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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Aug 08. 2023

잘 될 거야

안타깝고 슬프고 끔찍하고 충격적이었다. 출근할 때, 쇼핑 갈 때, 이동할 때, 일상적으로 누구나 다니는 공간에서의 유혈사태. 차를 돌진하여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둘러 여러 사람을 다치고 죽게 만들었다. 일상을 열심히 살다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으신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유가족들의 충격은 얼마나 클지 감히 가늠도 되지 않는다.


가해자는 20대 초반의 남성. 부모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는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갈 정도로 영재였다. 그러나 조현병 발병으로 특목고 진학이 좌절되고 일반고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자퇴했다는 과거가 있다. 범죄자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서사를 씌우고 싶어서도 아니고 부모나 환경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타고난 기질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어도 긍정적이고 희망찬 삶을 살아가는가 하면, 특별할 것 없는 환경에서 나쁘지 않은 인성을 가진 부모 밑에서도 비관론자가 나오기도 한다. 특목고 진학이 좌절된 모든 영재가 다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 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 똑같은 미래를 사는 것은 아니다.


서현역 사건의 범인의 과거를 보면서 양육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의 괜찮은 미래를 위해 교육시키고 지식을 쌓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태생적 기질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그에 맞게 대응해 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기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기질이 아이의 기질과 어떻게 반응하는지, 서로 자극하는지 보완하는지를 계속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평상시에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괜찮은 컨디션에서 사람들은 기질대로 보다는 교육된 대로, 연습한 대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이 닥치거나 나쁜 컨디션이 되면 본래의 기질이 먼저 불쑥 튀어나오게 된다. 그럴 때야말로 평소 나의 기질을 잘 들여다보던 사람의 진가가 발휘된다. 나의 기질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그것을 수정하여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관계가 회복될 기회를 잃게 된다.


"엄마! 그냥 '잘 될 거야'라고 말해줘. 다른 말은 필요 없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꾸만 잊게 되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선은 따뜻한 지지라는 것. 아이의 어렵고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보일 때마다 고쳐주고 바꿔주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지시어가 나가고 강제성이 들어가게 된다. 어렵고 아쉽고 부족한 부분은 분명 스스로도 잘 알기에 굳이 부모가 지적하지 않아도 되건만, 부모는 참지 못하고 그것을 고쳐내려고 한다.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한번 해보면 참 쉬운데, 그게 참 어려웠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때보다 잘하고 있는 부분을 칭찬하고 북돋워줄 때, 아이의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밝게 빛나고 미소가 떠오르는 걸 보고도 자꾸만 훈계모드로 들어가려 한다.


그 끔찍한 범죄자에게도 분명 비뚫어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텐데, 누군가 한 명이라도 따뜻한 지지의 말을 지속적으로 해 주었더라면...이라는 덧없고 슬픈 가정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혼란스러운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모가 주는 따뜻한 지지는, 마치 마법과도 같게 아이의 삶에 환한 빛을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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