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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영석 Nov 17. 2019

숲과 사막의 시간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

파랗고 흐릿하고 깜깜한

밤과 낮의 어스름으로 수놓은 하늘의 옷감을 갖고 있다면

그대 발아래 깔아 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펼쳐 놓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W.B.Yeats


대학교 때 항상 붙어 다니던 친한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전해주려 친구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 다녀왔다. 위에 적힌 문장은 청첩장에 적혀있던 문장으로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할 때 선물한 시집에 있는 시를 옮겨온 것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워낙 학교에서는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걸로 잘 알려져 있는 친구들이라 청첩장 봉투 위에 한 명 한 명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짧은 글에 담아 전하려는 마음이 참 예뻐 보여 정말 그들답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만나 결혼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얼마나 빠르게 숲을 지나가려고 했던가'라는 생각을 했다.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과 함께 숲의 푸르름과 아름다움, 두려움을 보고 듣고 느끼며 이야기하지 못한 채 걸어가려 했던 건 아닌지. 이 숲만 지나면 ‘내가 그리던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이 숲을 지나 광활한 평야와 잔잔한 호수, 무더운 사막과 가파른 언덕을 함께 한 뒤 ‘우리가 그리는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되었다. 


어디에나 정해진 시기는 없고, 정해진 관계도 없다. 오랜 시간을 만나며 "너희는 결혼 안 해?"라는 수많은 주변의 질문 속에서도 그들이 끄떡없었던 이유는 사실 그들은 둘만의 집을 이미 지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숲과 평야와 호수 그리고 사막과 언덕의 시간을 지나며 가까워지고 깊어진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견고하고 단단한 집을 함께 짓게 하고 우리는 그곳으로 함께 걸어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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