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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 Sep 08. 2023

피 묻은 설탕ㆍ 카라 워커

<미묘함> <폰스 아메리카누스>

카라 워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회화, 판화, 영화,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작품 활동하고 있다. 워커는 숯, 잉크, 종이와 같은 전통적인 재료뿐 아니라 설탕, 왁스, 페인팅, 조명 프로젝션과 같이 다양한 매체도 사용한다.     


1969년 태어나 워커가 성장하던 시기는 여러 변화의 시기였다. 1960년대는 문화 다원주의의 형성으로 소수민족이나 동성애 등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나타났고 1960년대 중반부터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여성 작가들이 주도하여 수많은 여성 예술 단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들은 남성 작가 중심의 단체와 주류 미술관들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남성 작가를 주로 선택하는 미술관의 기존 형태에 문제를 제기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서구 열강 나라 중심의 미술에서 탈피해 주변국이나 유색인종의 여성으로까지 관심이 퍼졌다.


카라 워커, <미묘함> 전시 전경, 2014, 폴리스티렌 블록, 설탕 조각, 228x106cm Ⓒ GoogleArt& Culture


워커의 작품은 인종, 성별, 권력 문제에 관한 담론을 끌어낸다. 워커는 남북전쟁과 관련된 미국 역사화나 초상화, 흑인 작가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심리적으로 억압되고 착취당한 흑인 여성을 표현할 방법을 찾았다. 또한 자신이 사춘기 시절 경험한 일로 흑인의 정체성과 인종차별의 역사를 찾아보며 고민했다. 사춘기 시절 애틀랜타로 이주한 후 친구들은 워커를 ‘깜둥이’, ‘양키’라 불렀고, 원숭이처럼 생겼다며 놀렸다.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그녀는 혼자였다. 훗날 작가가 되어서 “내 작업은 항상 수십 년, 수백 년을 거꾸로 올라가 지금, 현재 ‘내 위치’에 대한 이해를 깨닫게 되는 타임머신과도 같다”(1)라고 한 말은 오랫동안 가지고 온 그녀만의 화두였을 것이다. 워커는 자신의 위치를 질문하며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은 노예제도와 인종 문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연결되어 작품으로 나타난다.     


2015년 브루클린 도미노 공장에 설치된 <미묘함>(A subtlety)은 설탕 40톤으로 설탕 무역 역사에 담긴 노예제도와 노예착취를 말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스핑크스 모양으로 아프리카 여성의 이목구비를 닮은 얼굴에 상체 모양을 하고 있다. 높이 10미터와 길이 22미터, 무게 40톤에 달하는 이 거대한 조각에 가까이 다가가면 과자나 사탕처럼 익숙한 설탕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워커는 이 작품을 과자라고 설명한다. “과자는 설탕으로 만든 디저트 형태의 섬세함을 만드는 예술이다”라고 말한다.(2) 과자의 재료인 설탕은 중세 영국과 프랑스 귀족 연회를 장식했던 사치품이었다. 대중에게 허락되지 않은 소수 특권층만 누리는 재료였다.      


<미묘함> 전시 전경, 2014, 폴리스티렌 블록, 설탕 조각, 228x106cm Ⓒ Photo by Sara Krulwich, 출처 The New York Times

워커는 “기본적으로 그것은 피로 물든 설탕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피로 물든 다이아몬드에 관해 이야기하듯, 이 설탕에는 피가 묻어있다.”라고 말한다.(3) 설탕의 원재료는 사탕수수이다. 사탕수수는 16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농장주들이 흑인 노예를 농장의 노동력으로 착취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영국과 프랑스 농장주들은 유럽에서 계약직 하인을 모집하여 고용했다. 이 두 가지 노동력은 미국 설탕 농장에 엄청난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모자랐다. 아메리카 대륙의 농장주들은 특히 17세기 후반에 이른바 ‘설탕 혁명’이 일어난 이후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했다. 이후 설탕은 카리브해와 브라질에서 재배되는 작물이 되었으며,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설탕 재배 환경은 고된 노동, 불충분한 식단과 열악한 환경이었다. 노예는 죽거나 팔다리를 잃었다. 이를 또다시 충원하기 위해 노예 수입은 계속되었다. 설탕 재배와 노예 농장 단지와 관련된 경제적 이익은 유럽의 상인, 농장주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프랑스 철학자 클로드 아드리앙 헬베티우스는 “인간의 피가 묻지 않은 설탕통은 유럽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4)


<미묘함>은 수장고에 보관되지 않고 해체되고 사라진다. 거대한 설탕 스핑크스는 녹아내리고, 전시장으로 쓰였던 도미노 설탕 공장은 전시회 이후 철거되었다. 워커는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전시회 동안만 쓰고 버릴 수 있도록 했다


(좌) 토마스 브룩 경, 버킹검 궁전 앞 <빅토리아 기념비>, 1901, 대리석, 금동, London ©wikipedia

(우) 카라 워커 <폰스 아메리카누스> 전시 전경, Tate Modern, London ©Tate(Matt Greenwood), Tate.org.uk


