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 없다(1부)
‘매혹적이다.’ 이 단어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놓지 않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은근하면서도 강하다. 어느 순간 그 끌림에 휩쓸리면, 나는 어느새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다. 사방이 열려 있는 바다 위에서 느끼는 그 경외감이 좋다. 그래서 ‘매혹적이다’라는 말은, 내가 쓰는 단어들 중에서도 유난히 애착이 가는 표현이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넬 때면, 이미 마음 한쪽이 그에게 기울어 있음을 나는 안다.
‘매혹’이라는 단어는 자주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문장 속에, 혹은 일상 속에 불쑥 들어오는 순간은 드물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 드문 순간을 마주했다. 칸이 사랑한 감독. 미장센의 거장. 그리고 영상의 시인이라 불리는 박찬욱. 그의 신작을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났다.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 그의 12번째 작품 어쩔 수가 없다를 보았다. 작품이 시작된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기대만큼 깊은 여운이 밀려왔다. 영화가 던진 매혹의 감정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맴돈다. 이제 그 감정을 따라가며, 하나하나 풀어가 보려 한다.
우리내 삶에는 열정을 쏟는 것이 있었다. 그 열정이 상실 될 때 느낀 좌절은 처절했다. 한 남자가 있다. 만수(이병헌)다. 그는 25년 동안 제지 회사에서 일했다. 회사는 최근 미국 기업에 인수되었다. 경영진이 구조조정을 통보했다. 어느 날 만수는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해고 통보를 받았다.
만수는 이제 어느 정도 삶을 이뤘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만수는 가족을 지키려는 절박함에 사로잡혔다. 재취업 문은 열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취업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쌓인 대출 때문에 집을 처분할 위기에 놓였다.
막막한 절벽 앞에서 만수는 한 생각을 한다. 경쟁자가 없다면 그 자리가 내 것이 되지 않을까. 그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가짜 구인 공고를 내고 치밀하게 움직인다. 우연과 변수가 섞인 과정에서 만수는 점점 괴물이 된다. 그는 경쟁자를 제거해야 자신만의 자리를 되찾는다고 확신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 없다』는 1997년 출간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액스)』를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범죄소설의 탈을 쓴 자본주의 비판서”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웃음 뒤에 남는 불안과 죄책감으로 독자의 마음을 붙잡는 작품이다. 2015년에는 프랑스에서 《Le Couperet》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 『어쩔 수 없다』의 제작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소설에 강한 인상을 받아, 판권을 확보하기 전부터 각색 작업을 시작했다. 2010년 판권을 확보한 이후에는, 미국 개봉을 목표로 캐나다의 극작가 겸 감독인 돈 맥켈러와 함께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하지만 제작 과정 중 방향이 바뀌면서 미국 영화화 계획은 중단됐고, 대신 한국영화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 감독은 『미스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과, 『아가씨』의 연출부였던 이자혜 작가 등과 함께 대본을 공유하며 수정·보완해나갔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던 중, 박찬욱 감독은 배우 이병헌을 직접 찾아가 작품 구상을 설명했다. 당시 이병헌은 영화 『지.아이.조』를 촬영 중이었고,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을 맡고 싶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아직 이병헌은 나이가 들지 않아 극의 주인공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어서 나이 들어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영화로 방향을 바꾸면서, 박 감독은 이병헌을 ‘만수’ 캐릭터로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완성해 나갔다.
‘어쩔수가 없다’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박찬욱표 영화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절제되어있다라는 생각이든다. 이번 작품에서 유혈과 과잉 그리고 대비를 덜어낸 느낌이든다. 감정적 과잉보다는 거리와 절제를 강조하면서 관객에게 더 질문을 던지려는 연출의 의도가 있었다는 인터뷰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확실히 반찬욱감독이 한발 다가가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점이 그의 오랜팬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느껴지기도하고 여전히 절제의 범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에게는 불호가 되어 졌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에서, 호감의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폭발보다는 다른 묘미를 보여준다. 불씨가 붙으며 서서히 타오르는 그 과정 속에서 긴장감이 차오르고, 그 불길이 남기고 간 잿덩어리는 결국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며 서글프게 만든다. 그 불편함은 단지 이야기의 불행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의 풍자적 단면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비추기 때문이다.
만수가 재취업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경쟁자들을 하나둘 제거하기로 결심하는 그 순간, 관객은 그의 잔혹함보다 오히려 그를 이렇게 만든 세상에 더 끌려 들어간다. 살아남기 위해 도덕을 내려놓는 인간, 그리고 그 선택을 이끌게 만드는 사회의 시스템. 이 불편한 감정의 혼란이야말로 박찬욱이 이번 영화에서 끝내 포착하고자 한 ‘현실의 온도’처럼 느껴진다. 그 온도는 뜨겁지만 절제되어 있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한편으로 코엔형제의 작품들과 유사한 느낌이 들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