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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마 Nov 28. 2024

여행 혐오자의 방랑벽

쓴다 에세이 클럽

한 자리에 오랫동안 있는 것이 어렵다. 수업 시간에는 종종 정신과 몸을 분리해 상상의 공간으로 탈출했고,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해 뛰쳐나가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들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줄넘기를 했다. 성장하며 내향적인 특성이 강해진 나는 기질적으로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근데 그건 인간이 아닌 장소다. 이런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이러니다.


짧은 여행은 허무함을 남긴다. 어차피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반복해야 할 일상이 있다. 여행을 간다는 생각은 그것만으로도 들뜸과 기대감을 주는데, 이 기대감은 여행 내내 충족해야 할 강박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여행에서 가장 행복할때는 여행을 가기 전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런 마음이면 성공적인 여행을 할 수 없다. 나는 꼼꼼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뭘 하려 하다간 물건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여행지에서 뭘 할지, 숙소는 어디를 잡을지 미리 고심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확인하느라 피곤해진 몸을 끌고 일정에 넣어둔 명소를 찾아간다. 혹시 모를 도난과 조난을 조심하면서. 여행에서 우연과 실수는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를 놓치거나 그래서 예약해 둔 프로그램을 놓치면 앞으로 족히 몇 년은 여행을 안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일면서 왜 그토록 사람들은 여행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회의적이 된다. 파밀리아도 구엘공원도 나에겐 지나칠 장소 그 이상이 아니다. 이미 너무 오염되어 버린 '관광 명소'들. 너무 많은 프로그램, 긴 줄, 관광버스, 비둘기, 지정된 음식점, 같은 메뉴.


요컨대 '관광객'이라는 신분이 싫은 것이다. 나는 이곳에 섞여 들고 싶다. 구엘공원이 인생에서 딱 한 번 볼 관광지가 아닌 무심하게 지나칠 근처 공원이면 좋겠다. 나를 현지인으로 대하면 좋겠다. (현지인들이 나에게 자국어로 말을 건네면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나는 터무니없는 욕심이 많아서 그 욕구불만을 들키기 싫어 시니컬하게 표현하는데 그중 하나가 '여행 싫어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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