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훈
출판 문학동네
발행 2022.08.03
김훈의 소설은 늘 예상을 비켜간다.
칼의 노래가 그랬고 하얼빈도 그러했다.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린 시절부터 해서 얼마든지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쓸 것이 많았을 텐데
군더더기 다 잘라내고,
마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오로지 그 사건에만 집중해서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상상, 하지만 치밀한 상상으로 풀어낸다.
게다가 그 상상으로 쓰인 글이 너무 단호하여
소설이 아니라 마치 작가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칼의 노래 때도 그랬다.
이토 히로부미의 악랄한 점을 나열하기보다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들을 담담히 묘사하는 것 또한 의외의 점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안중근 만세, 이토는 죽일 놈이라는 뿌리 깊은 마음으로 보면 약간 거부감이 들 정도로
작가의 그에 대한 마음은 전혀 드러나지 않을 정도이다.
물론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로서의 고뇌까지 뒤로하고 그를 사살한 것이 맞지만.
그조차도 어떤 대단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언젠가부터, 그게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일이라는 듯
무덤하게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내가 알고 있던 이미지와는 달라 또 의외였다.
게다가 뮈텔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라든가, 후에는 사죄했지만 천주교 신부들의 국교 침탈에 대한 중립적 태도 등도 전혀 미화되지 않아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뮈텔은 이토를 쏜 자는 한국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미개한 사회의 원주민들이 문명개화로 이끄는 선진의 노력을 억압으로 느끼고 거기에 저항하는 사례들은 뮈텔은 세계의 후진지역에 파송된 동료 성직자들의 보고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177쪽 하)
"범인이 안중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뮈텔은 황해도 산골에서 길을 안내하던 안중근과 대학교를 세워달라고 들이대던 안중근을 떠올렸다. 이토가 죽은 뒤에 안중근이 천주교인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뮈텔은 안중근은 이미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184쪽 하~185쪽 상)
안중근의 도시락 폭탄 사건을 극적으로 볼 수 있을 줄, 이토 히로부미를 욕하며 일본에 대한 감정을 쏟아낼 줄, 당시 조선에 온 서양 성직자들이 다 훌륭하고 본이 될 줄 알았던 사람이라면 실망스럽겠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하얼빈.
#김훈 #하얼빈 #안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