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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야 Feb 11. 2024

뿌리가 없는 이들

꺾꽂이로 살아남기 

출처 Botanical House

대학 동기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모두 사는 모습은 제각각인데 원가족과 단단하고 따뜻한 유대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했고, 그 점이 나와는 많이 달랐다. 그녀들은 결혼을 하고 새 가족을 꾸렸지만 원가족 근처에 살면서 육아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아프고 힘들 때 서로를 간호하고 지지해주면서 살고 있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친구들의 그런 평범하고 따순 삶이 나는 많이 부러웠다. 그들이 쉽게 건네는 정다운 말, 자기 것을 별 것 아닌 냥 여유롭게 내어주는 정서가 실은 원가족과의 단단한 연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게는 그런 연대도, 여유도 없고 그런 정다움과 여유도 없으므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원가족과 단절된 상태로 지내오다 이제는 부모님 모두가 돌아가셨으니 내게는 '원가족과의 연결'이라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건 뿌리가 없이 지내는 기분이다. 무거운 몸통을 지탱해 줄 뿌리가 없으니 작은 바람에도 위태위태하다. 내 안은 억새풀처럼 텅 비어있다. 겉은 멀쩡하지만 텅 빈 속이 휑하다. 비바람이 세게 꺾어버린다면 버티지 못할 수도 있겠다. 


고향 땅이나 집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이들,

가족들과 연결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

아니 무엇과도 연결되고 싶지 않은 이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뿌리가 없는 이들이라 부른다. 

본인의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뿌리가 잘려나갔다. 


부정하고 싶지만 뿌리는 꼭 필요하다. 식물을 보면 알 수 있다. 뿌리가 뽑힌 식물은 금세 죽어버리고 만다. 뿌리가 있어야 땅에 단단히 고정하고 서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뿌리가 없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다시 식물의 세계가 답을 준다. 줄기나 잎사귀 어디든 한 곳을 잘 꺾어다가 적당한 수분과 양분이 있는 흙에 꽂아보자. 마땅한 흙이 없다면 그냥 물도 괜찮겠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줄기 끝에서 하얗게 뿌리가 자라기 시작한다. 잔혹하게 댕강 잘려 나온 몸에서, 날카롭게 베어진 상처에서 다시 뿌리가 난다. 뿌리가 자란 줄기를 흙에 옮겨 심으면 아주 잘 자란다. 이는 식물의 번식시키는 유용한 방식으로 꺾꽂이 또는 삽목이라 부르는 방법이다. 


나는 꺾꽂이로 자라는 무수한 식물들을 떠올리며 텅 빈 내 안에 여전히 아물지않은 상처를 본다. 사선으로 잘린 자국이 사라질리 없지만 거기서도 뿌리가 나고 있다고 믿는다. 뿌리를 1미리씩 천천히 뻗어 거친 흙에다 발을 꽂았다고 믿는다. 그래, 뿌리가 없으면 뿌리를 내면 된다. 그러니 연결된 곳이 없다한들 너무 괴로워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의연하게 살아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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