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속에서.
방금 프로틴 초콜릿 무스와 리치(열대 과일)을 저녁으로 먹고, 노트북을 겨우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책상 앞에서 이메일을 쓰고있습니다. 빗속에서 어랫동안 걸어서 춥고 조금 피곤한 상태입니다.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S씨에게 편지를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저는 뭔가를 약속하고 지키지 않으면 찝찝하기 때문에 지키지 않을 약속은 하지 않는 편입니다.) 네덜란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핸드폰으로 틈틈히 글을 적었습니다.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구요, 그렇게해야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요.
편지의 문체와 형식은 합의를 하지않았지만, 제가 편한대로 정했습니다. 디데이와 날짜를 적어 놓아야 후에 글을 정리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요. 좋은 의견이 있다면 제안주세요.
짧지 않은 이 글들이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네덜란드식 날짜 표기법입니다. 일/월/년)
저는 지금 Emirates a389비행기 76F 좌석에 앉아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멍청한 표정에 땀을 뻘뻘흘리면서요. 좌석은 밖을 볼 수 있는 창가 자리가 아닌 어중간한 정가운데 입니다. 제가 땀을 흘리는 이유는 타야할 비행기가 있는 46번게이트에 거의 다다랐을때 (엄청나게 긴 복도를 10분 정도 걸어) 문득 들고 다니던, 몇 번 입지 않은 캘빈 클라인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다시 게이트 입구 쪽으로 뛰어갔지만 역시나 없었고 혹시나 비행기를 놓칠까 백팩을 매고 뛰어다니다 기진맥진한채로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검표 직원들한테 물어봐도 다 다른곳에 물어보라며 일을 떠넘기더군요.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는 것은 사회생활하는 모든 직장인의 기본 자세인듯 합니다. 아무튼 이코노미석이 그렇듯 어깨와 목은 뻐근하고 낯선 사람과 너무 가까이 있으며 (밤 비행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울적하고 매우 피곤합니다. 부디 두바이까지 깊은 잠을 자면 좋겠네요.
확실히 글을 쓰는 것은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제가 당신에게 편지쓰기를 제안한 것도 네덜란드에서 나자신에게 주기적으로 할 뭔가를 주고 싶기도 했고, 타지 생활의 고됨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상황도 궁금해 질 것 같았구요.
지금, 아는 친구가 한명도 없는 초등학교의 입학날 새학기가 시작되고 책상 앞에 앉았을때 기분입니다. 아직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두바이는 더 낯설겠지요.(두바이를 경우하는 비행기 입니다.)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지치고 불안이 차오르는군요. 무엇보다 된장이가 매우 보고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된장이는 제손에서 돼지귀 말린 것을 빼앗아 물고가서 정신없이 뜯어먹는 모습이었습니다. 공항으로 오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하는 생각을 여러번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는 출발하고 보증금은 집주인에게 넘어갔으며 돌아갈 티켓은 없습니다. 뒤에 앉아있는 한국남자들이 버거에 대해 떠드는 것이 거슬리네요. 헤드셋에서는 남미인으로 추정되는 기장이 엄청나게 빠른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합니다.
비행은 정말이지 힘든 것입니다. 특히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여행은요. 엉덩이와 목이 뻣뻣합니다. 현재 암스테르담 도착을 1시간16분 앞두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시간은 고작 몇 분밖에 안 지나있어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복도 쪽에 앉은 동양인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기 싫어서 처음 앉은 그대로 계속있는 중입니다. 제가 복도로 나가려고 할때마다 할아버지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하고 안 그러면 왔다갔다하는 제 엉덩이를 봐야하기 때문이죠. 입시미술 이후로 이렇게 오래만에 한자리에 몇시간째 앉아있어 봅니다. 화장실도 안 가고있어요 (나를 잘 안다면, 저는 toilet shy라서 화장실을 매우 가린다는 것을 알겠죠.) 다행히 저는 소변이 잘 안마려운 편입니다. 이런 저의 방광의 특성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네요.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능력들도 언젠가는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인듯 합니다. 왼쪽 창가에 앉은 중국(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폰 충전선을 빌려줘서 충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일로 네덜란드를 가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저는 toilet shy 뿐만 아니라 그냥 shy이기도해서 그만뒀습니다. 기내식을 두 개 먹었는데,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이라 그런지 네 끼 식사를 주더군요. 다 먹으면 도저히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아 (그리고 방구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두바이행 조식과 암스텔담행 조식만을 먹었습니다. 숙소에 가면 줄리아가 또 저녁을 주겠죠. (후에 붙임- 줄리아는 아무런 음식도 주지 않음.)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신선한 공기와 찬물 세수. 뜨거운 물로 샤워 그리고 차가운 과일입니다.
Ps. 첫번째 편지는 수기로 예쁜 엽서와 함께 보내고 싶었지만, 상황상 힘듭니다. 주변 환경이 정리되고 다시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면 그때 편지지를 부치겠습니다.
-J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