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y Feb 14. 2021

병뚜껑, 타이어, 금빛

나리 워드(Nari Ward) 개인전 

Swing Low, Nari Ward, 2015, bronze, rope, 71.1 x 68.6 x 33 cm (rope length variable)


  '나리 워드Nari Ward' 의 작품을 보자마자 단번에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금빛 병뚜껑을 이어붙여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작품들이 떠올랐다. 두 작가는 출신도 비슷하지만 작품의 시작점과,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가 상당히 맞아떨어진다. 둘은 각각 자메이카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인데, (물론 이후에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을지라도) 성장 과정에서 두 사람은 쓰고 버려진 사물이 주변 도처에 즐비하게 널린 환경에서 자랐다는 사실이고, 그게 거부할 수 없는 영감의 산물이 되었다는 점이다. 


  나리 워드는 초기 활동에서부터 쓰고 버려진 유모차나, 소방호스 같은 사물을 수집해 작품에 재사용했다. 이번 리만머핀에서 공개한 작품으로 'Knot Ending(2010)'이나, 'Swing Low(2015)'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는데, 버려진 운동화 끈이나, 낡은 타이어가 주재료이다. 'Knot Ending(2010)'에서 검정과 백색의 신발 끈들은 벽면에 일정한 라인을 타고 빼곡히 꽂혀있다. 무한을 상징하는 형상을 만들고 있는데 같은 라인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길이가 제각각이다. 하얀 벽을 타고 이 초라한 운동화 끈들이 치렁치렁 늘어진 것을 볼 때, 시간이 잘못 흐르는 것을 느낀다. 'Swing Low(2015)'은 검은 타이어를 뚫고 나와 브론즈 형상 신발들이 붙어있는데 마치 구덩이를 뚫고 나온 애벌레의 형상이다. 브론즈 덩어리 조각들은 차라리 타이어에 서식하며 기생한다. 이 기괴한 조형물은 굉장히 무겁고 어두워 보인다. 정성스레 동여맨 흙색 로프에 걸려 매달려 있는 모양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Exhibition view: El Anatsui, El Anatsui: Topology of Generosity, Barakat Contemporary, Seoul



그런가하면 엘 아나추이의 경우, 수많은 버려진 사물 가운데 소모된 병뚜껑을 선택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소비된 수천 개의 병뚜껑을 가공해 구리선으로 직물처럼 엮는 작업을 한다. 가공된 뚜껑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금속 설치물은 전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실제로 보면 그 화려함이 파도의 결처럼 물결치는 듯 독특함에 매료된다. 버려진 병뚜껑에는 그것을 사용한 개개인의 흔적이 있고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여기엔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집단의 기억'또한 스며있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버려진 사물을 기꺼이 집어들고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과 교차하는 어느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함께 흘러왔고, 계속해서 흐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관계란 것은 이어지고 있으며, 함께 그 방향을 고민할 수 있음을. 그것은 절대 소모적인 일이 아니며, 시간을 거슬러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마치, 모든 사물이 제 기억을 품고 쓰임을 다 하는 것처럼. 그리고, 금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시금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처럼.







나리 워드 Nari Ward

2019년 뉴욕 뉴뮤지엄에서의 개인전을 앞둔 나리 워드는 (1963년 자메이카 세인트 앤드류 출생,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중) 1989년 뉴욕시립대학교 헌터 컬리지에서 학사학위를, 1992년 브루클린 컬리지에서 석사학위를 수여받았다. 2016년 마이애미 페레스 미술관에서 시작하여 필라델피아 반스재단 및 보스턴 ICA 순회전으로 이어진 나리워드의 회고전 Nari Ward: Sun Splashed를 비롯한 작가의 대표 개인전은 뉴욕 소크라테스 조각공원(2017), 사바나대학교 아트 디자인 미술관(2017), 로스앤젤레스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미술관(2014), 필라델피아 패브릭 워크샵&미술관(2011), 노스 아담스 매사추세츠현대미술관(2011),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2002), 미네아폴레스 워커아트센터(2000, 2001) 등의 기관에서 열린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제적인 미술기관의 컬렉션에 속해 있는데, 뉴욕 버팔로 올브라이트-눅스, 메릴랜드 발티모어 미술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이탈리아 토리노 현대미술관, 아칸소 크리스탈 브릿지 미술관, 보스턴 현대미술관, 터키 이스탄불모던,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노스캐롤라이나 듀크대학교 내셔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공립 도서관, 플로리다 마이애미 페레즈 미술관, 켄터키 루이스빌의 스피드 아트 미술관, 뉴욕 할렘 스튜디오 미술관,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 그리고 뉴욕 휘트니 미술관 등이 대표 소장처이다.

/리만머핀 갤러리



엘 아나추이 El Anatshi

엘 아나추이는 1944년 가나에서 태어난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조각에 대한 전통적 관습과 정의를 거부하는 예술적 실험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는 40년 간 조각가이자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정치·역사적 입장을 표방해 온 사회참여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조각 작업은 술병 뚜껑 혹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버려진 물건과 같은 소박한 재료들을 통해 제작되며, 작가는 이러한 재료들을 복합적인 아쌍블라쥬로 변형시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특히 그의 후기 작업에서 잘 드러나는 ‘꿰매기’와 같 은 작업방식과 의식적으로 사슬톱, 용접용 토치, 전동 공구 등 일상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전통적인 예술의 분류 기준인 조각에 대한 관념을 거부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아프리카와 서구권, 양자의 시각 전통과 동시대적 삶에 대한 보편적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엘 아나추이의 작품은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퐁피두 센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샌프란 시스코 드 영 미술관, 워싱턴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뒤셀도르프의 쿤스트팔라스트 박물관, 동경의 세타가야 미술관 등 세계의 여러 유수한 박물관과 기관들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1990·2007 베니스 비엔날레, 2012 파리 트리엔날레 등 다양한 국제 전시 행사에서 소개되어 왔다. 영국의 왕립 미술원이나 베니스의 고성인 팔라쪼 포츄니의 전면을 덮는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으며,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바라캇 서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