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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촌자 Jul 31. 2021

우보만리(牛步萬里)미친여정(美親旅程)(3)

이끼의 전당, 루비 비치 그리고 캐논 비치


올림픽 국립공원의 남서쪽에 위치한 이끼의 전당(Hall of Mosses)으로 출발.

공원 입구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서 들어왔다. 주차장이 협소하여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를 유지해야 해서 공원 밖에서 기다리게 한다. 이끼의 전당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지 이런 이끼는 처음 본다. 해가 지고 바람 불면 전설의 고향 귀신이 울고 갈 판이다. 


이끼라고 하니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와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가 먼저 떠오르는데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의 이끼는 곰팡이 같은 나쁜 의미로 쓰여서 부지런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침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는 뜻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오는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에서의 이끼는 전문지식의 좋은 뜻으로 자신의 사회적, 직업적 위치를 자주 바꾸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말의 의미도 바뀌니 중간중간 업데이트를 잘해야 한다. 고대 로마의 작가 푸블릴리우스 시루스(Publilius Syrus)도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는 걸 알고는 적지 않게 놀라지 싶다. 


실제로 이끼는 수질이 좋고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 살 수 있는 식물이니 이끼가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좋다는 의미. 따라서 이끼의 전당에서 보게 되는 이끼는 곰팡이 수준의 침체를 의미하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인식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이끼가 깨끗하고 좋은 것인 것은 알겠는데 이 느낌은 뭔가 싶다. 인지부조화가 이런 건가? 좋은 이끼 보고 서늘해지는 이 느낌. 


날씨 쾌청한 한여름 대낮에 보는 광경이 이 정도. 구름이라도 조금 드리우고 비라도 오게 되면 좋은 이끼 나쁜 이끼 아무 소용없지 싶다. ㅎㅎ

그나마 물속에 이끼가 있는데 역시 물은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

3억 년 전 고생대부터 존재했다는 화석식물 고사리 잎 뒤쪽에 붙은 포자가 이렇게 많이 박혀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이곳이 처음. 그러고 보면 가구의 네일링(nailing)이 고사리의 포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뱀이 나무뿌리를 감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뻔.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새가 서커스 하듯 나무에 앉아 있다. 

직사광선을 저리도 조밀한 잎들이 막아주고 있으니 이끼 마를 새가 없다. 

이끼의 전당을 나와서 한 시간 정도 바다 쪽으로 달리면 루비 비치를 만나게 된다. 해안가 모래사장에 거대한 체스 장기말을 세워 놓은 듯하여 마치 다른 별에 온 느낌이다.

멋들어진 해안선을 보니 역시 지구별은 아름답다.

막상 해변으로 내려와서 보면 흔히 보던 해안선으로 바뀐다. 에펠탑 위에서 보면 파리의 풍경이 에펠탑 없는 파리로 바뀌는 것처럼.

떠내려와 흩어져있는 나무토막으로 집짓기 놀이를 하고 있는 두 소녀. 어려서부터 나무를 놓고 돌을 까는 정성을 기울이고 있으니 아마도 나중에 커서 건축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한쪽에선 부실공사를 했는지 지은 집이 무너졌다. 지은 집이 커 보여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바로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비포어 애프터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진을 놓쳤다. ^^ 

주차장이 협소하여 불편함이 있어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루비 비치이니 일정에 넣고 챙기면 후회 없지 싶다.


GPS 위치: 47°42'43.504" N 124°24'59.3673" W

루비 비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번 여행에서 약간의 기대를 했던 스크리밍 이글 캠핑장에 도착한다. 캘리포니아 최고 와인의 이름을 가져다 쓴 만큼 뭔가 특이한 것이 있으려나 했지만 오히려 하수도가 고장이 나서 덤핑도 못했다. 전형적으로 이름에 낚인 케이스. 이름은 이름일 뿐 헷갈리지 말자. 

워싱턴주 올림픽 국립공원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하고 태평양 해안 국도(101번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오레곤주의 휴양마을 캐논 비치에 도착한다. 마을은 깨끗하고 식당도 풍부하다. 캠핑카를 위한 주차장까지 별도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인프라가 훌륭하다.

가게마다 화단에는 양귀비가 큼지막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퍼피 필드에서 본 양귀비랑은 크기가 비교가 되질 않는다. 이들 역시 햇빛이 좋고 수분이 넉넉한 시기에 힘껏 꽃을 피웠다.

잘 준비된 인프라에 흡족해하며 바닷가로 다가가니 나타난 새하얀 해안선. 완만한 해안선에 온몸의 긴장이 다 풀어지는 듯하다.

원래 물안개가 이렇게 맑은 느낌이었나 싶다. 몽환적인 느낌이 어우러져 왠지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이다.

오늘도 펠리컨은 하늘을 수놓고

맑은 하늘 아래 옅게 깔린 물안개 덕분에 마음이 여유롭다. 그런데 이곳 이름이 캐논 비치. 처음엔 클래식 음악의 돌림노래 Canon인 줄 알았다. 해안선은 넓고 파도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라서 파헬벨의 캐논을 떠올리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Cannon Beach란다. n이 2개?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보니 미 해군 범선에서 잃어버렸던 대포를 인근 계곡에서 찾았다고 대포 해변이라고 이름을 붙이다니 어이가 없다. 이곳 이름을 정한 사람이 이곳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n 하나를 없앴을 것.

https://www.youtube.com/watch?v=Rk5DWqls0gg

제일 아래 저음을 연주하는 첼로의 무한반복과 똑같은 곡을 바이올린 1,2,3이 시점을 달리하며 시작하여 오묘한 편안함을 주는 게 캐논의 묘미. 이토록 평화로운 바닷가에 뜬금없이 대포(cannon)는 무신… 

어차피 이름은 이름일 뿐 현혹되지 말자. 그렇거나 말거나 주변 풍광에 마음을 빼앗긴 애들 엄마는 바닷물에 바지 젖는 줄 모르고 동영상 촬영에 여념이 없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갈 데까지 가보자며 함께 걸어보기도 했지만 결국 끝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너무 긴 백사장.


해변이 너무 예쁘고 평화로워 구글 자료를 찾아보니 2013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곳을 선정했는데 거기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애들 엄마랑 함께 거닐면서 하와이 바닷가보다 훨씬 예쁘고 좋다고 할 정도였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eHdEgJlr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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