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속으로 10 화.
별 일없이 지나가는 하루, 그것이 하루의 소망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주 언니의 친구 아들이 동부 유럽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수술은 잘 되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문제는 아들이 그곳에서 마음고생을 너무 한 바람에 우울증이 생겨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서 발생하였다.
현지 병원에서는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라 한국의 의료진이 대동한 상태에서 퇴원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그 친구분이 동생이 병원에서 근무하니 그곳까지 올 수 있는 휴직 상태의 간호사나, 의사를 알아봐 달라며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급하신 것 같아 나름 알아보는 중 친구분이 어디선가 의사를 구했다고 하여 다행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언니가 알려주기로는 그 의사가 요구한 액수가 자그마치 1 억 이라고 했다.
현지 병원에서는 회복이 거의 되어서 형식적으로 의료진 대동을 요구했다고 하여 비행기로 오는 사이에 특별한 처치가 필요 없는 상태인 것으로 들었는데 3일간의 업무에 1 억 이라니...
나의 반려자에게 이야기하니 액수가 너무 한다며 미리 알았으면 그 반값에 해드릴 수 있었는데 하며 아쉬워한다. 나도 애달픈 모성애를 빌미로 액수를 너무 지나치게 불렀다는 생각에 화가 나면서 내가 휴가 받아 그냥 도와드린다고 할 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나는 몇 백만 원 정도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세상을 모르는 걸까? 아마도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이런 상황인가 보다.
살아가면서 여행이야 말로 일상의 선물일진대 이런 상황에서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가끔 있다.
세월호 사태, 헝가리 유람선, 그리고 얼마 전 히말라야 눈사태 등...
이런 사고들을 보고 있으면 집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일보다도 별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하루 인가 새삼 느끼게 된다.
지난주에 직장 동료와 언쟁이 있었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누구와 언쟁을 크게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직장에서 최고의 복지는 좋은 동료라는 브런치 내의 글을 읽었다. 그 글에서 좋은 동료란 직장에서 서로 간에 지나치게 사적이지 않으며, 일을 우선으로 하는 일 잘하는 동료라고 했다. 그래서 때로는 차가운 동료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일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동료일까? 나는 성격상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성격인지라 동료들의 가정사에 대한 수다에 잘 참여하지 않는 성격이다.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때로는 나를 차가운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 글의 기준에서 보면 괜찮은 동료인데 사실 이론과 실제는 일치하지 않는 법. 아니면 그 기준에서 무언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에 대해서는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니 편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누가 잘했든 잘 못했든지 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동료와 불편한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으니...
서로가 잘 맞지 않는 경우 그냥 일에서만 접촉하며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어갈 수 있는데 그의 분노를 보고 다시 그를 마주 대하자니 이전보다 더 마음이 좋지 않다. 아마 그 또한 그럴 텐데...
직장에서 이직하는 이유 중 가장 많은 이유가 사람 때문이라는데 이 나이에 동료 문제로 이직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동안의 내공으로 버텨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으나 영 마음이 불편하다. 내일 출근할 일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달픈 직장생활이지만 난 늘 환자분들과 그 가족들을 통해 인생의 또 다른 부분을 배우는 것으로 버티는 것 같다.
지난주 금요일 내가 맡은 환자는 17살의 소년이었다. 골육종의 전이로 한 달 전에 흉부외과에서 전이된 폐종양을 제거받았던 환자였고 그때도 내가 마취를 담당하게 되었었다. 그 당시에도 수술과 항암 치료를 끊임없이 받아 키 166 cm에 체중이 겨우 41 kg 밖에 안 되어 너무 가슴이 아팠었다.
그 소년이 이번에는 복부와 척추 옆에 종양이 생겨 신경외과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체중이 더 빠져서 39 kg 밖에 안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실에 도착한 소년의 파리한 얼굴빛은 평온한 느낌이었다. 수술부위 통증이 사라질 만하면 또 다른 곳에 수술을 해대는 의료진들에게 짜증이 날만도 할 텐데...
내가 길거리에서 본 중, 고등학생들의 얼굴보다도 더 평안하고 근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병색은 내가 본 어떤 환자보다도 더 짙었다.
수술부위가 워낙 대동맥, 하대 정맥과 가까운 곳이라 출혈이 발생하면 대량 출혈로 이어질 수 있어 혈액과 수액을 투여하기 위한 정맥로를 여러 곳에 잡아야 했기에 피부와 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소년의 몸에 굵은 주삿바늘을 삽입하면서 마음이 우울하였다.
다행인 것은, 영상검사에서 하대 정맥 안에도 종양이 침투한 것으로 판독되어있어 그 정맥 안의 종양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수술 시야에서 확인된 바로는 종양이 정맥을 누른 것으로 정맥의 침투는 보이지 않아 수술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종료되었다.
환자를 마취에서 깨우고 중환자실에 이송하면서 소년의 부모님을 찾으니 어머님이 보호자 대기실에서 나오셨다. 한 달 전에도 뵈어서인지 얼굴이 낯익었는데 그 당시에도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보다 담담하셔서 기억에 남아 있던 어머님이셨다.
