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진 Jan 13. 2023

주목해야 할 예술가 5 # 헤롤드 안카르트

헤롤드 안카르트 Harold Ancart

벨기에 출신 해롤드 안카르트는 2009년부터 뉴욕, 런던, 브뤼셀, 홍콩, 로스앤젤레스, 베를린에서 전시회를 하며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회화, 조각, 설치물로 대자연의 풍경, 이미 만들어진 환경 그리고 그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표현한다. 추상적인 색감과 자연적인 형태 구성으로 빙산, 지평선이 그의 주요 모티브이다.


안카르트는 어린 시절 벨기에 만화 에르제(Herge)의 '땡땡이의 모험'과 페요(Peyo)의 '스머프'를 즐겨 보았다. 이후 일본 SF만화가 오토모 가트히로와 미국 만화가 프랭크 밀러의 만화를 보았고, 프랑크 아우어바흐(독일 출신 영국 화가), 제임스 엔소르(벨기에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레옹 스피리에르(벨기에 화가)의 그림을 보며 영향받았다.[1]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행기 승무원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주말, 휴일, 방학이면 어디든 여행을 떠났어요. 아프리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닌 경험은 세계를 보는 관점과 시각을 열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주변에 나만큼 여행을 많이 다닌 아이는 없었어요. 그 경험은 자라면서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2]

Harold Ancart, Untitled, 2019 ©David ZwirnerGallery

대학 2학년 때 도날드 주드(Donald Judd)의 글을 읽고 추상화와 미니멀리즘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후 드로잉은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에서 엘스워스 켈리(1923~2015)까지, 아프리카에서 애버리지니널(호주 원주민 Aboriginal)이 사용하는 무늬까지 다양하게 영감을 얻었다.




캉브레 국립예술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벨기에에서는 예술가로 할 일이 많이 없었다. 작은 예술가 커뮤니티뿐이었다. 지도를 보며 화가들이 어디에 모이지? 생각하다가 뉴욕을 선택했다. 낯선 뉴욕 생활을 혼자 시작했을 때, 베이글 빵 하나를 아침 점심에 나눠 먹으며 지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벨기에로 엄마에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뉴욕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David Zwirner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Freeze>, London, 2018. 8.31-10.22 Ⓒdavidkordanskygallery.com


2018년 1월 뉴욕, 그는 빙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선을 긋고 또 다른 선을 긋는다. 그리고 색을 채워간다. 수평선, 구름, 꽃, 불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그렸다. 빙하는 멀리서 보면 언뜻 사람의 뒷모습 같기도 하고 헤엄치는 동물 옆모습처럼 보인다. 안카르트는 의인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빙하, 구름, 수평선 등 이것들 역시 많은 얼굴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 보인다.


Harold Ancart, Untited, oilstick &graphite on paper mounted to panel, 133.4x105.4cmⒸSotheby.com


빙하를 그린 회화 작품들은 런던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전시회에 모든 그림은 하늘과 바다, 수평선뿐이었다. 이렇듯 추상화처럼 보이는 회화의 주제 선택 방식은 어찌 보면 아니 작품 주제 진부하고 흔 풍경으로 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David Zwirner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Freeze>, London, 2018. 8.31-10.22 Ⓒdavidkordanskygallery.com

그는 수평선, 구름, 꽃, 불꽃과 같은 우리가 평범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을 주제로 그린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풍경이 우리에게 휴식 같은 선물을 주는 특별한 시간이 될 때가 있다. 평범한 풍경은 특별함이 될 수 있다. 

Harold Ancart, Untitled, 2015, Oil stick & pencil on paper mounted on wood, 133×97cmⒸdavidkordansky



안카르트는 어디든지 도처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본다. 세계는 화가에게 그 자체로 쇼핑몰이다. 나쁜 주제란 없다. 회화 그 자체가 이미 세계에 들어가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마음속에 무관심, 태연함 같은 상태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림이란 그리 심각한 과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특별한 관점 없이 무심코 생각나는 데로 그리는 어린이와 그림의 관계처럼 말이다.


Harold Ancart, Untitled (grand flâneur), 2016, cement, oil stick & pencil on cinder block,

426.7 x 1127.8 x 20.3 cm, Ⓒdavidkordanskygallery.com


안카트르는 콘크리트 벽(4미터, 폭 11미터) 벽에 오일 스틱 피그먼트로(Oil stick pigments) 칠한 대형 벽화 <무제(그랜드 플라뇌르)>를 완성했다. 단어 '플라뇌르(flâneur)'는 보들레르가 <르 피가로> 지에서 "완벽한 플라뇌르, 열정적 구경꾼은 인파의 한가운데에, 움직임의 썰물과 밀물 속에, 일시적인 것과 무한한 것에 둘러싸인 곳에 머물며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4]라고 언급된다. 플라뇌르 산책법, 도시를 걷는 산보자, 안카르트의 작품은 플라뇌르 속 작품이다. 어느 미술관, 어느 전시회라는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이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현재 시간을 즐길 때 만나는 우리가 아는 익숙한 풍경을 내보인다.


이 벽화는 다른 작품들처럼 추상화와 재현(representation) 사이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벽화에서 시각적, 촉각적 효과는 디자인의 심플함뿐 아니라 벽의 재질, 물질성에 달려 있다. 오일이 두껍게 칠해진 표면과 들쑥날쑥하게 표시한 표시들은 콘크리트를 색과 질감을 이용해 하나로 통합한다. 


