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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Nov 13. 2022

탈출 06

안수 기도

하반기에는 교회에 큰 행사가 두 가지나 있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그 두 가지는 내가 이미 다니고 있던 본교회의 행사로 바빴다. 아직 '우리 교회'가 아닌 곳에서 중대 행사를 치를 필요는 없다. 우리 부부는 본 교회 1부 예배 때 찬양하는 성가대원이었기 때문에 행사 시즌이 되면 무척 바빴다. 9시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주말 내내 연습해야 했고 특히 예배 당일에는 목을 풀어야 하기에 오전 7시쯤부터 모여서 연습했다. 하반기의 교회는 추웠다. 11월 추수감사절과 12월 성탄절 예배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모이면 왜 그렇게 교회가 썰렁하던지. 으스럭거리는 차가운 김밥으로 요기하고 수차례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며 연습하고 나서 예배 때 찬양을 드리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북받치곤 했다. 


그리고 하반기의 마지막 행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송구영신 예배이다. 대체로 많은 교회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때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송구영신 예배는 다른 예배처럼 1부, 2부, 3부로 나누어서 같은 예배를 진행하지 못한다. 날과 해가 바뀌는 12월 31일 밤 11시부터 1월 1일 새벽 1시 사이. 딱 그때 한번뿐이기 때문에 성가대도 가장 잘하고 화려한 2부 예배의 성가대가 맡아서 한다. 교회에서는 11시 예배인 2부 예배가 메인 예배이다. 성가대도 그 예배는 전문가들과 숙련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배치되어 있다. 즉 송구영신 예배에서는 우리 1부 성가대는 할 일이 없다는 말씀. 그래서 굳이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예배를 드리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내 나름대로의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다 망한 것 같은 지난해를 뒤로 하고 뭐든 희망과 계획으로 깨끗하고 의미 있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흰 도화지가 펼쳐진다. 각양각색의 크레파스를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하며 무슨 그림을 그려나갈까 고민하는 즐거움, 해마다 대나무 마디처럼 굵게 선을 긋고 다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 순간을 대체로 전 국민과 함께 했다. TV 앞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였다. 새해에는 무조건 다이어트다. 책을 많이 읽어야지. 글을 써야겠다. 뭐 이런 식의 어눌하고 불투명한 계획들을 늘어놓으면서 막연하게 내년 이맘 때쯤엔 또 이룬 것은 살펴볼 것이 별로 없어 대충 뭉개고 새 도화지를 꺼내며 제야의 종소리에 희망을 맡기겠지, 하는 생각도 했다. 어렸을 때엔 안방 TV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그랬고, 커서는 연말이면 음료값을 바가지 씌우는 카페 같은 곳에서 남자 친구와 그랬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는 어렸을 때처럼 집에서 남편과 제야의 종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의 건강과 학업과 취업과 금연에 관한 결심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오티반에서 송구영신 예배에 초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구원의 확신으로 마음이 붕 떠 있던 나는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뒹굴거리는 것보다 좀 더 격식 있고 거룩한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딜 가나 새해 카운트 다운에는 폭죽이 터졌지만 딱 사흘이 지나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있곤 했던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 곳, 신과 나 사이에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근거로 구원을 약속받고 거듭난 곳,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여는 감격을 그곳에서 나누고 싶었다.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안수 기도' 때문이었다. 전에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안수 기도로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눈먼 자도 눈을 뜨게 하는 등 기적을 베풀어 큰 화제가 되었다. 성경을 믿는 나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기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학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현대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야말로 기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안수 기도니 불 같은 성령의 치유니 하는 것은 죄다 사기꾼 같은 소리라고 여겼다. 따라서 리더가 '안수 기도'라는 걸 언급할 때에도 별 다른 기대감이 없었다. 보이는 영역에서 갑작스럽게 큰 변화가 일어나는 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인이 추구하는 신앙이 아니다. 필시 사이비이거나 광신도에 가깝다. 문제는 '안수 기도' 그 자체라기보다는 '희소성'에 있었다. 

"목사님이 안수 기도를 아무에게나 하시지는 않아요. 조심스럽거든요. 자칫 사이비 같아 보이고."

리더는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이 딱 그 얘기를 하더니 또 말을 이었다.

"항상 송구영신 예배 끝나고 오티반에게만 해주세요. 믿음 생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더하시도록 특별히요."

