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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May 01. 2023

탈출 10

기적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연정이가 전라남도에서 경기도로 인사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경기도에서 특정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지방에서 경기도로 옮겨오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들었다. 한번 경기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을뿐더러 기본적으로 지방은 경기도에 비해 인원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수도권에서 교육을 시키고자 결심한 경력 교사들도 경기도로 뚫고 올라오기 어려워 몇 해씩 대기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임용 2년짜리 젊은 교사에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연정이는 매 주말마다 서울(혹은 일산)과 남원을 오가는 일에 많이 지쳤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기도했다. 당시 연정이의 전공 교과인 미술은 전국적으로 선발 인원이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부산 사는 애가 전라도에서 시험을 치렀으니 오죽했겠는가? 그 해 경기도에서는 인원 조정을 위해 미술 교과는 선발조차 하지 않았고, 서울에서 1인, 전라남도에서 1인, 전국에 딱 두 명 선발하는데 연정이가 합격했던 것이다. 서울은 컴퓨터 활용 관련 시험이 추가되어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바람에 전라도로 응시했다. 그런데 정작 남원에서 일하면서 수도권으로 오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오티반을 무사히 끝낸 것은 좋았으나 포티반에 가서도 그렇게 꾸역꾸역 출석 도장을 찍으며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보다 마음을 졸이며 기도한 사람은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

연고도 없는 곳에 동생을 홀로 떨어뜨려놓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거니와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의 기틀을 잘 다져나갈 기회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포티반에 붙여두고 싶었던 것이다. 오티반 때처럼 그렇게 오갈 수는 없으니 무작정 기도로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이왕이면 큰딸이 있는 곳에 작은딸도 같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기도에 박차를 가하던 참이었다. 


때는 12월이었다.

처음에는 일이 그렇게 되려던 건 아니었나 보다. 막연하게 전라도에서 경기도로 넘어오고자 하는 교사들이 얼마나 되나 수요 조사를 했다. 경기도에서 수용하기로 한 전라도 교원은 단 4명이었다. 전라도에는 작은 섬들이 너무 많고 각 섬들마다 학생수가 너무 적어서 폐교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라도에 교원이 남아 국가적으로 그 인원들을 흡수해야만 했고 다행히 경기도가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조사 결과 경기도로 옮기고 싶어 하는 전라도 교원이 200명이 넘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배제시켜 나가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경력자, 아이 학령기, 연수나 벽지 점수 같은 걸 고려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뜻밖의 기준이 각 학교마다 뿌려졌다. 우선, 고경력자 배제(호봉이 높아져서 경기도 인건비가 많이 든다), 섬 지역 근무 경력자 배제(특별 벽지 지역은 근무 경력 점수가 높아져서 역시나 인건비로 이어진다), 결혼한 사람 및 자녀를 둔 사람 배제(인구 흡수율이 높아진다). 그러자 20여 명으로 확 줄었다. 이번에는 근무 년수를 가장 적은 순으로 잘랐다. 그러자 6명이 남았다. 그중 한 명은 고향이 그 동네여서 탈락,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 중에서 경기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도 탈락, 최종 4명에 연정이가 포함되어 버렸다.


기적, 학교 관계자들은 그렇게 표현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 과정은 전무후무한 인사 편입 정책이었고 혹여 또 생긴다 해도 다시는 얻어걸릴 일이 없는 기준이었다. 리더는 그걸 '기도 응답'이라고 정리했다. 우린 동의했다. 어느 쪽이라고 했든 그건 분명 신의 섭리였고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전개된 예측 불허의 사건이었다. 종종 그런 체험들이 '진리'보다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성경책에 활자로만 존재하던 구절들이 인생의 어느 지점을 감싸 안고 단단하게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굳건한 길이 열려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처럼 협곡 사이의 허공을 걸어서 건너가는 것 같은 짜릿한 경험 말이다. 종종 생각한다. 그때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신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을 실제 삶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또한 태초부터 예수님의 부활 시기까지 이어진 성경 속의 이야기가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을까? 아니, 더 쉽게 생각해 본다면, 당장 연정이가 포티반을 도전할 수 있었을까? 또 내가 피붙이가 아닌 사람들끼리도 가족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그런 사랑을 과연 누릴 수 있었을까? 


