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기사를 통해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여행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적으로 존엄사가 허용된 스위스로 말이죠.
그는 스위스 외곽의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가족과 소수의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약물을 주입하는 밸브를 열었습니다.
그러고는 잠들 듯 어느 때보다 편안한 얼굴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의학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타인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것을, 존엄사 혹은 조력사망이라고 합니다.
회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여 완치가 거의 '제로'로 수렴하는 그들의 투병기는 참담했습니다.
글로 전해오기 한계가 있을 것이나 보는 내내 가늠하기 힘든 아픔이 느껴지더군요.
괄약근이 조절되지 않아 예상도 못 하는 사이에 변이 흘러나옵니다.
식도가 협착되어 음식물 섭취가 불가능합니다.
온몸을 조여오는 듯한 고통에 강력한 수면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잠 한숨 편하게 들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신을 찾고 간병인과 의사 간호사에게 제발 죽여달라 악을 쓰며 매달린다고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이 바닥에 이르는 처참한 경험을 매일매일 반복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인간답게 존엄을 지켜며 사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의학계와 종교계의 우려와 걱정 섞인 시선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스스로 거둔다는 측면에서 가벼운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법적으로 존엄사가 허용된 국가에서 이미 부작용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충분히 회생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나 말기의 고통스러운 암 환자가 아닌 일반 환자들도 존엄사를 선택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조차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제각각이며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그러니 객과적 잣대를 들이대기가 불가능한 영역일 것입니다.
기사의 말미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기사에 비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표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비율로 대중들은 존엄사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의미없는 생명연장,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연명치료가 과연 의미가 있는가'로 의견은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글을 올리자니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주제라 썼다 지웠다 저장만 해두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비행기표가 필요 없기에 편도 티켓을 끊었을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며 용기 내어 발행해 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