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를 보던 아빠가 문득 한 말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티브이에서는 생생정보통이 하고 있었다. 지나가듯 나오는 떡볶이와 만두는 누가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타지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나도 떡볶이와 만두가 격하게 먹고 싶었다. 물론 사 먹어도 되지만 잡채 몇 가닥이 들어있는 만두는 너무 비쌌다. 가격을 보고 절로 인상을 쓰게 되니까.
그래서 아빠한테 만두를 만들자고 했다. 아빠는 귀찮은 건 돈으로 해결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설득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사실 잡채 만두는 만두 속 안에 잡채만 들어가는 거니까, 만두피를 사다가 잡채를 넣으면 안 되냐고.
인터넷에서 잡채만두 만들기를 검색하니 다들 어렵지 않게 만들었고 아빠랑 동영상 하나를 끝까지 다 봤다. 이 정도면 우리도 하겠다! 엄마는 절대 도와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주말에 같이 만두를 빚었다.
마트에서 만두피를 사 오고, 당면을 불렸다. 당면은 불려도 되고 안 불려도 된다는데 시간이 남아서 불렸다. 그리고 당면을 익혔다. 익은 당면에는 인터넷 레시피를 따라 굴소스와 소금, 간장을 넣었는데 아무리 넣어도 간이 짜지 않았다. 엄마 말로는 만두피에도 간이 되어있으니 충분하다고 했다. 그게 좀 신기한데 당연했다. 우리 집은 평생 만두를 빚었으니까!
내가 당당하게 아빠한테 제안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만두를 빚는다고 하면 다들 엄청나게 생각할 것 같지만 우리 집에게는 익숙했다. 매년 설날이면 할머니 댁에서 다 같이 모여 만두를 빚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부터 그랬다. 할아버지가 빨간 대야에 반죽을 치댔고, 하얀 밀가루는 할아버지가 움직일 때마다 철썩였다. 그리고 그 반죽을 길게 밀어서 칼로 통통 썰었다. 잘린 덩어리들은 말랑말랑한 마시멜로처럼 생겨서 입에 넣어보고 싶었다.
동그란 반죽을 소주병으로 열심히 밀면 동그랗게 됐다. 그럼 그 안에 할머니가 두부와 잡채를 넣어 만든 소를 숟가락으로 집어넣는다. 매일 저녁을 먹기 전에 만두를 빚었는데 그날 저녁은 언제나 만두였다. 방에서 놀던 내가 거실로 나가 엄마나 아빠 옆에 매미처럼 달라붙으면, 하나 해보라며 반죽을 쥐어주곤 했다.
손만 깨끗이 씻으라는 말에 열심히 손도 씻었다. 내가 토끼나 리본 모양 만두를 만들고 싶어 하니 어른들은 자기가 만든 건 자기가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 모양은 영 별로였다. 엄마아빠는 유난히 만두를 잘 빚었다. 손이 투박한 아빠도 만두는 예쁘게 빚어서, 딸들이 예쁠 거라 했는데 음. 거울을 보면 그런 말도 다 옛말이다 싶다.
그렇게 정성과 사랑을 담아 만두를 빚었다. 할머니는 요리는 잘하는데 이상하게 만두는 맛이 없었다. 피도 너무 얇았고 시중에 파는 만두랑은 너무 달랐다. 짜고 맵고 아무튼 특이한 맛이었다. 내가 만들었던 귀여운 만두들은 찜통을 다녀오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만두는 잘 익지가 않아서 한 번 쪘다가 엄청 큰 솥에 다 넣고 끓여서 국으로 먹었다. 굽지도 않고 쪄서 먹지도 않고 무조건 국이었다. 그래서 다들 상을 둘러싸고 앉아 만둣국을 먹었다. 다 터진 만두 안에는 두부도 있고 당면도 있고... 뭐가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빨갰다. 빨간 건 맛있는데 이건 왜 맛이 없을까. 맛없는 걸 궁금해할 정도로 한가하진 않아서 한 두 번 먹고 그만뒀다.
그때는 안 먹던 만두를 내 손으로 빚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가 삶은 당면은 양이 많았는데, 알고 보니 만두피는 고작 30개인가 그랬다. 100개인가 200개로 생각한 엄마아빠는 몇 개 되지 않는 피를 보고 당황했다. 그래도 일단 마주 앉아 빚었다. 바닥에 앉아서 요를 깔고 밀가루를 마구 흘리던 할머니집과 다르게 식탁 위에 둘러앉았다. 엄마는 밀가루가 날리니까 쟁반을 깔라고 해서 쟁반 두 개를 깔았다. 쟁반 두 개만으로 6인용 식탁이 꽉 찼다.
엄마 아빠는 만두를 빚는데 고수였다. 쟁반에는 만두가 달라붙지 않게 밀가루를 듬뿍 뿌려두고, 밥그릇에 물을 담은 그릇을 내왔다. 물을 묻혀서 끝을 붙여줘야 만두가 터지지 않는다고 했다.
