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 없다(2부)
나는 이 영화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서바이벌’이라 말하고 싶다. 극 중 만수의 행동처럼, 누군가를 제거해야만 내 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지금의 사회 구조다. 조직 안에서 ‘공생’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건 이제 이상적인 망상, 혹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말에 불과하다. 현실은 잔혹하다. 밟고 올라서야 하고, 밀어내야 살아남는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고, 쓸모없어지고, 결국 가지치기되어 버린다. 영화 속 만수가 맞닥뜨린 상황은 결코 극단적 비유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위치에서 같은 게임을 치르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그래서 잔혹한 범죄극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 이 시대의 냉혹한 생존전을 비춘 현실의 거울이다.
극 중 만수는 해고 대상자로 분류되기 전까지는 ‘공생’이라는 환상을 붙들고 서바이벌에 대처하려 한다. 스스로 앞에 나서 연설을 연습하고, 회사 인수 담당자들 앞에서 조리 있게 말하려 애쓰는 모습은 잘 짜인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해고 당사자가 되어 재취업해야 하는 순간, 현실은 냉혹하게 달라진다.
화려한 경력과 자격증은 뜻밖에도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조직은 경력 많은 지원자를 ‘융통성 없는 존재’로 치부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깊이 공감했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10년에 걸친 경력과 성과는 때로 재취업에서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고, ‘나이 들고 다루기 힘든 사람’이라는 평가로 축소되기도 했다.
영화 속 집단 심리 상담 장면은 그런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만수는 무엇이라도 해보려는 절박함으로 화장실 앞에서도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인사 담당자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구걸하듯 구직을 호소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무시와 멸시는 그를 다른 쪽으로 밀어낸다. 결국 그는 ‘공생’이 아니라 ‘경쟁’의 논리 속으로 들어가고, 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서바이벌은 공존이 아니라 도태와 제거의 게임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치르는 거야”, "내 면접은 있잖아, 정말 힘든 그런 면접이야"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의 대사들은 이러한 부분을 잘 내포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