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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해향취 Jun 21. 2024

31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13

그렇게 나는 자칭타칭 MZ트민녀인
31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대한민국 여성 1명당 합계 출산율이 0.78명, 출생아 수는 52개월째 전년 동월 대비 감소, 이로써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한 이 시점에 나는 둘째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있다. 첫째에 이어서 바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만큼 모성애가 들끓어서도 재정적으로 여유로워서도 아니다. 인구 증가에 이바지하고 싶은 애국자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의 두 번째 아기는 그저 ‘아름다운 방심(?)’으로 생겨난 생명이다. (태명도 중간에 ‘아방’이로 바꿀까 고민하기도 했다.)


1년 3개월 만에 복직을 하고 한 달 만에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빨간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이 되어 피곤한 줄 알았고, 나와 지독히도 맞지 않은 팀장과 다시 함께 하려니 몸과 마음이 뻐근한 줄로만 알았다. 주말이 되어 참새 같은 가족들과 함께하면 금방 회복이 되겠지 싶었는데 잠에 한번 들면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엄청난 중력을 느꼈다. 첫째를 가졌을 때와 흡사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칭타칭 MZ 트민녀(트렌드에 민감한 여자)인 31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미 남편은 육아 휴직에 돌입한 상태라 가장이 된 내가 바로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복직 후 6개월 만근 시에만 지급하는 육아 사후 급여 제도나 퇴직금 등 금전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곧 시니어를 앞두고 있는 커리어 시기를 따졌을 때도 당장의 퇴사는 어려웠다. 고민 끝에 남편과 일단 6개월만 버텨보자는 합의를 거친 후 왠지 모를 죄스러운 마음과 배를 꽁꽁 감추며 가을겨울을 지나 늦은 봄에 퇴사를 했다.  


출처_어피티 설문조사 결과 일부. ⓒ어피티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


정말이지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MZ세대들이 자녀 계획이 없는 이유> 1위부터 5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몸소 체감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을 일 잘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매번 칼퇴를 박는 팀원은 눈엣가시처럼 탐탁지 않았을 테다. 실제로 복직 면담에서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일만 잘한다’며 야근의 압박 아닌 압박과 함께 나의 육아 휴직 시기가 옳지 않았다는 뒷말도 들려왔다. (대체 옳은 육아 휴직 시기는 언제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여초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옳지 않은 생각이 만연한데 어떻게 MZ세대가 출산과 육아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유로운 생활은 차치하고도 육아에 대한 확신, 경쟁 사회 같은 환경적 이유, 경제적 부담, 직장과 가정생활 병행의 어려움 등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불확실성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국 자녀 계획 선택지에 몇 명을 낳을 것인가의 고민이 아닌 ‘없음’이라는 단정적인 항목에 쏠리게 되었다.    




한때 본인은 아기를 낳을 생각이 절대 없다는 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꼭 한번 애를 낳아서 길러보라는 사랑스러운 저주를 내리기도 했다. 한 인간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는 얼마나 부단한 희생이 따르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째를 낳을 결심은 어디서 오는가. 이것 또한 나의 순수한 경험에서 기인한다. 천사를 낳았다며 기어코 만원을 쥐어 주시던 어르신, 순산하라며 따끈한 서비스 튀김을 건네주시던 음식점 사장님, 만원 전철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나를 대신해 힘주어 목소리를 낸 젊은 여자, 늘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봐 주던 회사 동료이자 친구 주디, 종종 실의에 빠진 내게 사랑하면 망할 수가 없다며 다독이는 남편. 이외에도 배려인지 모르고 받았던 많은 이의 다정한 틈들이 둘째를 낳고 기를 용기를 주었다.


나에게 많은 T적 영감을 주는 남편과의 대화


결코 막연한 현실을 뒤로하고 출산을 권장하는 것도, 과거의 팀장에게 했던 것처럼 독기를 품고 나와 같은 MZ세대의 여성들에게 육아라는 사랑스러운 저주를 내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출산과 육아가 ‘나’라는 사람을 아우르고 있던 것들을 전부 무너뜨릴 것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사 무너진다 해도 아니 당연히 무너지겠지만 지금껏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마음, 가치들이 그 빈 곳을 차곡차곡 메울 테니. 그것들이 모여 언젠가는 전에 없던 자유와 경험을 선사할 테니.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첫째의 하원과 둘째 출산을 하루 앞두곤 작은 생각을 얕게 띄워본다.



2024.06.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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