만두를 빚는 건 재밌었다. 엄마 아빠가 유독 만두를 잘 빚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시선을 많이 받았는데 아무리 빚어도 엄마 아빠만큼 빚진 못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열심히 관찰하곤 했다. 만두가 터지거나 피가 얇아지면 엄마 아빠가 만두를 고쳐줬다.
훔쳐본 게 도움은 됐는지 이번에는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 사우루스라는 캐릭터 얘기를 하기도 하고, 명절 때마다 빚던 옛날 만두 얘기를 하기도 했다. 아빠가 만두를 정말 좋아해서 만두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꽤 많았는데, 아빠가 해동하려고 내놓은 냉동 만두의 끄트머리를 내가 다 먹었다고 혼난 얘기도 꺼냈다. -난 그게 맛있다고 생각했다- 만두가 완성된 모양들을 보면서 엄마 아빠의 손재주에 대해서도 들었다. 주말 오후, 느긋하게 둘러앉아 만두를 만드는 건 꽤 재밌었다.
안타까운 건 만두피와 만두소의 비율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만두피는 남으면 뭐든 해 먹을 수 있지만 만두소는 뭐든 해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만두피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냉동 만두피를 사 와서 다시 해동하기엔 늦었기에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만두피를 만드는 거.
만두피 만드는 것만큼은 귀찮아하던 아빠가 소리를 질렀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아주 조금만 만들고 남은 건 수제비로 해 먹으면 되지 않겠냐는 엄마의 제안은 설득력이 있었다. 아빠는 딸을 잘못 만났니, 뭐니 하면서도 열심히 반죽을 치댔다. 반죽을 만드는 건 언제나 할아버지의 몫이었기 때문에 아빠가 반죽을 만드는 건 낯설면서도 정겨운 풍경이었다. 즐겁게 반죽을 치대던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아빠와 할아버지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할아버지가 자꾸 떠올랐다. 낡은 천을 깔고, 빨간 대야에 흰 반죽을 던지던 할아버지.-지금도 건강하게 잘 계신다-
그렇게 완성된 만두반죽을 엄마는 길게 밀어서 썰었다. 할머니댁에서는 라벨을 뗀 소주병을 사용하곤 했는데 우리 집에서는 밀대로 밀었다. 한입 크기로 썰린 조그만 반죽을 보며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입에 넣으면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맛이 퍼질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는데 엄마는 생밀가루라서 먹으면 아야 해! 하고 말렸다. 오랜만에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아빠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게 진짜 맛있어 보인다고? 하지만 정말이었다. 하얀 마시멜로 같이 생겼으니까.
엄마아빠는 반죽 앞에서 고수의 면모를 보였다. 잘린 반죽을 둥글게 굴려서 열심히 밀었다. 그러자 만두피가 완성됐다. 내 만두피는 어딘가 구멍이 나거나 타원보다는 이상한 도형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그럴 때면 엄마아빠한테 의지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빵꾸 난 만두피를 주자 멀쩡한 만두피로 바꿔줬다. 뭔가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 댁에서도 만드는 만두는 이제 그만 만들자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내가 이제 명절 전날에 가지 않아서인지, 만두를 만들어도 거실로 나오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만두 만드는 게 오랜만이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는데 다 같이 무언가를 만드는 건 역시 즐거웠다.
일본에서 자주 교자를 구워 먹었던 난 당당하게 만두 굽는 건 나에게 맡기라고 했다. 사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타지 않게 열심히 뒤집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딸이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탓인지 엄마아빠는 옆에서 꿋꿋하게 잔소리를 했다. 하필 조금 태워먹는 바람에 한소리 더 들었지만 그걸 빼면 꽤 괜찮은 모양새로 구웠다.
갓 구운 만두에 빨간 어묵을 곁들였다. 만두만 먹으면 느끼할 것 같다고 사온 어묵이었다. 빨간 어묵을 먹는 건 처음이었는데-난 물떡도 먹어본 적 없다-적당히 매콤하고 속이 시원해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만두는 피가 두꺼워서 생각보단 딱딱했다. 기름을 많이 둘러서인지 살짝 느끼하기도 했다. 그래도 맛있었다.
다들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라 피가 두껍네, 속이 많네, 꿋꿋하게 불평을 뱉어냈다. 끝은 똑같이 그래도 나쁘진 않네로 끝났다. 아빠는 어묵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하면서 혼자 여섯 개를 먹었고 엄마는 어묵이 너무 맵다고 하면서 국물을 마셨다. 나는 만두피가 두꺼운 게 불만이었지만 바삭바삭한 맛으로 먹을만했다.
아주 나중에 나한테 가족과 관련된 음식을 묻는다면 역시 만두가 아닐까. 언젠가 이 날이 분명 그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말랑말랑하고 차가운 만두피를 조물거리며 이것저것 만들어가던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