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국립공원 (Olympic National Park)
시애틀에서 바다를 건너 베인브리지 섬에 도착하면서부터 3시간 가까이 쉼 없이 달려 허리케인 리지로 올라간다.
꼬불꼬불 휘어진 길이 끝나는 즈음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고향마을 분위기가 펼쳐진다.
소라도 몇 마리 있으면 스위스라고 우겨도 되지 싶다.
파노라마를 담아놓고 보니 뚜렷한 대장산은 없고 멀리 산들이 펼쳐져 있다. 구글에선 이 지역이 올림픽 반도라서 올림픽 마운틴이라고 하는데 그게 그 말 아닌가? 무슨 말이 그러냔 말이지.
궁금하던 차에 발견한 안내문. 세어보니 봉우리만 19개다. 올림픽은 올림푸스산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름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올림푸스 12신도 아니고 굳이 산봉우리 이름을 19개를 붙인 이유가 있지 싶어 구글을 찾아보니 다행하게도 비슷하게 기대했던 그림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로마 빌라 파르네시나의 프시케 회랑 천정에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인데 비너스의 저주를 피해 우여곡절 끝에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을 인정해주기 위해 제우스가 올림푸스의 신들을 다 불러 모아 회의를 마치고 인간에서 신으로 승격하는 순간을 담았다. 왼쪽 아래 아기천사를 제외하면 19명의 신이 등장한다. 라파엘로가 왜 19+1이라는 숫자를 선택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그림을 보고 다시 올림픽 마운틴을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봉우리 이름을 19개 명명한 것이 이 그림 때문이냐고 따지신다면 세상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근거 없는 이야기일 뿐이라며 퇴로를 확보한다.
제일 왼쪽에서 헤르메스가 건네는 영생을 얻는 신의 음료 암브로시아를 받아 들고 있는 여인이 이번 모임에서 신으로 격상된 프시케. 그러고 보니 제우스 포세이돈 비너스 등 이름을 알고 있는 신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스핑크스가 거기서 왜 나와? 넌 이집트 아니었어? 스핑크스 이야기도 궁금하긴 한데 샛길로 빠질 순 없으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보는 걸로.
허리케인 리지에서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캐나다 쪽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있다. 오늘은 해무가 짙어 바다도 캐나다도 보이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와 도착한 해변 캠핑장. 해안가는 공공의 목적에 준하는 용도가 아니면 캠핑장을 허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용케 허가를 받았다.
스쿨버스를 개조해서 만든 캠핑카가 눈에 띈다. 아마도 은퇴하기 전에 스쿨버스를 운전하셨지 싶다. 등하교 해주던 학생들과의 추억에 나날이 행복하실 듯.
한여름 해안가라고 하기엔 이곳은 춥다. 한겨울 파카가 아니면 입 돌아갈 지경이다.
돌을 좋아하는 애들 엄마는 이쁜 돌멩이 줍느라 여념이 없다.
저녁노을을 맞이하러 해안가를 어실멍거린다. 가끔은 바닷가의 한적함이 좋을 때가 있다.
저녁노을을 찍으러 사진 동호회에서 나오셨나 보다. 혼자 저러고 있으면 미친 짓이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열정이 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함께 삼각대를 펼치고 저곳에서 캐나다와 미국 국경 사이로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짙어가는 해무와 구름을 보며 오늘의 아쉬움을 삼키고 내일의 일정을 준비한다.
저녁노을을 준비했던 또 한 곳은 미국 북서쪽 끝에 위치한 플레터리 곶(Cape Flattery)인데 인디언 보호 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아직 코로나 봉쇄를 풀지 않은 상태라 이번 일정에 포함하지 못했다. 워싱턴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일정에 넣으시라 권한다. 정답은 언제나 끝에 있으니 끝은 우짜던 둥 봐야 한다. 시간의 끝이든 공간의 끝이든. 단,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캐나다 빅토리아가 바다 건너 저 멀리 어디쯤 있으려니 짐작하고 길 떠날 채비를 한다.
크레센트 해변에 바로 붙어 있는 솔트 크릭(Salt Creek) 공원. 이곳에도 캠핑장이 있는데 이미 6개월 전에도 빈자리가 없을 만큼 인기가 높다.
홍합이 밭을 이루었다. 바다 내음을 이토록 진하게 느껴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비현실적 색상의 바다 이끼가 그려낸 벽화. 그러데이션까지 완벽하다.
올림픽 마운틴즈가 가장 잘 보인다는 포트 엔젤레스에서 인증샷. 북쪽 끝에서 할 수 있는 구경은 다 했으니 지금부터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빙하가 만든 레이크 크레센트.
호숫가 주변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사진처럼 가드레일을 열어놓은 곳이 있다. 내려가도 안전한 곳이라는 의미니까 호숫가로 내려가고 싶다면 열린 가드레일을 찾으면 된다.
호수는 넓고 물은 차다. 물놀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돌멩이 사냥중.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리알토 해변(Rialto Beach). 자욱한 안개를 보니 천식이 있으신 분들의 은퇴 후 거주지로 오레곤 워싱턴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들이 말하는 한여름의 시원 촉촉함이 이런 거였다.
사진에 보이는 섬은 리틀 제임스 아일랜드. 오리지널 제임스 아일랜드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가야 보인다. 제임스 아일랜드와 리틀 제임스 아일랜드 사이로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으나 반대쪽 마을도 인디언 보호구역이라 문을 닫았다. 오늘의 하늘은 그곳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 탓보단 하늘 탓이 마음이 편한 까닭.
낚싯대가 팽팽한 것을 보니 고기라도 잡으셨나? 파도가 제법 거친데 그 와중에 물길을 아는 분들은 잘도 잡으신다.
손에 들려있는 생선에 할아버지 표정이 흐뭇하다. 오늘 저녁은 생선구이로 할머니와 오붓한 시간 되시겠다.
펠리컨을 이렇게 가까이 보느니 처음이고
그들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에 감사한 하루다.
https://www.youtube.com/watch?v=B1wY6qOEs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