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내일 일을 위하여 염여하지 말라”4]
탕자와 큰아들. 에서와 야곱. 마르다와 마리아.
인간적 관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은 인물과 하나님께서 택하심은 다릅니다.
그래서 탕자, 야곱에 가까운 나에게 그저 은혜로 자녀 삼아 주심이 큰 위로와 감격이 됩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제가 탕자와 야곱의 이야기로부터 배우는 것은
도덕책을 읆듯이 “야곱처럼, 탕자처럼 어리석게 살지마” 하며 현실에서 그들을 닮은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 야곱처럼, 탕자처럼 어리석은 나날을 보내더라도,
하나님이 아버지 인 것을 잊지 않고 ‘축복해주세요’하며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품꾼이라도 삼아주시길 부탁하러 가야겠다’ 하는…
끝까지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알고,
철없는 시절에는 징징거리고 치대는…
그리고 성장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배워가는 여정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그런 현실의 삶을 성실하고 꾸준하게 살아가세요” 하시는 것입니다.
왜 야곱인지 하나님의 섭리를 감히 낱낱이 알지 못하지만, 쿨해보이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인 것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며
이번에 주인공이 탕자여서 그의 성장기가 묘사되어있지만, 아버지 하나님 곁에 붙어있는 형도 주인공이니 그에게 비춰진 카메라를 통해 그의 성장기가 다뤄지고 그의 그릇이 커질 날이 올 것이 또한 위로가 되며
또한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마르다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시고,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그녀의 자람을 그분이 계획하신 위대함까지 이를 것을 기대하고 계신 아버지가 계심이 위로가 됩니다.
특별히 에서와 야곱에게서 가장 크게 보이는 점은 아무리 찌질해도, 야곱은 끝까지 아버지께 의지함을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탕자 또한 그랬지요. 탕자의 형도, 마리아와 마르다도 아버지 안에 있으니 그 품에서 자랄 것입니다.
저 또한 오늘 실전의 삶을 찌질하게 살고, 사춘기를 겪고,
이제 겨우 나의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초입에 서 있는데,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작정하심으로 자라나갈 것을 믿으며 저의 실제의 삶에서 그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