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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가족여행, 앞으로 몇 번 더 갈 수 있을까?

by 교실남

어릴 적엔 부모님을 따라 정말 많은 여행을 다녔다. 부모님 계모임 여행, 친적들과 여행, 가족여행 등 당시에는 부모님을 따라 밖에 놀러 가는 게 마냥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초등학교 5~6학년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부모님을 따라 밖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땐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한 판 더 하는 것이 좋았다. 곧이어 두 살 어린 여동생도 오빠처럼 부모님을 따라 밖에 나가는 걸 거부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더 이상 부모님을 따라 놀러 가는 일은 없었다. 분명 부모님은 서운하셨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교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여행을 가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래도 이제 동생과 나 모두 성인이 되었는데 가족여행 한 번 가봐야 되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성화에 억지로 4박 5일 제주도 여행을 갔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때도 부모님이 정한 계획에 맞춰 몸만 따라 움직이는 굉장히 수동적인 여행이었다.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거의 여행을 가지 않았다. 가끔 당일치기로 집 주변 지역에 놀러 가는 정도였다. 2020년에 결혼을 하고 나서는 딱 1번 통영에 1박 2일로 놀러 간 걸 빼고는 코로나라는 핑계로 여행을 가지 않았고, 2023년에는 내가 중국에 초빙교사로 2년 동안 떠났기에 가족여행을 갈 수가 없었다. 실질적으로는 20년 동안 제주와 통영 여행을 빼고는 제대로 된 가족 여행을 거의 가지 못한 셈이다.


그 사이 부모님은 나이가 드셨다. 아빠는 내가 중국에 간 첫 해 10월에 퇴직을 하셨다. 퇴직 이후, 최소 5년 이상은 지역마다 5~6개월씩 살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꿈을 가지고 계신 부모님은 올해 초부터 꿈을 실행에 옮기셨다. 첫 정착지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전라도 목포였다.


"이번 6월 연휴 때, 목포에서 우리 가족 한 번 다 모이자. 엄마, 아빠가 풀코스로 대접할게."




부모님, 나와 아내 그리고 동생네 가족(동생, 제매, 조카) 이렇게 7명이 오랜만에 목포에 모였다. 이번에는 대학 졸업 후 제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와는 마음가짐이 좀 달랐다. 2년 동안 한국을 계속 떠나 있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에는 최대한 가족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여행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로 했다. 부모님을 위해서 선물도 하나 준비해 갔다.


부모님은 우리들이 온다고 되게 신경을 많이 쓰신 듯했다. 어릴 적부터 그래왔듯이 우리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들을 체험시켜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첫날부터 일정이 매우 빡셌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해상케이블카와 둘레길까지 약 2만보를 걸었다. 부모님은 며칠 전에 친구분들이 놀러 오셔서, 손님 치르시느라 힘들었을 텐데도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2만보를 걸은 뒤 먹는 저녁식사는 정말 꿀맛이었다.

"우리가 전부 쏘는 거니깐 많이 먹어."


"엄마 고깃집에 7명이면 돈이 꽤 많이 나올 텐데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너희들이 목포 왔으니깐 목포에서 돈 쓰는 건 우리가 다 써야지."


부모님은 우리가 맛있게 저녁을 먹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다.




다음 날 일정은 신한 퍼플섬이었다. 오전 일찍 출발해서 1시간 반 만에 퍼플섬에 도착했다. 여긴 신기하게도 모자, 옷, 스카프 등 보라색이 있는 의상을 착용하기만 해도 입장료가 무료였다.


'목포에 관광객이 이렇게나 많았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이대는 40세 중반에서 80세까지가 되게 많았다. 특히 나이 든 부모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다니는 가족들이 꽤 있었다.


'우리도 한 20년 즈음 뒤에는 저런 모습이겠지?'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 아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10년 전 제주 여행을 갔을 때보다 훨씬 늙으셨다. 항상 똑같을 거 같던 우리 부모님도 세월을 흐름을 이기지 못하셨구나... 시간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다.


'앞으로 부모님과 가족여행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갈 수 있을까?'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이렇게 함께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좀 더 많은 추억들을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받기만 했으니, 앞으로는 우리도 부모님께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박 2일간의 짧은 가족여행이 끝나고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네가 이번에 사준 이북리더기 너무 마음에 들어! 어제도 비가 와서 하루 종일 집에서 이북리더기로 책 읽었는데 2권이나 읽었어. 진짜 좋네. 글씨도 크게 해서 볼 수 있고. 엄마한테는 진짜 최고의 선물이야."


목포에서 비가 오거나 피곤하거나 해서 집에 있어야 할 때, 아빠는 컴퓨터를 차지하고 티비에는 볼 게 없어 집에서 너무 심심하다고 하셔서 사드린 이북리더기. 밀리의 서재까지 다운로드하여 바로 책을 볼 수 있도록 세팅을 해서 선물드리니 엄마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며 앞으로 정말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빠도 ㅎㅎ)

KakaoTalk_20250616_100810723.jpg 정말 오랜만에 찍은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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