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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Nov 13. 2023

수업시간에 제발 좀 떠들어주세요!

매주 토요일 오전, 우리 학교에서는 주말한글학교가 운영이 된다. 한글학교의 주목적은 한국 국적의 아이들에게 한국문화를 경험하게 하고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다. 주말한글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대부분은 6~13세의 한국 국적을 가진 다문화 가정 학생으로, 재중이다 보니 부모님 중 한 분이 중국인인 경우가 많다.


한글학교의 반은 수준별로 구분되며 총 5개로 나뉜다. 오로지 한글 실력으로  반을 나누기 때문에, 나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 반처럼 5학년 아이와 7살 아이가 한 반에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운영하는 반은 한국어 실력이 제일 좋은 아이들이 모인 반이다. 기본적인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초1학년 수준 이상의 문장 쓰기와 언어구사능력이 가능하다. 반이 수준별로 나뉘었다고는 하지만 반 안에서도 개인차가 있다.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인 반면, 어떤 아이는 4~5학년 수준인 아이도 있다. 기본적인 한국어 소통만 된다 뿐이지, 아이들 실력이 다 제각각이기에 개인별 학습 수준에 맞추기가 힘들 때가 많다. 다행히 우리 학교의 경우 아이들 한 명 당 고등학생 봉사선생님 한 분이 배치되어서 부분적으로 수준별 학습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 반은 전체 수업 수준을 2~3학년 수준으로 유지하되, 봉사 선생님이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거나 심화하는 형태로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한글학교의 아이들은 나이, 학습 수준뿐만 아니라 주중에 다니는 학교도 다 제각각이다. 어떤 아이는 중국 로컬학교를, 어떤 아이는 캐나다 학교를, 또 어떤 아이는 한국국제학교를 다니는 등 한 반에 다양한 학교 출신 아이들이 모여 있다. 때문에 작년에 같은 한글학교 반을 하지 않은 이상,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가르쳐본 분들은 이해하실 거다. 7살에서 12살까지 나이와 학습 수준, 특성이 다른 아이들을 모아놓고 수업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무엇보다 한 번도 저학년 담임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7~9세 저학년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보통 학생들의 주의집중력 주기는 학습자의 나이에서 2분을 더하거나 뺀 것과 같다. 예를 들어 7살 아이의 경우 주의집중력 주기는 5~9분이다. 특히 우리 반의 저학년 아이들은 5~6분에 한 번씩 집중력을 잃고 수업을 방해했다. 배고프다고 수업 방해, 한글 공부가 지루하다고 방해, 잠 온다고 수업 방해, 수업이 너무 재미있다고 수업 방해, 자기만 발표 안 시켜준다고 수업 방해, 옆에 봉사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수업 방해... 무엇보다 문제는 이 5~6분의 주기가 아이들마다 동일한 것이 아니라, 번갈아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학년 아이들의 수업 태도도 저학년 아이들에게 전염되었다. 때문에 우리 교실은 언제나 개판 오 분 전이었다. 교실은 엉망인데 진도는 나가야 했고, 아이들을 달래고 달래 가며 겨우 수업을 이끌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날도 어김없이 나와 봉사 선생님들은 오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방전이 되었다. 그 황금 같은 토요일에 말이다... 대책이 필요했다!


사실 이 사달이 난 것에는 교사인 내 책임이 컸다.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는데 초반부터 너무 친해졌다. 초장에 수업시간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하면서 수업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데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수업을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허용해 준 탓이 컸다. 하지만 이제 와서 수업 분위기를 위해 이미 친해진 아이들과 다시 거리를 두는 것도 애매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상황을 180도 돌리고, 뒤집으면서 한참을 고민하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떠들어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


다음날 토요일, 한글학교 수업이 시작되었다.

"얘들아, 오늘은 선생님이 수업 방식을 바꿔보려고 해. 여기 앞에 스톱워치 보이지? 스톱워치에 나와있는 35분의 시간 동안 너희들이 떠들지 않고 조용히 수업을 잘 듣는다면, 수업을 끝내고 바로 쉬는 시간을 줄게. 근데 수업 중간에 한 명이라도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1분씩 스톱워치의 시간을 추가하는 걸로 하자. 어때?"


공부 시간의 경우 아이들이 딜을 할 것이 뻔했기에, 일부러 35분이라고 높게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아이가 내 제안에 이의를 제기했다.


"선생님,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근데 35분은 너무 길어요. 25분으로 하면 안 돼요?"

"맞아요. 선생님, 너무 길어요. 25분으로 해요."


"음... 그러면 28분은 어때? 이 정도면 선생님이 엄청 양보한 거다?"


"네! 아싸!!! 얘들아 28분만 집중해 보자! 28분만 견디면 우리 쉬는 시간이야. 파이팅!"


(28분의 시간에 만족한 아이들)


그렇게 아이들과 나의 내기가 시작되었다. 수업이 시작된 지 10분. 아이들을 보고 봉사 선생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전과 다르게 너무나도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발표는 물론 평소에 싫어하던 받아쓰기도 열심히 해내고 있었다.


흐트러진 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3~4분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 일부러 말했다.

"얘들아, 제발 떠들어줘~~~ 수업 시간이 부족하잖아. 제발 떠들어주렴. 선생님이 이뻐해 줄게."


"안 돼요. 열심히 할 거예요. 얘들아, 선생님한테 속지 마.(그럴수록 더 열심히 하는 아이들)"


하지만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힘든 법. 중간중간 살짝 떠들거나 수업 방해를 하는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1분씩 추가를 했다. 결국 28분으로 시작한 수업은 40분 중 38분을 채우고서야 끝나고 말았다. 놀라운 것은 이 와중에도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얘들아, 고생했어. 선생님한테 안 속았어."

"와... 겨우 일찍 끝냈네. 그래도 잘했다."


더 놀라운 것은 평소보다 1.5배 이상 교재 진도를 나간 것이다. 누구 하나 수업 방해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높은 주의집중력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선생님이 아이들이 떠들 것을 권유(?)하는 얼핏 보기에 괴상한 이 수업... 한 달 전 가능성을 확인한 뒤, 지금까지도 계속 이 수업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제발 떠들어주세요."

"떠들어줘서 고마워. 1분 추가^^"

"수업 시간에 제발 장난 쳐주렴."


여전히 아이들은 높은 주의집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


열심히 공부하는 주말한글학교 아이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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