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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an 26. 2021

유치원 교사

 점심밥을 먹은 뒤 나른해진 몸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데, 휴대폰이 울리며 낯익은 이름이 화면에 떴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지금은 어엿한 유치원 선생님이 된 제자였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코로나로 힘들지만 별 일 없으신 거죠? 저는 전수조사 대상자라 두 번이나 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음성으로 나왔어요! 다행이지 뭐예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제자의 근황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작년엔 사립 유치원에서 일했어요. 에휴, 얼마나 일이 많은지, 퇴근 시간을 지킨 적이 거의 없을 지경이라니까요. 원생들이 줄었다며 월급을 깎자고 하지를 않나, 너무 힘들어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반년도 전에 썼어야 하는 관리일지를 한꺼번에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만두지 말아 달라고 잡았지만 한 달 더 버티다 결국 그만뒀어요. 뭘 건의를 하면 할 사람이 없다고 저보고 하래요. 그렇지 않아도 넘치게 많은 잡무 때문에 어깨가 빠질 지경인데, 그러니 누가 제대로 건의하겠냐고요.” 


 많이 고단했구나 싶었다. 몰랑몰랑하고 수수한 맛이 나는, 마음이 두부 같은 제자였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눈까지 동그랗게 뜨고 재잘거리면 주위가 다 환해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더랬다. 단발머리 찰랑이며 학교 복도를 오가던 여고생이 어느덧 스물여섯의 유치원 선생님이 된 것이다. 처음 만난 이후 해마다 오월이면 그녀는 잊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해서는 안부를 묻곤 했다. 내 어쭙잖은 밥벌이의 추억을 뿌듯하게 해주는 기특한 제자다. 


 “지난해 임용고시에서 떨어졌어요. 일하면서 공부하려니 시간이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지금은 공립유치원에서 기간제 교사로 오전만 근무해요. 근무조건이요? 시급으로 일하지만 훨씬 나아요. 교사 수가 확보되어 있으니 혼자 다 감당하지 않거든요. 오후엔 공부해요. 참,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히힛, 제가 혼자만 떠들었네요.” 느릿느릿 흐르던 집안 공기가 활달해졌다. 


 나는 잘 지낸다고, 집순이라 방역상황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우스개를 했다. 제자는 예전에 내가 보낸 편지를 벽에 붙어두었는데 방 정리를 하다 보니 안 보여 찾다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노라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어린아이들을 좋아해서 성당 어린이 지도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좋아진다며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그녀는 올 해에는 기필코 임용고시에 붙고야 말겠다고 내게 다짐을 했다. 아마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을 게다. “그래, 좋은 선생님이 많이 배출돼야 해. 그래야 세상이 점점 나아지거든. 꼭 합격하렴.” 내 응원은 빈약하게 들렸겠지만 진심이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않아도 유치원 선생님 노릇을 할 수는 있지만 제자의 생각은 달랐다. “근무환경이 중요하더라고요. 과로에 시달리고 보수가 시원치 않으니까 일이 재미가 덜 해요. 아이들과 더 신나게 지내기 위해서라도 시험에 붙어서 공립유치원에서 일하고 싶어요.” 나는 전국의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국공립으로 바뀌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말끝에 덧붙였다. 그렇게 되면 해결이 되는 문제일까. 


 걸음마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순 같은 아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타인, 아이의 일상에 오롯이 함께하는 유치원 선생님. 그들의 소양이 어떻게 함양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생들의 머릿수를 돈으로 헤아리는 운영자들, 그들이 교사를 자기 집사처럼 여기는 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다른 영리 업종과 다를 바 없다. 달걀 서너 개로 수십 명 아이들의 식판을 채우면서 자신은 건물을 세우고 필드 골프장을 드나드는 운영자의 행태가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다. 나라에서 운영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개인 사업이라고, 간섭하지 말라는 건 꼬박꼬박 세금 내는 국민의 지갑을 제 것인 냥 여기는 것이다.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교사에게 지급하면서 아이들에게 끝없는 헌신과 사랑을 바치기를 요구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촌락 민들이 신나고 행복한 이유를 묻는 탈영병에게 촌장이 했던, “뭘 마이 멕여야지, 뭐!”라는 말은 존재의 기본을 짚어주는, 우문에 보내는 현답이었다. 참 교육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언급하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자기 일이 제대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일에 따르는 정당한 대가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휘청대는 생계 앞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지체 없이 대답한다. 마더 테레사, 소방관,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이라고. 나는 타인의 삶을 일으키는 분들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진다. 다른 이를 돌보는 일에 자기 인생을 거는 이들 덕분에 우리가 그나마 이 정도 버틸 수 있는 거라 믿는다. 그런데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 인색하다.  


 어린아이를 좋아해서 유치원 선생님의 길을 택한 제자가 먹고사는 문제로 자신의 꿈을 접지 않기를 바란다. 별 수 없다는 체념에 뒷걸음질을 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씩씩해지기를 바란다. 문제의 진짜 원인을 알아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아름답고 당찬 제자가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보는 이도 없는데 어깨에 힘을 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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