그걸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마음에 생긴 변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마치 인간이 주도하고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신의 계획 아래에서 이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부정할 수 없는 그 힘을 의지하는 것. 경험하고 나면 더 이상 아니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 그 '믿음'. 기적은 겉으로 나타난 환경의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의 방향과 색깔의 변화에 있다. 


연정이의 포티반은 순조로웠다.

경기도 의정부로 입성하여 주말에는 교회와 우리 집을 오가며 지냈다. 엄마의 지속적인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나와 연정이는 초등부 주일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도 그대로 졸업해 버렸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별로 매력이 없었다. 교회 활동이 너무 지루해서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딱히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춘기의 자각이 한몫했다. 게다가 매주 교회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지만 집에서는 언제든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던 엄마의 모습에서 도무지 신의 은총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교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함에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겨 어느덧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연정이는 그나마도 관심이 없던 터였다. 그랬던 연정이가 처음으로 제 발로 교회 문턱을 넘나들게 된 것은 색다른 감동을 주곤 했다. 


나는 연정이가 자랑스러웠다.

고귀한 가치를 좇아 세상의 부스러기들을 다 버린 것이 기특했고, 그걸 기뻐하신 주님의 응답이 보란 듯이 경기도 입성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정이는 남원에서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치열한 학업으로 인해 여자를 만나본 적 없던 그는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을 퍼부으며 연정이에게 청혼했다. 그대로 남원에 머물러 조건이 괜찮은 그 남자와 결혼도 하고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도무지 신앙생활에는 관심이 없었다. 딱히 부족한 것이 없었고 신의 가호가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연정이가 교회를 다녀야겠다면 남원에서 다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수차례 졸랐고, 마침내 결혼하면 교회에 다니겠다는 공약까지 내세웠다. 연정이가 굳이 서울까지 교회를 오간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고, 교회를 다녀보겠다고 경기도로 발령을 냈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정이는 결혼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타향살이가 조금 외로웠을 뿐이었노라고, 진정한 사랑을 찾았기에 더 이상 결혼에 연연하지 않노라고, 오티 포티반을 마친 후 확고해진 마음에 조금도 틈을 주지 않은 채 이별을 선고했다. 


사실 처음부터 엄마가 그 문제를 놓고 기도했던 건 아니었다.

연정이가 취업까지 마쳤으니 다음에 수행해야 할 미션은 마땅히 '결혼'이었을 것이다. 가만 보면 엄마는 대놓고 기승전'결(혼)'로 가는 경향이 있었다. 두 딸을 열심히 키우고 가르쳐 제앞가림하게 만들고 나면 완성된 제품에 포장을 잘 입혀서 시장에 내놓고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고 싶은 상인처럼 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심정은 공감이 갔지만 신앙은 결혼과 저울질할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욕심 많은 엄마는 교수 사위를 본다면 그냥 연정이가 남원에 눌러앉아 신앙생활하면 되지 굳이 꼭 '그 교회'에 다녀야만 하느냐고 했으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가뜩이나 두 딸이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데 딸들끼리도 전국구로 흩어져있는 것보다는 한 곳에 모여있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연고도 없는 곳보다는 언니가 근처에 지내며 교회에서라도 서로 얼굴 보는 편이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엄마는 남원보다는 서울과 경기도의 결혼 시장이 훨씬 더 넓다는 점을 떠올렸던 것 같다. 하나님이 엄마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연정이는 믿음의 길에 한층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각자의 동기가 어찌 되었든 결론은 분명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이고, 제각각이었던 생각들이 모이고, 행동의 근거들이 하나로 모였다. 그곳에 그 교회가 있었다. 연정이뿐만이 아니라 거기 모인 사람들을 뜯어보면 어디에나 사연들이 넘쳐났다. 어쩌면 그곳에 모인 모든 발걸음들이 다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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