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만 4천 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다섯 개의 섬을 ‘본토’라 부르죠.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그리고 오키나와입니다.
이 가운데 지리적, 역사적 배경이 다른 오키나와를 제외하고 네 개의 섬을 일본 열도의 4대 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면적이 가장 적은 섬은 시코쿠입니다.
간사에서 기차를 타고 오카야마로 향했습니다. 오카야마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철교를 건넜습니다. 세토내해(瀬戸内海)의 작은 해협을 가로지르는 세토대교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제 시코쿠입니다. 해협은 좁고 그 사이 작은 섬들이 많아, 넓은 바다를 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카야마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면 다카마쓰에 도착합니다. 그마저도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20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시코쿠는 네 개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쿠시마, 가가와, 에히메, 고치입니다. 네 개의 지역이 있는 섬이라고 해서 그 이름도 시코쿠(四国)입니다.
언급했듯 시코쿠는 일본의 4대 섬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습니다. 19,000㎢에 살짝 못 미쳐, 한국의 경상북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죠.
당연히 인구도 가장 적습니다. 시코쿠 네 현의 인구는 도합 350만 명 수준입니다. 시코쿠 최대의 도시인 마쓰야마시의 인구가 50만 명 정도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알려진 곳도 적습니다. 시코쿠 네 개 현의 이름이나, 대도시인 마쓰야마, 다카마쓰 같은 이름도 들어보기 어렵죠.
그나마 고치현의 옛 이름인 ‘도사(土佐)’를 ‘도사견’이라는 개의 종류로 들어본 정도일까요. 일본인들도 네 현의 위치나 이름을 곧잘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만큼이나 시코쿠가 일본 내에서 가진 입지는 다른 세 섬에 비해 크지 않습니다. 일본 역사의 중심에서는 비껴나가 있는 땅이었죠.
교토에서 서쪽을 연결하는 길은 주로 세토내해 건너편의 산요(山陽) 지방에서 맡았습니다. 지금이야 다리가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시코쿠를 드나들 수 있었죠. 시코쿠 안에서도 중앙의 시코쿠 산맥이 지역 간의 교류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이라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시코쿠 네 개 현의 총생산은 도합 14조엔 정도입니다. 이는 시즈오카현 하나의 총생산보다 적은 액수죠. 네 현 모두 1인당 평균 소득이 일본 전체 평균보다 낮습니다.
철도망도 부실한 편이죠. 특히 시코쿠는 일본 철도가 민영화되며 함께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복잡한 지형과 수요의 부족으로 적자는 끝내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JR 시코쿠는 매입할 사람을 찾지 못해 아직도 지분 100%가 일본 정부의 소유입니다.
시코쿠는 일본 4대 섬 중 유일하게 신칸센이 없는 섬입니다. 다리 없이 해저터널로만 연결되는 홋카이도에도 신칸센이 들어왔지만, 시코쿠는 공사 비용과 운임을 감당할 경제력이 없었습니다.
일본 총무성의 조사를 보면, 일본에서는 이동에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34% 정도입니다. 하지만 시코쿠에서는 그 비율이 10%도 되지 않습니다. 대신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이 60%를 넘죠.
일본은 이미 인구 감소 국가입니다.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심화되는 시대에, 큰 도시가 없는 시코쿠의 인구 감소는 더욱 심각하죠. 2023년 시코쿠의 인구는 1% 이상 감소했습니다.
시코쿠는 오랜 기간 역사의 중심에서 비껴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기 때문에 지켜낼 수 있는 것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이곳에 맞는 속도와 전략이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인구가 적은 지방이라는 이유로 느린 속도를 강요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구가 적기 때문에 더 빨라져야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각자의 사정에 맞는, 그 적절한 속도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실제로 시코쿠의 많은 도시들은 그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에히메현은 히로시마현과, 가가와현은 오카야마현과, 도쿠시마현은 효고현과 다리로 연결되어 서로 도시 기능을 분담하며 공생하고 있죠.
오히려 그 길에 방해가 된 것은, 모두에게 같은 속도와 같은 효율성을 강요하던 중앙정부였습니다. 철도 민영화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심에서 벗어난 도시에도, 나름의 방법과 속도가 있다는 점이겠죠. 포화되는 도시와 과소(過疎)해진 농촌 사이에서, 적소(適疎)의 길이 있을 것입니다.
다카마쓰의 성터에는 주말을 맞아 여러 사람이 산책을 나왔습니다. 오래된 영주의 집은 이제 시민들이 종종 행사를 여는 공민관이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쓴 서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다카마쓰의 특산품은 우동입니다. 흔히 이곳의 옛 지명을 따 ’사누키 우동‘이라고 부르죠. 풍부한 일조량으로 과거부터 밀과 쌀의 이모작이 가능했고, 물이 좋아 과거부터 면 요리가 발달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작은 가게에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모두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페이스를 따랐기에 가능한 풍경입니다. 인구가 적어 전란의 현장이 되지 않아, 수많은 유적이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죠. 도시에서 확산되던 기계식 제면을 채택하지 않고 수타를 고집한 것이 후일 사누키 우동이 유명해지는 이유가 됐습니다.
중심에서 비껴나갔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따라갔기에 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코쿠의 도시에, 앞으로는 또 어떤 속도가 필요할까요. 그들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도시의 모습을 기억하며, 저는 다시 다리를 건너는 열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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