작품의 크기와 함께 페인트칠이라는 즉각적으로 완성되는 행위를 생각해볼 때, 안카르트의 벽화는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기보다는 풍경의 존재를 구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즉각적인 방식으로 환경, 크기, 추상화에 관한 화두들을 모으는 것은 19세기 허드슨 리버 스쿨 풍경화가(Hudson River shcool)들이 상상했던 풍경, 그 이후 인상파 화가(Impressionist)가 표현하려 했던 빛과도 연결된다.

Harold Ancart, Untitled (grand flâneur), 2016, cement, oil stick and pencil on cinder block,

426.7 x 1127.8 x 20.3 cm, Ⓒdavidkordanskygallery.com


벽화의 시작은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과 1차 세계대전, 대공황을 경험한 멕시코에 지식인들 중심으로 시작된 예술 운동인 멕시코 벽화주의(Mexican muralism)였다. 멕시코 벽화주의에 영감을 받은 안카르트는 멕시코 오악사카(Oaxaca)주의 푸에르토에스콘디도 아트 갤러리 야외 공간에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후 안카르트의 <무제(그랜드 플라뇌르)>는 로스앤젤레스 공공 미술 발전에 중요한 역활을 했다.


안카르트는 단순히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에 살며 풍경을 바꾸고, 알리는 관객에게 이상화된, 그리고 실제적인, 예술적인, 문화적 형태를 포함한 다양한 풍경을 다른 차원으로 표현한다. 


안카르트의 '플롸뇌르'는 관객 모두가 더 광활하고 넓은 장소를 보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이러한 느낌은 2014년 차에 그림 도구를 싣고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그림을 그렸던 그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 시기 작업한 작품들은 2년 후 휴스턴의 메닐(Menil) 컬렉션에 선보이며 작가로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Harold Ancart, Untitled, oilstick and graphite on canvas, 195.3 x 243.5cm. ©Harold Ancart, Sotheby

검은 바다를 그린 이 작품 <Untitled>는 소더비 경매에서 441,000달러에 낙찰되었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를 해보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Harold Ancart, Untitled,  Oil stick on concrete, 2021 ©Harold Ancart, David Zwirner


안카르트는 2017년부터 납작한 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납작하고 평평한 콘크리트 조각은 2021년 <Deep end>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Harold Ancart, Untitled, 2020, Oil stick on concrete, 5.1x57.8x80.6cm ©Harold Ancart, David Zwirner

캔퍼스처럼 납작한 콘크리트에 선명하게 색을 입혔다. 이 작은 공간에는 건축적인 요소인 계단이 있다. 무엇보다 수영장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단순화해 납작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낯선 느낌을 선사한다. 선명한 색깔은 시각적이고 구성적인 범위를 넓혀준다. 안카르트는 친구와 가족과 함께 수영장에서 노는 상상을 제안한다. 작고 얕은 수영장을 보며 상상 속의 수영장, 이미 경험했던 익숙한 수영장을 떠올려본다. 

Harold Ancart, Untitled, 2020, Oil stick on concrete, 5.1x50.8x78.7cm ©Harold Ancart, David Zwirner

납작한 병렬, 병치로 된 작품들 사이로 선과 공간은 비어있지만, 긴장감이 맴돌기도 하며 동시에 편안함을 준다. 안카르트는 말한다. "깊은 쪽 끝은 얕은 쪽 끝과 반대된다. 누군가는 이 조각품을 납작하고 얕은 수영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조각품은 색해져 있다. 칠해진 무언가는 무한한 깊이가 자동으로 부여되지 않는가?"[3]


Harold Ancart, Subliminal Standard at Cadman Plaza Park presented by Public Art Fund, 2019

Photo: Nicholas Knight, Courtesy of the Public Art Fund, New York


안카르트는 야외 공원에 색을 입힌 핸드볼 벽을 설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쪽은 노란색과 파란색이고, 그 반대쪽은 붉은색이 양쪽 끝에 줄무늬처럼 넣은 벽이다. 뉴욕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핸드볼 코트를 보고 좋은 재료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이곳에 모여 운동하고 낙서하기도 한다.

Harold Ancart, Subliminal Standard at Cadman Plaza Park presented by Public Art Fund, 2019

Photo: Nicholas Knight, Courtesy of the Public Art Fund, New York


안카르트 작품은 정적이면서도 움직임에 관한 것이다. 움직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움직임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죠. 움직이지 않고 이동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5]  도시 안에서 우리는 움직이며 거닐 다 안카르트가 선사한 작품 속에서 '플라뇌르'가 된다.




성냥 시리즈와 수영작 작품 사진들:

http://www.c-l-e-a-r-i-n-g.com/exhibitions/a-match-made-in-heaven/

수영장 작품을 크게 확대 한 사진들:

 https://www.davidzwirner.com/exhibitions/2021/harold-ancart-la-grande-profondeur-the-deep-end#/Untitled--artwork-52922865-A0D6-43AE-B749-76523BBE019C/inquire-Artwork




Ⓒ 이 글은 저작권법에 따라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필자의 서면 허락 없이는 영리적 비영리적 목적의 글 인용이나 게재를 금합니다. 



참고

[1]Naomi Rea, 'How to self-Deprecating Belgian Painter Harold Ancart Charmed the Art World', news.artnet.com, 10, 10, 2018

[2]Harold Ancart interview by Emilien Crespo Nov 13, 2020 interviewmagazine.com

[3]Harold Ancart interview by Emilien Crespo Nov 13, 2020 interviewmagazine.com

[4]Charles Baudelaire, The Painter of Modern Life and Other Essays, trans. Jonathan Mayne, New York, 1986, p. 9

[5]Harold Ancart interview by Emilien Crespo Nov 13, 2020 interviewmagazine.com

매거진의 이전글 보는 또는 보고 있지 못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