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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Nov 28. 2022

여긴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윤하, 사건의 지평선


  운동 다녀오는 길, 한 차례 비가 내린 후 단풍잎들이 여기저기 바닥에 나뒹굴었다. 촉촉이 젖은 아스팔트 바닥, 흐린 하늘과 차가운 공기.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노랫소리. 꼭 덴마크에 있던 시기의 공기 같았다.



 내가 도착했던 2월, 흐린 하늘에 오락가락한 비나 눈이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우산 없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오래된 자전거 바퀴를 열심히 굴러 학교에 가던 길. 호기롭게 외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취 한 번 안 해본 나는 몹시 쓸쓸했다.


 가족들이 움직이고 씻고 텔레비전 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무한한 자유처럼 느껴졌지만 갈수록 견디기 힘들었다. 대하드라마를 보는 둥 마는 둥 24시간 틀어두던 날들. 고작 스물넷, 루푸스 관해기(완화기)에 접어들어 떠날 수 있었던 교환학생. 그때의 건강이 언제까지나 유효할 듯이, 지독한 열병을 완전히 털어낸 듯이 새로운 희망을 틔우려 했다. 무엇이 되면 좋을까, 어렵고 행복한 고민을 했었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이 되면 좋을까?

 6년이 지난 지금의 내게도 유효한 고민. 최대치의 체력을 추정하고 가늠해보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죽 늘어놓는다. 너무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잘하고 싶은 만큼 열의를 불태울 것이 분명한데, 받쳐주지 않는 체력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기에. 지금의 미약한 건강도 되찾기가 아주 어려웠단 걸 알아서 망설여진다.


 그래서일까, 몹시 외로웠지만 어떤 꿈과 희망과 시간을 가지고 있던 내가 그립다. 

그렇지만 "여긴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일 테니까. "많이 많이 그리워"하겠지만,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흘러가야겠지. 그때의 나는 상상할 수 없었던 지금의 내가 된 것도, 사건의 지평선을 건너왔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든다.


 분명 내겐 또 다른 생각지도 못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여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길의 모퉁이일 뿐일 테지. 아직은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조급함을 내려놓고 몇 발짝 떼면 새로운 일들이 있을 테다. 그리워하기보단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건너 가야지.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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