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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Mar 07. 2024

내 묘비에는 - 실존하는 초인을 꿈꾸는 자

되고 싶은 것에 대한 완전 설정

1.

 실존하는 초인을 꿈꾼다.


 자신의 존재에 끊임없이 물음을 제기할 수 있는 존재 방식인 실존

 그 어떤 시련도 마침내 긍정하며 삶의 전진에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 초인

 그리고 결코 지금은 그런 존재자가 아니기에 꿈으로써만 떠올릴 있는 상태


 실존하는 초인을 꿈꾸는 존재 방식을 택한다.


 실존하는 나도, 초인인 나도 결코 완성된 무엇으로써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꿈꿀 수밖에 없고, 내 삶의 지향을 그쪽으로 맞추기 위해 그 존재 방식을 택한다. 실존하는 초인이란 사실상 내 사상 속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다. 내 *심연과 밖으로 끝없이 파고들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 내 심연과 밖은 그 자체만으로 끝이 없는 무한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결코 될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게 어리석고 모순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내가 무엇인지 모른 채로 사망한다. 마침내 도래한 죽음의 순간에 나는 철저히 무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화 앞에 삶의 허무를 느끼며 주저앉아 있기만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 세계에 내던져졌고, 이 주어진 삶을 마땅히 잘 살아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렇게 난 스스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실존하는 초인을 꿈꾸는 자'라는 존재 방식을 통해 다하고자 한다. 닿을 수 없지만, 닿으려고 애쓰는 내 결의가 내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놓을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결코 죽음을 마주한 순간까지 '실존하는 초인'이 되지 못하겠지만, '실존하는 초인을 꿈꾸는 자'로서 내 존재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 채 무화되고 말 것이다.


 내 무모한 결의는 자칫 소멸되어 버릴 수 있는 내 존재의 '있음'을 명징하게 남길 것이다.


 '실존하는 초인을 꿈꾸는 자'의 죽음은 내 존재의 '있음'을 반대로 증명해 주는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죽음이지만, 존재의 흔적은 삼킬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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