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오늘까지 8점 정도의 그림을 덮었다. 아쉬운 마음보다는 후련함이 더 크다. 보고 있기 괴로운 그림들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이 보이는 것에 치중하여 만들어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그림이었다. 높은 탑을 쌓듯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만든 무언가를 몇 분 만에 파괴한다는 게 조금은 슬플거라 생각했지만 놀랍도록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쨌든 새로운 캔버스가 몇 개나 더 생긴 것 같아 좋다.
나를 제외한 세상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것만 같다. 다들 가야 할 곳으로 뛰어가는데 나는 그냥 가만히 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타인의 속도가 느껴질 때마다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는데 요새는 그러려니 한다. 예전에 어떤 고마운 분이 나만의 속도로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길 바란다고 글을 남겨주셨는데 그 댓글 생각이 자주 난다. 생각해보면 난 그냥 밤마다 혼자 몰래 적는 일기같이 별 볼일 없는 나의 조각을 그리는 건데 몇몇 분들이 메일로, 댓글로, 메시지로 꾸준히 전시 소식을 물어봐주시고 기다려주신다. 아름다운 그림도 멋진 전시도, 의미 있게 시간을 쓸만한 반짝이는 것들이 세상에 참 많은데 시간을 내어 내 그림들을 꼭 보러 가겠다며 동글동글하고 예쁜 말들을 골라 전해주신다. 그런 귀한 마음을 받을 때마다 붓 끝에 온기가 실리는 것 같고 몸과 마음에 균형이 잡힌다.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