역시 이번에도 역시 담담하게 의료진과 이동카 뒤를 따라오시면서 말씀하셨다.
" 이번에도 중환자실 가는 거지요?"
"네. 어머님. 수술이 잘 끝나서 중환자실에서 오래 있진 않을 거예요"(위로의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 그래요? 우리 ㅇㅇ이가 중환자실 간호사님들이 이쁘시다고 오래 있는 거 좋아하는데..."
웃으시면서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아.... 세상에 이런 아이도, 부모님도 계시는구나..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극한 절망의 순간에도 웃을 수 있는 부모님과, 통증 속에서도 이쁜 간호사님들을 바라보며 좋아할 수 있는 아이가....
이런 부모님과 아이들 환자를 보면 나는 존경스러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보다 더 인생을 깊이 아는 것 같아서...
집을 떠나 있는 아이와 카톡을 했다. 아이 말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일부 지역이 물에 잠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나는 놀라 인터넷을 찾아보니 정말로 그 지역에 많은 비로 홍수가 나 집이 잠기고 차가 떠내려가고 지나가던 차를 나무가 들이받아 이런저런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었었다. 또한 다음 주부터 태풍이 지나갈 예정으로 되어 있어 불안한 상황이었다.
한국에 있으면 이런 일은 좀 적을 텐데... 해마다 가을, 겨울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토네이도와 홍수, 태풍으로 조마조마하니...
오늘은 모처럼 시골 학교를 벋어나 대도시로 바람 쐬러 가기고 한 달 전부터 일정이 잡힌 바람에 그 잠긴 도로를 뚫고 놀러 나가겠다고 하니... 가지 말라고 말할 수 도 없고 제발 무탈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나 또한 전철과 버스를 애용하는 만큼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메르스 때는 딱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는 집 앞 마트를 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병원의 감염 관련 전문의 선생님께서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스나 메르스보다 약한 바이러스라 이런 상태가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말하자면 증상이 약한 만큼 감염된 사람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아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잡아내기가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니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명의 환자가 발생한 모든 기관이나 사업체, 지역은 일상이 멈춤 상태가 되어 버리니 앞으로 이 바이러스가 경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어 더욱 걱정이다.
너도 나도 요즘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 나 또한 나를 제외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평안하고 잘 풀리는 것 같고 유독 나만 일이 꼬이고 안 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았다.
하루하루의 세상살이가 참으로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그러나 너무 길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그냥 단지 하루만 생각하길.
오늘 하루 무탈하면 그것으로 감사해 하자.
하루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그린 명화로 누구나 밀레의 '만종'이 떠오를 것이다.
만종이란 교회에서 저녁에 치는 종소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명화 자체의 원 제목은 삼종기도( The Angelus)라고 되어있다. 그림의 2/3를 차지하는 넓은 대지의 안정적인 구도에서 자연과 인간의 밀착된 관계를 보여주는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으로 평안해지면서도 슬프다. 이 그림에 유난히 애착과 불안을 느껴 이 그림에 관한 책까지 발표한 살바도르 달리의 조금은 섬뜩한 그림에 대한 해석을 조금 읽은 적이 있는데 참으로 세상 사람들의 시각이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밀레의 만종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 바구니에 담긴 것이 씨감자가 아니라 죽은 아이였으며 바구니는 관이었다는 설이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 바구니가 관이던지, 감자가 아기였던지, 밀레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크게 변하지 않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늘 겸허해야 할지니...
제목: The Angelus (장 프랑수아 밀레 작품, 1857-9, 오르세 미술관 소장)
장 프랑수아 밀레는 프랑스의 농부를 가장 프랑스적으로 묘사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은 화가다. 농촌 출신인 그는 “일생을 통해 전원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내가 본 것을 솔직하게, 그리고 되도록 능숙하게 표현하려 할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풍경 속에 있는 농부들의 모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여럿 제작했다. 풍경이 주가 되고 인물을 그리더라도 작게 점경으로 처리하던 바르비종파 화가들과 달리 밀레는 농민을 주로 그렸다.
1865년 밀레는〈만종〉은 옛날에 할머니가 들에서 일하다가도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죽은 가엾은 이들을 위해 삼종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음을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이다.”라고 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룬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감자를 캐고 있었고, 주변에는 갈퀴와 바구니, 자루, 손수레 같은 농기구가 보인다.
〈만종〉은 원래는 부유한 미국 상인의 아들인 토머스 골드 애플턴이 1857년에 주문한 그림이지만, 그는 이를 구입하지 않았다. 이후 이 그림은 큰 인기를 얻었고, 1889년 루브르에서 구입하려고 했지만 미 예술연합에 선수를 빼앗겼다. 하지만 곧 알프레드 쇼샤가 이 그림을 다시 구입해 1910년에 프랑스 정부에 유증 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작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 같은 미술가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1932년에는 한 정신 이상자에게 찢기는 수난을 당한 파란만장한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