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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Dec 07. 2020

자박자박한 돌봄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던 충북 보은의 한 과수원. 아직 곧추서지 않은 귀를 팔랑이며 제 어미 꽁무니를 쫓는 토리가 있었다. 웰시 코기였다. 여섯 마리 중 막내랬다. 다른 종(種)과의 동거가 시작됐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쉬를 했다. 배변패드로 바닥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변을 가렸다. 사료를 늘 채워 두었지만 한 끼만 먹는 절제력도 보여 줬다. 한 집 건너 하나씩 반려동물 기르기가 유행이던 때, 식구들의 성화로 저질러진 사건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가는 골목 담장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큰 개가 무서워서 한참을 돌아가곤 했다. 지나갈 용기가 없었다. 강아지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나의 인식은 잘 모르고 관심 없으면서 두려운 존재였다. 아버지가 기르던 개는 아버지의 개일뿐, 나와는 상관없었다. 보신탕을 먹진 않았다. 동물에게 애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육류를 좋아하지 않는 식성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토리는 언제나 집에 있다. “토리야!”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와 턱 밑에 코를 들이민다. ‘손’을 달라거나 엎드리라는 신호에는 귀찮지만 원하니 들어주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곤 시키는 걸 했으니 간식을 달라며 받을 때까지 요지부동이다. 사과와 당근을 구분한다. 양파나 마늘을 써는 동안에는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부르면 달려오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자신을 원한다는 걸 알고 달려와 주는 일. 고단한 삶을 버틸 수 있게 한다. 한 이불 덮고 지낸 지 오래인 배우자는 삶은 감자 맛, 아이들은 자기 인생이 너무나 중요하다. 부르면 “왜?”라고 되묻지 않고 무작정 달려와 눈을 마주치는 존재는 토리뿐이다. 그게 좋아 자꾸 부르니  그러지 말란다, 양치기 소년 된다고.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들어선 나는 소파에 넘어지듯 쓰러졌다. 한꺼번에 등장한 식구들을 본 토리는 겅둥겅둥 뛰었다. 눈이 마주치자 소파에 턱을 얹는가 싶더니 뛰어올라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15kg의 덩치가. 그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따뜻하고, 부들부들하고, 숨 쉴 때마다 오르내리던 몸. 마치 지난 사흘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 어떤지를 알고 있는 듯했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옆에 있어 주겠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엄마가 없기는 피차 마찬가지라고, 같이 잘 지내보자고, 말없이 전하는 말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내 말에 친구는 “평생 세 살짜리 아이 키우는 거”라며 각오 단단히 하랬다. 일리가 있었다. 거르지 않고 매일 산책을 시키는 건 예상보다 번거로운 숙제다. 해마다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장 볼 때 식구들 주전부리는 까먹어도 토리의 사료와 간식은 챙긴다. 털이 (엄청) 많이 빠지는 바람에 집에서 짙은 색 옷을 입는 건 금지다. 토리화(化) 된다. 우리는 툭하면 “에휴, 돌보는 데 진짜 손이 많이 가는 놈이야!” 투덜댄다. 


 아침이면 방마다 자박자박 걸어 들어와 식구들을 깨운다. 햇볕이 건강에 좋으니 밖으로 나가자고 옷깃을 잡아끈다. 우정은 함께 하는 데서 다져지는 거라며 침 범벅이 된 빨간 공을 물고 온다. 힘들 땐 그저 가만히 쉬라고 꼼짝 못 하도록 무릎 위에 턱을 올려놓는다. ‘당신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나는 항상 반갑고 좋다.’고 온몸으로 맞아들인다. 사랑하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꼭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그에게 배운다. 토리는 그렇게 나를 돌본다, 2017년 8월 이후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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