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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by Ana


페스트
알베르 카뮈 /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20년 1판 33쇄 (2011년 1판 1쇄)

'(1부) 194x년, 조용하고 한가로운 북아프리카의 해안 도시 오랑에서 갑자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가는 쥐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 사람들도 고열과 부어오름 증세로 사망하기 시작한다. (2부) 정부 당국이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며 사람들은 혼란, 공포와 고립을 겪기 시작한다. (3부) 페스트가 절정에 달하고 죽음이 일상화되면서 장례조차 하지 못하고 시체를 집단 처리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4부) 사람들은 죽음에 익숙해지고 감정이 마비되어 가지만, 또 한편으론 의료, 방역, 자원봉사 등 저항의 노력들도 끊이지 않는다. (5부) 시간이 지나며 페스트가 점점 수그러들고 도시 봉쇄가 풀리던 날 사람들은 감격스러운 기쁨을 맛본다.'

코로나를 겪기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이만큼 공감하며 읽지 못했을 것 같다. 감기도 아닌 것이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었거나 밥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전염되고, 목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때론 후각과 미각을 상실하기도 하고, 확진자가 지나간 곳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왜 이렇게 많이 돌아다녔냐며 원망하고, 나도 그렇게 비난받을까 봐 동선을 신경 쓰며 다니게 되고, 마스크는 얼굴과 일체가 되고, 그렇게 좋아하는 카페도 가지 못하고, 재택이라는 전례 없던 제도가 도입되고, 회사의 모든 행사와 모임이 취소되고, 확진자가 생기면 마치 수용소 배식하듯 비닐장갑 끼고 방으로 밥을 넣어주고 빈 그릇을 받아 다른 가족들 것과 분리하여 설거지하고, 다른 도시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을 뵈러 가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식들이 요양병원 계신 부모님을 면회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기도 하는 등, 정말 전무후무한 일을 겪었다.

그래서 페스트에서 오랑 시민들이 겪은 공포와 혼란, 고립감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페스트'가 아닌 '수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는 사실에서도 전염병이 초래하는 것이 고립된 감옥살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의 대처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고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도 비슷하다 생각했다. 이 사태가 이 도시 사람이 아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도피하려는 기자 랑베르가,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깨닫고 그 도시에 머무르려 한다거나, '이 재앙이 오히려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신의 징벌임을 역설하며 영생을 설파'하던 파늘루 신부가, 죄를 지을 사이조차 없었던 한 어린아이의 죽음을 보면서 '영생의 기쁨이 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나'라고 하면서 조금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바뀌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우리도 코로나가 발발하자 모든 사람이 서로 숙주와 전염균인양 서로 멀리하며 의심했고, 몇몇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벌이라고 했었다. 물론 신의 뜻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한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 죽는 것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나야 하고 서로 얘기해야 하고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을 배웠다.


거대한 죽음의 물결 앞에 생명과 희망의 불씨를 결국 살려내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것이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 돕고 함께 싸우는 연대가 있을 때 인간의 존엄이 유지되고, 의사 리유나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시청공무원 그랑, 혈청을 개발한 카스텔 등과 같이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결론이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구나 싶다.

덧) 김화영 교수님의 번역과 작품해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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