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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y 24. 2022

나와 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설은아,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를 읽고

수많은 목소리들이 담겨 있는 책. 이 책을 읽다 보면 꼭 소라 껍데기에 귀를 대고 있는 것 마냥 파도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넘실거리는 기분이 든다. 마음의 바닥들에 놓여 있던 언어들이 건져 올려져 책에 담겼다. 


꼭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오롯이 혼자인 작가들이 쓴 초고는 어쩌면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었던 목소리들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책이 되어 독자를 만나고, 누군가의 마음을 읊어주는 해석이 되는 여정. 책이라는 것이 이 전시와 닮은 것 같다. 이 책에 담긴 하나하나의 목소리들은 어느 한 때의 나와 꼭 닮아 있어서, 혹은 닮아 있을 것만 같아서 애틋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미 들어본 것만 같았다. 


만약 전시에 가보지 않았다면 몹시 아쉬웠을 것이다. 사적인 서점에서 열린 전시에서 수화기에 귀를 댔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토록 강렬했던가? 목소리에 눅진하게 눌어붙은 그 감정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책에 담긴 목소리들은 잊히지 않는 오래전 자신의 잘못, 나만 알고 있지만 어딘가에는 말하고 싶은 비밀,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 등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97,258번째 통화는 꼭 과거의 내가 쓴 것만 같아서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었다. 


누군가가 꼭 내 마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언어로 같은 마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 덜 외로워졌다. 이 책을 읽는 어떤 사람도 수많은 목소리 중 자신과 닮은 목소리를 건져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로울 때 꼭 끌어안고 싶은 책이다.



-책 속의 문장들: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작은 파동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평범하다는 것이 그렇게 나는 부럽더라. (61,235번째 통화)"

"누가 먼저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괜찮다고 답해도 끈질기게 물어봐주면 좋겠다. (92,201번째 통화)" 




희우 작가의 프라이빗 에세이 연재는 '희우의 선명한 오후' 네이버 프리미엄 채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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