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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Dec 05. 2020

짠순이 가족의 한 지붕 세 가족의 뉴욕 한달살이

무료 숙박을 빙자한 뉴욕 한달살이 준비하기

“장인 장모님도 가신다는데 올여름 휴가는 우리도 희승이네가 있는 뉴욕으로 갔다 올까?”


남편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어머 진짜? 그럼 너~무 좋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한 남편의 한 마디에 나는 틈만 나면 인터파크 항공과 스카이스캐너 앱을 넘나들며 핫딜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최저가를 찾아도 인당 100만 원을 훨씬 넘는 항공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저렴이가 내 앞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2주를 보냈다. 기다린 결과는 50만 원이  더 오른 금액이었다. 화가 난 마음에 눈 딱 감고 일시불로 질러버렸다. 나의 영원한 ‘소탐대실’ 능력은 이렇게 종종 발휘된다.               


짠순이인 내가 거금의 항공권을 결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생 가족이 뉴욕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평 아파트에 살고 있던 동생은 누나와 부모님을 위해 기꺼이 보금자리를 오픈해 주었다. 나도 절약형 인간이라 자부하지만 우리 부모님과 동생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아주 심하게 짠내가 진동을 하는 가족이다.        

  

"희승아, 이번 여행에 누나는 호텔에서 지내볼게. 20평에 세 가족은 좀 아니지."

"누나 미쳤어? 여기 호텔값이 하루에 얼마인 줄이나 알아?"

"뭐 하루에 100불이면 낡은데라도 어딘가는 걸리겠지"

"뉴욕 물가를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아무리 싸도 성수기엔 일박당 200불이거든? 게다가 한 달이야. 한 달이면 6,000불인데 미쳤다고 그 비용을 내!"

“......”

“그 숙박비 아껴서 차라리 형부랑 맛있는 거 사 먹고 가보고 싶은데 다 가봐.”          


동생과의 전화 통화로 잔소리를 실컷 듣고 난 결론은 부모님, 우리 가족, 동생 가족까지 총 10명이 방 2개 아파트에서 먹고 자는 '한 지붕 세 가족 뉴욕 여행'이었다. 우리가 숙박비가 얼마나 있든 동생에게는 허락이 안 되는 비용이었고 (내 돈도 내 맘대로 못쓰는 이 상황!) 남편 입장에서는 휴가 아닌 휴가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뉴욕 생각뿐이었다. 머물 곳이 무료 숙박으로 해결되어 숙박비 700만 원 이란 공돈이 생긴 셈이었으니 나는 쾌재를 부르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남편은 2주의 휴가를 어렵게, 어렵게 받아냈고 나는 달콤한 휴직의 시작을 알리는 세리머니로 장장 5주라는 기간으로 비행기 티켓을 확정했다. 물론 내 아이들은 나와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조건으로 말이다.


모든 이의 로망인 해외 한달살이, 그것도 미국의 심장인 뉴욕이라니! 대학생 시절 어학연수를 뉴욕으로 다녀온 남편이 나보다 더 설레어하는 눈치였다. 남편은 가난한 대학생이라 바에서 맥주 한 병도 시켜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때의 아쉬웠던 기억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도 못 한 채 좋아했다.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는 만큼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큰 의미가 있어야 했다. 나는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뉴욕에 관련된 책을 모조리 훑어보고 제일 마음에 든 여행 책 2권을 대여하여 보름을 옆에 끼고 살았다. 책을 읽으며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모조리 메모해 나갔다. 나의 꼼꼼함과 때로는 극성스러움이 발현이 되는 순간이었다.    

 

뉴욕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빠져들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설렘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5주 동안의 타지 생활을 책임져야 할 두 아이의 엄마로서 행복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뉴욕살이가 감옥살이가 될 수 있기에 출발 전 To-Do list를 자세히 준비했다. 출국 전 해야 할 일을 뽑아보니 아래와 같았다.


미국 ESTA 비자 신청 및 승인 확인  

캐나다 ETA 비자 신청 및 승인 확인  

가족 여행자 보험 신청하기  

환전 신청하기  

유심카드 신청하기

국제 운전면허증 신청 및 발급하기  

사용 가능한 신용/체크카드 확인하기

햄돌이 (햄스터) 분양 보내기

아이 초등학교 및 어린이집 부재 미리 알리기 (초등은 체험학습 신청서 제출)

미국 여행 계획 아이들과 세우기 (아이들이 매일 가고,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나씩 적게 하기)  

아이들과 미국 관련 책 읽기 (기초지식 알고 가기)

아이들 습관 유지 계획하기 (읽기, 쓰기, 유튜브 등)     


이 외에도 출국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대여도서 반납, 신문 및 수영장 강습 hold 처리, 유통기한 음식 처리, 읽을 책 준비, 관광지 투어 및 무료입장 가능한 곳 예약하기, 블로그 기록을 위한 노트북 구매, 동생네 조카들을 위한 선물과 간식 구매 등 마치 내가 이사를 가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남편은 모든 여행 준비에 무임승차했지만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면 네 식구가  편할 수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나름 아끼고 아껴서 준비한다고 했지만, 어느새 사전 지출 비용이 자릿수가 바뀌고 있었다.


‘아니, 우린 분명히 무료 숙박 아니었던가? 그것도 5주뿐인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지?‘

계산기를 네댓 번은 두드리고 두드렸다. 동남아와 미국은 경비가 달라도 이렇게 다르구나. 에이 이렇게 된 거, 동남아 세 번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다녀오자며 예산은 잠시 잊기로 했다. 우린 며칠 떠나는 게 아닌, 한달살이 아니었던가!


순식간에 7월 14일이 돌아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뉴욕으로 출발하는 날이다. 한 달간 우리 가족이 만들어갈 시간들이 어떤 광경으로 펼쳐질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민가방 3개와 캐리어 3개를 싣고 한 달간의 한 지붕 세 가족의 뉴욕 살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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