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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어제 May 14. 2024

나는 이제 임시의 삶을 끝내기로 했다.

나를 향한 나의 선언문

작년 연말부터 약 6개월, 나는 임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곧 이사 갈 것' 같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곧 이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덩치 큰 가구 사기를 미뤘다. ‘이사 갈 집에 맞춰서 사자.’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기를 미뤘다. ‘이사 가는 곳에서 운동을 시작하자.’

 그래서 물건을 쌓아두었다. 이사든 이직이든 움직일 때 한 번에 정리하려 했다. ’집도, 직장도 완성형에 가까울 그때에 맞추어 무엇이든 하자.‘

 그래서 글쓰기를 미뤘다. ‘장소에 맞추어 가구를 갖추고, 물건을 정리하고, 정돈된 곳에서 글을 쓰자.’


 얼마 전 심리상담에서 내가 많이 우울한 것 같다는 이야기에 나중 '그때'에 맞추겠다며 미루었던 모든 일이 사실은 나의 무력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느껴보는 무력감은 단순히 '하기 싫다'는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었다. 한순간 다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다는 기분은, 내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나, 도망치면 끝나긴 하나, 그럼 끝은 언제 나는 걸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출근하기 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다가 바로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있고, 아이의 보호자이며, 나의 이런 불안함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어선 안 됐다.

 하지만 온전히 아이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삶을 찾고 싶었다. 임시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었다.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찾아오면 그때 가서 뭐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방만하는 삶이었다.


 나는 이제 임시의 삶을 끝내기로 했다.

 이사를 가지 않은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삶'이다. 이사든 이직이든 나의 삶에 변화를 줄 순 있지만, 그 변화 전후 모두 나의 삶이다. 아침 운동을 했다. 퇴근 후에는 아이를 재우고 책상 정리를 해야지. 그다음에는 집안 곳곳에 필요한 것을 주문하고, 채워 넣어야겠다. 그리고 나는 임시가 아닌 내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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