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을 주검과 나란히 누워 있게 하다니!
-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읽다가
기억은 양극단을 달린다.
어떨 땐 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수십 년은 된 것 같다. 그 죽음이 반세기를 넘어 한 세기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할머니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고, 나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할머니는 여전히 고모 농장에 살아계실 것 같다. 자동차로 20분만 달려가면 할머니가 밭에서 풀을 뽑고 있을 것 같다. 깡마른 몸집의 자그마한 노인이 고랑에 쪼그리고 있다가 “왔나?” 하며 고개를 들 것 같다. 검고 두꺼운 피부(차라리 가죽이라고 하자)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가 내 기억의 양극단을 이어주었다. 아래 대목이 망각의 어둠에 묻혀있던 기억 하나를 생생히 되살려냈다.
영안실로 가는 길에 어머니와 한방을 썼던 부인이 통유리가 달린 직원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부인은 핸드백을 지니고 앉아 있었다.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영안실로 옮길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게 한 거였다. - p10
내가 고모 농장에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한밤중에 병원으로 갔다.
그날따라 농장에 차가 없었다. 고모와 나는 택시를 호출해놓고 큰길로 나와 기다렸다. 기사는 야밤에 외진 곳까지 달려온 것에 대해 우리에게 감사를 바랐다. 이 사람은 우리를 얕잡아보는 태도로 일관했는데, 결국 나는 요양병원 앞에 도착해 택시비를 계산할 때 크게 화를 냈다.
“지금, 사람이 위급하다고요!”
내 말 한마디에 기사는 꼬리를 내렸다. 우습지만 그때 무슨 이유로 화를 냈으며, 어떤 상황 끝에 저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모와 나는 앞으로도 수차례 병원으로부터 긴급호출을 받게 되리라 예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막 돌아가신 뒤였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잠을 잔다고 생각했으리라. 주검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첫눈에 알아보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것이 껍데기라는 걸. 할머니가 평생 걸쳤던 몸이라는 이름의 옷이라는 걸.
알맹이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할머니 입 안에 어둠이 고여 있었다. 벌어진 입이 깊은 우물처럼 보였다. 알맹이가 저 우물 속으로 꺼져버렸나?
무릎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울긴 했으나, 솔직히 말해 엄청나게 슬픈 건 아니었다. 그저 ‘대체 이게 뭐지?’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복도로 나가 아버지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다시 병실로 들어서다 그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병실은 2인실이었다. 왼쪽 침대에 할머니 한 분이 벽 쪽으로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잠을 자는 건 아니었다. 잠든 척 눈을 감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양팔로 귀를 막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구부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 오른쪽 침대에서 발생한 ‘죽음’을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태도였다. 한편으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옆 침대를 집어삼킨 죽음이 머지않아 자신의 침대도 삼킬 거란 사실을 아는 자의 두려움.
누구 하나
그 할머니에게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사망 절차를 밟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을 들락거렸다. 우리 가족이 병원으로 속속 도착했다. 상조회사를 통해 장례식장을 잡았다. 그 번잡한 일련의 과정을 왼쪽 침대 할머니는 몸을 웅크리고 누운 채 감내해야 했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보다 그 할머니가 백 배는 가여웠다.
어째서 저 할머니를 저렇게 방치하는 걸까?
산 사람을 주검과 나란히 누워 있게 하다니!
병원 측은 마땅히 그분을 다른 어딘가로 모셔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병원들도 마찬가지였을까? 그곳만 그랬을까? 지금은 바뀌었을까?
30년 전,
프랑스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어머니와 한방을 썼던 부인’을 방치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영안실로 옮길 때까지 그 부인을 ‘통유리가 달린 직원실’에서 ‘핸드백을 지니고’ 앉아 대기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