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정의를 정확하게 찾아본 적이 없다. 라테 타령을 하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얘기를 하는 나이 든 사람 정도?로 추측했을 뿐.
꼰대는 '늙은이'라는 말의 은어이고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이라고 한다. 나이를 먹음으로 자연스럽게 생기는 '권위'를 어린 사람들한테 휘두른다는 말이다.
올해 나는 여러 일상에서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 나의 유일한 목표는 '꼰대가 되지 말자.'인데. 말처럼 쉬운 일일까 싶다. 나이를 먹은 것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MZ들에 대한 울분을 터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9시 출근이면 우리 때는 8시 30분부터 준비했어,라는 말에 흠칫했다.
10여 년 전의 나를 떠올리며 내가 상사들한테 미움받은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8시 59분에 "좋은 아침입니다~" 하며 들어가는 타입이었다. 단 한 번도 일찍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유독 지하철 시간표가 딱딱 맞아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날은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다 9시 땡 하면 들어갔다. (내 기억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러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누구도 나에게 10분 전, 20분 전 와서 일을 준비하면 좋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고, 사사건건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노처녀 상사가 있었을 뿐이다. 당시 그녀가 나를 유난히 질투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탓이었다는 깨달음을 10년이 훌쩍 지나 알게 된 것. 미안해요. 자의식 과잉이었네요. :)
학부모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물론 이것을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1학년 학부모와 6학년 학부모의 생각 차이, 특히 작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이제 막 발을 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내는 수많은 오해들도 대부분 "이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당연히,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관계에 서툴고 타인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일이다.
'나도 그때 저랬는데, 나도 어렵고 힘들었는데.'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전부 이해가 되는 일이다. 내가 뭐 하나 쉽게 해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어렵고 힘들었던 부분을 당연히 공감하게 되는 것.
'나도 그랬다.', '나랑 비슷해서 알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꼰대'라는 것은 결국 정보의 비대칭으로부터 시작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 원론적이라 차치한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문제 앞에서 정보가 없는 쪽을 가르쳐서 빨리 내 식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법이지만, 그때의 내가 헤맸듯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기다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언제까지 기다리냐고? 상대방과 나 사이에 신뢰가 쌓일 때까지다.
그 신뢰는 전적으로 이미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많이 가진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나의 한 마디가 신뢰를 갖게 될 때까지.
오늘 윤소정의 생각 구독을 읽다가 본 일화가 딱 그랬다. 여행 중 계속 밥을 산다고 했던 어린 친구가 마지막까지 밥을 살 기회를 못 찾았다. 식사가 끝나기 전 재빠르게 계산을 하는 윤소정의 남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스승이 말했다.
동원아 너는 계산을 좀 몰래 했으면 좋겠어. 계산을 하기 전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라고 하는 선배가 어딨어? 조용히 몰래 계산하는 것. 그것도 꼭 필요한 비즈니스 매너야.
상대를 위한 솔직함. 어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
이 일화가 그 뒤 윤소정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부분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직원들은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물론 상대의 생각까지도 그녀의 관점이기 때문에 그 속내를 다 알 수는없지만 아마 정말 고마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트루스라는 집단 자체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
내가 신뢰하고 있는 사람, 가르침을 얻고 싶은 사람의 한 마디는 중요하다. 사람은 나를 성장시킬 이야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라.
대학의 한 구절이다.
일에서도 학교에서도 이래저래 책임 있는 자리를 보내는 올해,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되뇌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