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 에세이 클럽
한 시인의 글에서 '믿음론자' 라는 단어를 봤다. '나는 무신론자도 유신론자도 아니며 어떻게 보면 둘 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그게 무엇이 됐든 믿거나 확신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믿음론자여야 한다.'-김승일
얼마 전에 문창과에 재학 중인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문학을 믿는 게 아니라 문창과를 믿는 것 같았다. 혹은 문창과의 광휘?
세상이 좆 같다고 느껴질 때마다 드라마에 몰입한다.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가 생기면 불안해진다. 드라마는 끝이 있으니까 마지막 화가 가까워오면 나도 함께 끝나고 싶다.
한때 나는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친구와 놀고 헤어질 때, 친구가 다른 친구랑 놀 때, 친구가 나를 배신할 때 세상도 같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뭔가를 믿을 때마다 믿음에 배신당해 절망하고 그러면서 나는 다시 갱신되고 다른 인간이 되어 가는 게 퍽 마음에 들었는데, 요즘의 나는 갱신되지 않고 절망만해서 마음에 들지 않다.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에 심드렁해진다. 그런데 나는 재밌는 사람이고 싶다. 심드렁한 인간은 좀처럼 재미가 없다.
대학교 1학년 여름 한 사이비 단체 소굴에 가본 적이 있다. 인류학자가 되어 그들을 연구하려 했다. (사실 달리 할 일이 없었고 지루했고 정신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에 여러 명의 젊은이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하고 낙관적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그랬다. 나는 나의 냉소 때문에 행복할 수 없었다.
그곳으로 안내한 남자가 차라리 화라도 내라고 했는데 나는 화내지 못했다. 나는 더위에 화가났다.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한다며 변명하고 도망갔다. 나의 마지막 갱신은 그래도 화낼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에는 유능한 백발의 교수가 있었는데 그는 신앙심이 아주 깊었다. 연구실에는 두꺼운 기독교 서적이 있고 가끔 심부름으로 성경 삽화가 있는 발행물, 사보를 받아오게 하고 퇴사자들의 선물로 성경 말씀을 주곤 했다.
질서를 만들어 가는 쪽으로 믿는 게 유리하도록 인간은 설계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호들갑 좀 떨지 말라고 한다. 엄마는 자주 별것 아닌 것에 목소리를 높이고 놀라거나 놀라는 척한다. 그리고 못 들었을까봐 한번 더 놀라는 척한다. 그러면 나는 진저리가 난다. 엄마는 신도 있고 사람도 있고 강아지도 있으니 호들갑 떨 것도 많다.
내가 지금 믿는 건 이 개인데, 이 개가 죽지 않아서 세상도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강아지는 인간을 가장 믿으니까 나는 아직 완전히 인간을 믿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