의 화려한 돔 또한 동양 최대 규모.
야외 예배공간에서 안쪽 예배당을 바라본 풍경. 대형 명절이 되면 여기까지 사람들이 가득 찬다고 한다.
모스크의 야경. 직접 보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크기이다.


이 자카르타 전철이라는 것이 또 흥미롭다. 먼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단차가 상당하다. 사람 발목 하나쯤은 되는 단차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남의 도움을 받아 올라탈 수밖에 없다. 또 객차의 생김새가 어딘가 눈에 익다. 도쿄를 자주 다닌 사람들이라면 예전에 간간이 도쿄 지하철에서 보았던 것만 같은 객차들이 중구난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자카르타에는 도쿄메트로에서 운용하던 전동차들 중 연한을 넘긴 것들이 다수 수입되어 현역으로 굴러다니고 있다. 도색만 새로 했을 뿐, 아직도 빛바랜 도쿄메트로 마크를 달고 달리는 객차들도 수두룩하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객차 자동문 내부에 붙어 있는 주의사항들이다. 다양한 객차 내 금지사항들 중에 이채를 발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누구나 배를 잡고 웃을 법한 '두리안 휴대 금지' 표지가 가장 눈에 확 들어온다.


주안다 역의 맞이방.


(좌) 이렇게 생긴 화면에서 영어를 선택해 티켓을 구매하면 (우) 이렇게 생긴 교통카드를 발급해 준다.


치요다선에서 운영되다 퇴역한 전동차이다. 이 사진만 봐도 승강장과 객차 사이의 단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자카르타 통근열차의 노선도와 객차 내 금지항목. 우측 하단의 '물동이 금지', '고성방가 금지', '두리안 금지'가 눈에 띈다.


(좌) 다시금 느껴지는 엄청난 단차. 어느 역에나 기도실이 설치되어 있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우) 빛바랜 도쿄메트로 로고가 그대로 붙어 있다.


호텔 근방까지 가기 위해서는 주안다Juanda 역에서 망가라이Manggarai 역까지 간 다음, 여기서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수디르만Sudirman 역까지 가야 했다. 그러나 막상 수디르만 역에서 내리니, 밤은 어둡고 사람은 많고 길은 복잡해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더 큰 길로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는 생각에 정처없이 큰길가를 찾아 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큰길과 골목길이 만나는 교차로에 이를 무렵, 터덜터덜 걸어가던 내 시야에 뭔가 희한한 표지판이 들어왔다. 내 왼쪽으로 높은 담벼락이 끝없이 이어지다가, 어느 한 순간 금빛으로 된 표지판이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한글이 적혀 있었다. 대체 뭐지? 하고 돌아가서 봤더니, 어디서 많이 본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엄마야! 멋모르는 남조선 사람이 마주쳐서는 절대 안 되는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도네시아는 남북한 모두와 수교한 나라이니만큼 당연히 이 넓은 자카르타 어딘가에는 북한 대사관이 있으려니 했는데, 설마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북한 대사관 앞을 지나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호기심에 담장 안쪽을 살짝 기웃거려 보았는데 제법 이른 시간인 일곱 시 경인데도 불이 거의 꺼져 있었다. 얼마나 돈이 없으면 자기네 대사관에 불 켜 줄 돈도 없나... 싶어서 어쩐지 우스웠다. 하여튼 간에 북한 대사관 앞에 남한 사람이 괜히 얼쩡거렸다가 좋을 것은 없을 것 같아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대사관 앞을 지나쳤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어 자동차전용도로 입구까지 걸어갔다가, 거기에서 다행히도 택시를 잡아탄 덕에 무사히 숙소로 돌아옴으로써 자카르타 시내 여행, 아니 모험기는 끝을 맺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자카르타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려 보거나, 예배 시간에 모스크를 찾아보거나, 자카르타 북부에 있다는 네덜란드 식민통치 유적들을 구경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언젠가는 출장이 아닌 여행으로도 한번 다시 자카르타를 찾을 수 있을까. 밥도 맛있고 은근히 볼거리도 많은, 공기는 나쁘지만 사람들이 친절하여 더욱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그저 하루빨리 이놈의 코로나가 끝나 여행규제가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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