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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마 Aug 03. 2024

빈둥과 아날로그 호러

쓴다 에세이 클럽

9시30분 즈음에 등허리가 축축해진 채로 일어난다 괴랄한 꿈이었다 개가 방문 틈을 열고 들어온다 내 얼굴을 살짝 핥고 등을 맞대고 엎드려있다 방문으로 나간다 일어나서 시간을 보고 간밤의 꿈의 여파를 되새겨 본다 기억은 이미 반쯤 휘발되었다 스트레칭하고 화장실가서 소변누고 이닦고 세수한다 커튼을 쳐서 흩날리는 먼지를 보고 안약 넣는다 러그에 누워 책을 펼친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두 가지를 반복한다 개가 방으로 들어와 빤히 쳐다본다 일어나려는데 시야가 흩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 기묘한 자세로 3초 정도 정지한다 무릎을 짚고 일어나서 부엌으로 간다 거의 남지않은 콜드브루를 컵에 부워 찬물과 희석한다 개에게 산책갈지 물어본다 눈을 반짝이며 몸을 비빈다 사료와 물,공 챙겨 밖으로 나간다 어제와 다른 코스로 간다 개는 자신과 눈마주친 첫 사람을 보고 짖는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질겁하는 표정으로 지나간다 개는 길의 모든 기둥의 냄새를 맡는다 맞은편에 오는 말티즈를 보고 꼬리를 바짝세우고 짖는다 노쇠한 말티즈는 목에서 끓는 듯한 낮은 그르렁 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주인이 안아올린다 말티즈의 혼탁한 눈을보며 나이를 가늠해 본다 개는 만족한듯 꼬리를 올린다 개 발을 닦고 샤워한다 개는 창가에 있는 자기 자리에 축 늘어진다 티비를 켜서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다 1,500회 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티비를 보면서 파스타를 만들려고 하는데 파스타 만들기에 집중하면 티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영화 프로그램이 예전같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주 딴생각에 잠긴다


무직 기간이 꽤 길다. 일했던 기간을 빼도 무직 기간이 직장생활보다 길다. 그러면 나는 빈둥빈둥의 대가여야 하지 않은가? 진정한 빈둥빈둥은 빈둥대면서 몸도 마음과 같이 편한 상태여야 하는데 나에게 그런 상태는 퇴사 후 3개월 정도만 유효하다. 퇴사하면 구직에 대한 걱정이 한편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고통스러운 아침 기상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지하철을 타고 8시간 근무를 하고 지친 인간들의 냄새를 맡으며 퇴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해방감이 일시적으로 나를 지배한다. 하지만 곧 그 감정도 옅어지면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그러면 최대한 현실을 회피한다. 이 기간 부터는 쉬거나 놀아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마음 놓고 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이건 엄마 남편의 유전자 때문이다. 그의 특이하고 까다로운 습성 몇몇을 소름 돋게도 나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일정이 없는 날에도 집에서 느긋하게 쉬지 못하고 할 일도 없는데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병. 가만히 앉아 있어도 편안하지 않은 병이 그것이다. 남자는 약을 먹은 이후로는 좀 나아졌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약이 나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어쨌든 인간은 할 일을 찾고 살아야 하니까. 직장인이 되든 주부가 되든 프리랜서가 되든. 언젠가 엄마의 남편이 나에게 물은 적 있다. '너는 취직을 할거니?'이건 비꼬는 의미가 아닌 순수한 질문 같았다. 나는 구직 중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내가 취직을 안 하는 가능성도 생각해 두고 있었던 것인가? 니트족처럼? 나를 평생 부양해 줄 생각인 것인가? (그걸 잠깐 상상했는데 정말 끔찍하다) 내가 취직을 안 할 거라고 대답했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빈둥댄 적이 없다. 하루 안에 작은 빈둥빈둥은 많지만, 그걸 마이크로 빈둥이라고 부른다면 나의 일상에는 마이크로 빈둥이 곳곳에 흩뿌려져있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하다가 빈둥, 운동하고 피로해서 빈둥, 그 빈둥의 장소는 대개 나의 방 매트릭스 옆에 놓인 삼각 쿠션이다. 기상을 한 이상 계속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건 용납이 안 되므로 대신 그 옆에 쿠션을 놓고 러그 위에 앉은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닌 자세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본다. 나는 요즘 유튜브로 '미제 살인 사건, 음모론, 아날로그 호러'에 빠져있다. 이것들은 한번 보기 시작하면 두 시간은 금방 없어져 버린다. 이런 마이크로 빈둥을 모아도 자격증 하나 딸만한 시간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빈둥은 삶에 필수적인 것이어서 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그런데 요즘, sns를 과하게 보는 게 문제이긴 하다) 마치 샤워할 시간과 양치할 시간을 아끼려는 것처럼 의미 없다.

직장을 다니면 마이크로빈둥을 누릴 기회가 너무나 적어진다. 업무 두 시간하고 잠깐 누워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복지가 좋은 테크기업이나 스타트업은 그런 공간이 마련돼 있기도 하겠지만, 나는 탕비실조차 제대로 갖춘 사무실을 경험한 적이 없다. 기껏해야 점심시간과 화장실이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업무 강도가 높고 수직적 문화가 강해서 긴장 상태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야 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된장이가 내 방으로 들어와서 놀아달라고 하며 내 몸을 밟는데 그러면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터그놀이와 공놀이, 노즈워크를 해준다. 이건 분명한 노동이고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물론 직장처럼 괴롭진 않다. 어쨌든 나의 빈둥시간은 더 줄어들고, 두 시간정도 빈둥하면 잠을 자야만하는 시간이 온다. 나는 이런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과연,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색하고 멍때리는 시간이 업무에 포함되는 직장은 무엇일까? 아마 창작의 영역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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