2019년 영국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 <폰스 아메리카누스>(Fons Americanus, 2019-2020)가 전시되었다. 워커는 런던 버킹엄 궁전 앞에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다. 워커는 <폰스 아메리카누스>를 “세계의 운명을 바꾼 제국의 심장부에 바치는 선물”이라며 소개한다. 선물의 주인공은 전 세계 4분의 1이 넘는 지역을 지배했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다. 역사적으로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긴 시간 동안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일어났는데, 특히 영국과 유럽, 북아메리카 산업 발전과 자본주의와 맞물린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 값싼 흑인 노예 노동력이 팔려나갔다. 1660년 영국은 왕립 아프리카회사를 설립하고 노예무역 주도권을 독점하게 되면서 약 21만 명의 노예를 수송한다.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물건을 싣고 가 노예와 교환하고, 노예를 싣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노예를 팔았다. 노예를 판 돈으로 설탕, 목화, 커피, 담배를 사 왔다. 워커는 노예 수송선이 오간 대서양의 노예무역을 은유적으로 재현하였다.     


3단으로 이루어진 <폰스 아메리카누스> 조각상 가장 위에는 가슴을 드러내고 물을 뿜어내는 비너스가 있다. 비너스는 물의 여정, 블랙 대서양을 상징한다.


(좌) 폰스 아메리카누스 중 비키 여왕 Kara Walker Fons Americanus Tate Modern 2019 (detail). Photo: © Tate (Matt Greenwood)

(우) 폰스 아메리카누스 중 무릎 꿇은 남자 Kara Walker Fons Americanus Tate Modern 2019 (detail). Photo: © Tate (Matt Greenwood)


비너스 아래 두 번째 단에는 비키 여왕, 무릎을 꿇은 남자, 선장, 나무가 있다. 이 인물들은 모두 대서양을 횡단한 노예 무역선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비키 여왕은 버킹엄 궁전 앞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큰 코코넛을 가슴에 품고 웃고 있다. 여왕 발아래 웅크린 사람의 왜소한 몸이 여왕의 몸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여왕이 들고 있는 코코넛 역시 노예를 이용한 재배 식물이었다.      

비키 여왕 옆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남자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은 카리브해에서 설탕 농장과 노예를 소유했던 서인도제도 총독 월리엄 영 경의 캐리커처로 추측된다. 슬픈 얼굴로 두 손을 모으고 용서를 구하는 듯하다.      


그 옆에 모자를 쓴 선장 조각상이 있다. 이 선장은 유럽에 대항하여 싸웠던 두 흑인 인물의 합성이다. 프랑수아 도미니크 투생 루베르튀르(1743-1803)와 마커스 가비(1887-1940) 같은 인물의 합성 조각이다. 루베르투르는 노예제 폐지와 아이티 건국을 위해 싸웠던 지도자였고, 마커스 가비는 세계 흑인 권리 선언(1920)에 저술하고 전 세계 흑인 독립을 주장했던 흑인 지도자이다. 워커는 선장 조각으로 유럽 식민주의에 맞서 싸웠던 인물과 그들의 열망을 표현했다.     

폰스 아메리카누스 중 선장 Kara Walker Fons Americanus Tate Modern 2019 (detail). Photo: © Tate (Matt Greenwood)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식민지 시대 영웅을 다시 평가하며 바라본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요구로 식민주의 시기 광산 사업으로 큰돈을 번 영국인 세실 존 로즈 동상이 철거되었고, 미국에서는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콜럼버스 동상이 철거되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바타비아를 식민지로 삼았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총독 얀 피터르스존 쿤 동상 철거 요구 시위가 벌어졌고, 이탈리아에서는 12살 아프리카 소녀와 결혼했던 저명한 역사 저술가 인드로 몬타넬리의 동상에 붉은 페인트를 쏟아부은 일이 벌어졌다.      


제3국 가난한 아동의 노동을 착취해 음식이나 제화가 만들어진 불공정한 거래가 일어났다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바나에 붙여진 공정무역 스티커처럼 정당한 대가와 노동력 착취를 금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제화를 만들고 있다.      


워커의 <미묘함>과 <폰스 아메리카누스>는 예술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관한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과거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힘을 보여준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리고 끝나지 않은 담론을 우리에게 던진다.







Ⓒ 이 글은 저작권법에 따라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필자의 서면 허락 없이는 영리적 비영리적 목적의 글 인용이나 게재를 금합니다. 


참고문헌

(1) ‘Kara Walker’s Fons Americanus’,

accessed 2023 07 24,https://www.tate.org.uk/art/artists/kara-walker-2674/kara-walkers-fons-americanus

(2) “Confectionery”, Wikipedia, accessed 2023 07 23, http://en.wikipedia.org/wiki/Confectionery.

(3) Audie Cornish, “Artist Kara Walker Draws Us Into Bitter History with Something Sweet”, National Public Radio, May 16, 2014

(4) Vivian Yee, “2 Jobs at Sugar Factory, and a Lump in the Throat”, New York Times, July 5, 2014, accessed 2023 07 24

https://www.nytimes.com/2014/07/05/nyregion/recalling-sticky-hot-job-before-old-domino-sugar-factory-falls.html

(5) ‘Kara Walker’s Fons Americanus’,

accessed 2023 07 24,https://www.tate.org.uk/art/artists/kara-walker-2674/kara-walkers-fons-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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