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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Sep 04. 2022

"살아 있어도 괜찮아. 정말로."

영원의 아이(1999) 덴도 아라타

[세계 추리문학전집] 34/50


에히메 현 소아 종합 병원에 입원한 두 소년과 한 소녀의 별명은 지라프(기린), 모울(두더지), 루핀(돌고래)이다. 왜 열 살이 조금 지난 아이들은 이곳에 모여 서로 동물 이름으로 부를까. 가슴 아픈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사연이 숨어 있다. 다친 영혼, 특히 어린 아이의 마음에 주목하는 작가 덴도 아라타. 그가 구상부터 집필까지 6년 가까운 세월을 들인 소설 『영원의 아이』는 가족 안에서 행해지는 아동학대를 다룬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등 여러 상을 받으며 20세기를 마무리한 통렬한 미스터리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어린 시절의 학대에서 비롯한 상처를 안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친구가 된 아이들. 어른으로 다시 만나 17년 동안 덮어왔던 상처의 근원에 다시 다가간다. 위태롭고 불안한 여정을 미스터리의 틀 안에서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가며 그려낸다. 무겁고 가혹한 소재를 다룸에도 아이들에게 새겨진 아픔을 소설의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탁월하다. 카타르시스를 자아내기 위해 끔찍한 고통을 전시만 한 뒤 쉽게 봉합해버리는 비겁함도 없다. 비록 소설 속이라고 해도 이미 아이들은 상처 때문에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을 상흔 앞에 다시 서게 해줄 뿐이다.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지의 여부 또한 오로지 세 명 각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이야기를 창조하긴 했지만 역시 제삼자일 뿐인 작가가 타인의 아픔을 간단히 치유해줘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의도로 보인다. 대신 아이들에게 가능한 가장 가깝게 다가간다. "힘들 땐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같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찾아봐.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느 영화(<큐폴라가 있는 거리>) 대사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세를 취한다. 원고지 5천 매 분량 내내 이어지는, 읽는 내내 한없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애절함 가득한 문장들이 근거다.


예를 들면, 집을 나간 자신을 찾아온 어린 아들을 쏘아붙이던 ‘지라프’의 엄마의 말. 거짓으로 병이 나은 척했던 ‘유키’와 이를 알아채고 걱정 어린 말을 건넸던 정신병원의 젊은 의사가 나눈 대화. 양부모님과 떠난 여행에서 ‘지라프’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마음. 폭우 속 동굴 안에서 지샌 하룻밤 사이의 고백들과 치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키’가 받게 되는 한 통의 편지. 투명하고 힘 있는 문장은 한없이 영원에 가까운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전해준다. "살아 있어도 괜찮아."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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