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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Dec 07. 2020

동생집의 기막힌 월세

“누나, 여기야! Hey~ Welcome to New York!”      


공항에 마중 나온 동생은 여지없이 멀리에서도 잘 보였다. 키가 2미터에 육박하고 나와 웃을 때 입모양이 똑같은 녀석과 찐한 포옹으로 인사했다. 7월 14일 토요일 낮의 뉴저지의 하늘은 너무 맑아 따가웠고 광합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우리 가족은 날씨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40분을 달려 동생네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6층의 깨끗이 관리된 복도식 아파트. 관리가 너무 잘돼서 정확한 연식이 가늠이 안 되었다. 그저 한 블록 옆에 뉴욕을 아우르는 환상적인 허드슨 리버뷰가 있다는 것만 눈에 쏙 들어왔다. 뉴욕을 활보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은 온통 콩밭에 가 있는 느낌이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이미 집은 포화상태. 뼛속까지 한식만 고집하는 엄마의 극성에 못 말려 올케와 엄마는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음식 준비 중이었다. 천사 같은, 아니 천사보다 더 착한 우리 올케..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알고나 있을지. 벌써부터 누가 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아빠의 퇴직 기념이자, 가족 여행으로 이곳 뉴욕에 다 같이 모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조촐하게 점심을 먹으며 낮술까지 한잔씩 했다.  

    

“희승아, 여기 집 되게 좋다. 집도 좋지만 위치가 장난 아니네. 이런 건 월세가 얼마나 해?”

“여기 월세 장난 아냐. 우리 집은 3,400불. 관리비는 별도고.”

“헉, 3,400불? 왜 이렇게 비싼 데를 잡았어?”

“누나, 이 정도면 여기서 싼 거야. 다른 데는 거의 4,000불 해.”     


오 마이 갓. 처음에는 내 귀를 한 참 의심했다. 정확히 여긴 뉴욕도 아닌 뉴저지의 호보컨이라는 도시인데도 말이다. 호보컨은 행정적으로 뉴저지 주에 귀속되어 있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뉴저지의 대표적인 슬럼가였으나 대대적인 도시계획을 통해 180도 탈바꿈을 한 곳이다. 입지적으로 뉴욕과 너무 가까워 통근이 쉽고, 뉴욕보다 조용하고 깨끗해서 주거지로 오히려 더 선호하는 이 작은 동네. 뭐든지 아기자기한 맛과 평온한 분위기의 도시에는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전문직 부부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아무리 전문직 월급자라 하더라도 400만 원의 월세는 정말 너무했다. 한 사람의 월급은 오로지 월세에 할애해야 한다는 뜻인데, 전문직 부부라도 저축이나 투자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 아파트는 개인이 소유를 할 수 없기에 아파트 빌딩은 모두 회사 (developer)의 소유로 관리까지 1층 사무실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Unit이라 칭하는 호실마다 400만 원씩 들어오니 얼마나 임대업이 짭짤할까. 내가 생각했던 임대업의 스케일이 상상 초월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파트는 개인이 임대업을 할 수 없으니 여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의 단독주택의 한 층 또는 일부를 많이 임대 준다고 하는데, 잘만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한 두 블록만 지나가도 각기 개성을 뽐내는 단독주택들이 많았다. 족히 몇십 년은 되어 보이지만, 깨끗하게 관리된 목조 주택들.. 한 평이라도 이 미국이라는 땅에서 내 소유의 집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동생은 2주 후에 호보컨 도시 안쪽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이 환상적인 뷰를 두고 왜 가냐 물으니 지금 이 집은 학군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4살과 6살인데 무슨 학군이란 말인가. 동생은 이사 가는 집의 뷰는 없지만 학교와 마트가 더 가까워 자기 가족에게 더 적합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뷰는 안 봐도 그만이지만 매일 등하굣길이 쉽지 않으면 많이 불편하니 말이다. 가족의 도움을 받으려 일부러 이사날짜를 요맘때로 잡았다는 동생. 겸사겸사 온 가족이 같이 있을 때 이사를 도울 수 있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인건비가 비싼 이 곳에서는 이사 비용도 기가 막히게 높다고 하니 말이다.(그래서 많이들 셀프로 이사를 한단다.)


뉴욕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호텔 안 가고 동생 말 듣기 잘했다. 어설픈 돈 내고 누추한 호텔에 있느니, 이렇게 관리 잘 된 아파트에서 조망도 누리고 아파트 두 군데를 살아보게 돼서 말이다.


‘희승아, 너네도 불편할 텐데 양팔 벌려 우리 가족 맞이해 줘서 고마워. 400만 원 월세가 아깝지 않게 해 줄게. 기막힌 월세에 걸맞춰 우리도 뉴욕에서의 기막힌 경험과 추억을 가지고 가면 되니까.’

앞으로 잠시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될 이 집에서 가족들과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며 뉴욕 도착 첫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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