'오티반에게만?' 이건 한정판이라는 얘기. 지금이 아니면 다신 없을 기회 같은 거랄까? 그걸 놓치면 뭔지 모르게 아까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밑져야 본전인데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특별한 기도 제목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결혼 2년 차가 되어가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나 자신도 엄마의 난임 중 기도로 힘들게 생긴 아이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또 난임이다. 엄마를 닮아서일까? 점점 나이도 들어가는데 얼른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느냐는 친정 엄마의 걱정과 아직 아이 같은 아들을 장가보냈는데 이제 아이가 생겨야 더 어른스러워지지 않겠느냐는 시댁의 은근한 압박 속에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던 중이었다. 산부인과에서는 우리 부부 모두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유명하다는 한의원에서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보약도 열심히 먹었고 산부인과에서 각종 검사를 하며 배란기를 맞추는 일에도 애써보았다. 이제 인공수정이든 시험관이든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 불임 전문 산부인과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게다가 기도는 또 얼마나 열심히 했을 것이며, 불임이니 난임이니 고생했던 친정 엄마는 또 오죽이나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이런 게 기도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벌써 임신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왠지 그 교회 목사님이라면 뭔가 더 영험한 효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소망. 거기에 한정판이라는 조건이 마음을 급하게 했다. 


송구영신 예배는 '풍성'했다. 

매해 1월 1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나를 위해 준비된 설교 같았다. 새해 모토로 주신 말씀은 '떠내려 보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잘 간직해야 한다고. 주님과 동행하며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하루하루가 늘 새해 첫날이라고. 은혜받은 대로 행하라고. 굳이 어떤 한 시즌, 한 행사, 한 날에 특별한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던 나에게는 그간 들었던 어떤 종소리보다도 더 큰 울림이 되어 매일 내 인생에 제야의 종소리가 둥둥 울릴 것만 같았다. 이미 한해를 성공적으로 다 살아낸 것만 같은 꽉 찬 마음. 그걸 리더는 '풍성함'이라고 표현했다. 풍요로움, 풍부함, 기쁨, 뭐 다른 표현들도 있겠지만, 그 단어가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나도 드디어 '풍성함'을 맛본 건가? 오티반 강의가 끝날 때 운동복들이 들이닥쳐서 종종 물어보던 '오늘도 풍성하셨나요?' 같은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아챈 것 같아서 기뻤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사람들이 서로 새해 축복 인사를 나누었다.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서로 껴안으면서 축복하는 모습이 스스럼이 없었다. 교회 밖은 음주문화로 가득한데 다들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자연스럽게 술집 골목 사이로 흩어져가는 것이 뭔가 든든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사를 끝내고 다시 본당으로 돌아오니 벌써 어떤 사람이 강대상 앞에 꿇어앉아서 안수기도를 받고 있었다. 기도는 짧고 조용했다. 남편과 함께 주춤주춤 다가가자 목사님은 부드럽게 손짓하며 우리를 불러 앞에 앉혔다. 무릎 꿇고 눈을 감자 나와 남편의 머리 위에 한 손씩 얹으시더니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속삭이듯 기도하셨다. 

"주님, 보석 같은 부부가 왔습니다. 이 부부에게 주님이 예비하신 소중한 새 생명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주님의 뜻대로 성장하는 부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놀랍게도 내 머릿속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이 기도해주셨다. 

그간 암묵적으로 시달려왔던 불임 스트레스가 후드득 쏟아져 바닥으로 흩어졌다. 간결하고 간절한 기도. 눈물 콧물과 함께 스트레스가 나간 자리에 세포 하나가 벌써 간질간질 움트는 기분이 들었다. 기도를 그냥 떠내려 보낼 순 없다. 은혜를 떠내려가게 하지 말라 하시던 새해 모토 말씀처럼, 우리도 그 기도의 은혜를 그대로 누리자고. 남편과 나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또 한 번 기도하고 밤을 보냈다. 


2월 둘째 주 월요일이었다. 

스키장에서 열심히 보드를 타고 눈밭에서 뒹굴다가 가장 큰 사이즈의 커피를 싹 다 비우고 돌아왔는데, 구토와 열을 동반한 몸살을 앓았다. 피곤해서 그런가 했다. 너무 힘들어서 병원을 가기 위해 외출복을 갈아입는 것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약을 사러 나가는데 마침 같이 있던 동생이 부탁했다.

"형부, 임신 테스트기 하나 사다 줘요. 언니 아무래도 그냥 약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두 줄이 나왔다.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임신 테스트기를 더 사 와서 그날 밤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또 해보았다. 확실했다. 곧장 산부인과에 갔다. 구정이 시작되어 응급실뿐이었지만 그래도 기본 검사는 할 수 있었다. 임신 5주 차. 입덧이 빠른 편인 것 같다고. 임신하면 초기에는 열도 잘 오른다고. 구정 끝나면 산부인과 가서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해보라고. 꿈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학 붙었을 때에도, 임용고시 합격했을 때에도, 심지어 남편과 결혼 날짜를 잡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한 '절대 기쁨'. 구원의 기쁨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말씀을 떠내려 보내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날 밤의 겨자씨만 한 믿음이 산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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