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불필요한 신용카드 사용을 자제하자는 것과 한국에서 준비해 갈 수 있는 부분은 미리 다 준비해 가자는 것이었다. 귀국 후 날아오는 신용카드 고지서에 좌절하거나 미흡한 준비로 현지에서 조금이라도 아쉽지 않도록 말이다. 결국 이는 둘 다 경비에 관련된 것들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예산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노력의 산물이랄까.
보통이면 우리 네 가족만 신경 쓰면 되지만, 판이 커져서 우리 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현지에 있는 동생네 가족도 같이 뉴욕 여행을 다닐 것이기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와 식사메뉴를 맏이인 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나도 해보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하면서 우리 온 가족에게도 기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일정을 고치고 또 고쳤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까칠하거나 예민하지 않았던 터라 그래도 마음 편히 준비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미 뉴욕에 날아왔고 (항공 클리어), 좁지만 동생집에 짐을 풀었으니 (숙박 클리어)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뉴욕 관광지 입장권 패스 패키지를 가지고 요리조리 잘 버무려 쓰면서 나머지 환전해온 현금으로 알뜰히 살림하기가 나에게 주어진 임무로 느껴졌다. 그 책임감은 실로 말할 수 없었으리라.
남편은 출국 전부터 나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너무 우리 궁색하게 생활하지 말자며. 특히 부모님도 계시고 동생네에 얹혀 사는데 베풀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얼마든지 베풀자며. 이런 기회가 또다시 언제 올지 모른다며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했었다. 자기는 미국에 가서도 미라클 모닝을 유지할 거라며.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는 매일 새벽을 깨울 거라고 말이다. 이 말에는 나도 같이 동조해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기도 했다.
정말로 남편은 뉴욕 도착 이튿날부터 새벽 네시 반에 눈을 떴다. 나도 얼떨결에 일어나서 남편과 같이 허드슨 강가로 나섰다. 새벽녘에 내 눈앞에 펼쳐진 관경을 보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 광경이 많은 이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던 게 아니었을까?
남편과 20분 정도 스트레칭과 스쿼트를 했다. 조금이라도 이 황홀한 광경을 눈에 담아두고 싶어 혼이 나간 듯 운동을 했다. 날씨 또한 촉촉한 새벽바람과 점점 따스해지는 햇살로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남편은 오픈 시간에 맞추어 나를 데리고 스타벅스로 갔다. 새벽 5시가 이곳의 영업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문이 열리기까지 밖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매일 이곳에서 아침을 접수하리라 하며 말이다. 5시 정확히 문이 열렸고, 내 사랑 라떼와 크림치즈 잔뜩 바른 베이글 토스트로 세상 다 가진 기분을 맛보았다.
사실 뉴욕은 아직 발도 못 디뎌봤지만, 이런 일상을 너무 즐기고 싶었었다. 그저 눈팅만 하는 관광지 여행이 아닌, 현지인의 여유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뭔가 바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일상을 나도 경험해 보고 싶었었는데, 이미 새벽을 남편과 깨운 이 아침만으로도 나는 여한이 없었다고나 할까. 늘 너무 바빠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출근을 했었는데 이렇게 남편과 가벼운 운동도 하고, 마주 앉아 커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여유로움이 너무 행복했다. 이래서 다들 한달살이를 하려고 하는 거겠지. 우리 부부가 이곳에 매일 일등으로 접수하자며 행복을 가득 안고 귀가했다.
그 동안 워킹맘으로 딸로 아내로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 잠깐 멈춤, 육아 휴직을 선택한 지금 뉴욕 한달살이는 10년의 경험과 소중함을 나에게 일깨워 줄 것이다. 이 뉴욕 한달살이가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매 순간 시간을 쪼개며 마음껏 경험하고 누리자. 꿈만 같은 이 시간을 충분히 여유롭게 살며 감사하자.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경험으로 만들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