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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Jul 09. 2022

35.5세의 첫 탐폰 착용기

사랑이 낳은 새로운 시도의 기록

역시,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좋아하는 마음이다. 타고난 사랑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힘은 대상이 사람이든 무생물이든 무형물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걸 다시금 여실히 체감한 오늘, 사랑꾼은 난생처음으로 탐폰을 샀다. 일요일에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 월경이 시작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이 낳은 새로운 시도의 기록이 휘발되기 전에 남겨둔다.


〰️


한 달의 25%를 피 흘리며 살아가게 된 이후로 나의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일회용 월경대와 면 월경대. 주위에 탐폰이나 월경컵을 쓰는 친구들은 많았으나, '굳이' 뭔가를 몸속에 넣고 싶지 않았다. 탐폰의 경우, 그냥 피부에 닿기만 해도 안 좋을 화학약품이 잔뜩 묻어있는 '새하얀' 솜뭉치를 몸에 넣는 게 싫었다. 월경컵은 '처음에만 좀 아프다'라는 증언을 숱하게 들으며, 문장의 앞머리(처음에만)보다 뒤꼬리(아프다)에 더 무게를 실어 듣고 여전히 거리감을 유지하는 중이다.


35.5살인 2022년 6월까지도 나의 선택지에 추가 옵션은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7월, 인생 처음으로 '탐폰'이라는 세 번째 선택지가 추가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물론 이왕에 시작한 거 바짝 해서 바다 라이센스을 꼭 따야겠다는 의지, 일주일간 연습해본 프렌젤을 시도하고 싶은 궁금함 등등도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 나는 물이 가득 담겨있는 어떤 공간(바다, 수영장, 욕조 등) 안에서 손과 발로 느끼는 그 질감을 아주 좋아한다는 걸, 얼마 전에서야 깨달았다. 내 안의 사랑을 알고 나니, '고작' 월경 때문에 한 번의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럼 당장 시도해볼 방법은 하나뿐이다.


동네에서 그래도 큰 편인 마트에 갔다. 몇 층짜리 규모는 아니지만, 편의점보다는 조금 커서 휘이 산책 삼아 돌아볼 정도의 크기. 성큼성큼 걸어가 생리대 코너 앞에 섰다. 눈을 굴리며 내가 아는 그 날개 달린 모양 말고, 다른 그림을 찾았다. 음? 책장 두 줄을 가득 채울 만큼 다양한 월경대 종류 중에서 탐폰은 딱 하나였다. 당황스럽네? 꼴랑 하나라고? 세 번을 둘러봤으나, 역시 하나다. 선택권을 박탈당한 나는 가격도 보지 않고 맨 앞에 놓인 상자를 집어 들었다. 상자의 표면에 거무튀튀한 먼지가 보인다. 대수롭지 않게 계산대로 가지고 왔다. "10,900원입니다~ 포인트 있으세요?" 가격은 좀 대수로웠다. 왜 이리 비싸...?



집으로 돌아와 잠시 딴짓하며 고민했다. 오늘 해봐야 하나. 아니 내일 해볼까? 어쩐지 내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들썩였다. 하지만 안돼. 내일은 양도 많을 텐데, 좀 적은 오늘 시도해보자. 마음을 다잡고 유튜브에 '탐폰 착용 방법'을 검색해서 맨 위의 영상을 틀었다. 3분 20초짜리 영상 속 쾌활한 여성이 탐폰의 종류, 생김새, 질의 위치와 각도, 탐폰 삽입 방법, 주의 사항 등을 세심하게 말해주었다. '엄지와 중지로 잡고... 검지로 밀어 넣는군... 비스듬히... 꽤 깊게 넣어야 하네...' 긴장한 만큼 중얼대며 허공에 대고 손 모양을 연습해본다. 그러다 잠시 찾아온 현타.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이런 건 성교육 시간에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서른다섯 살에 유튜브 보면서 탐폰 넣는 연습을 하고 있자니 조금 웃음이 났다. 하지만 댓글 창을 눈물 ㅠㅠㅠㅠ로 가득 채운 무수한 실패 기록들 앞에, 자조는 금방 긴장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졌다.


영상이 끝나고 남은 건 실전. 비장한 마음으로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의 의사의 마음으로 뽀득뽀득 깨끗하게! 그리고 변기에 앉아, 실물 탐폰을 손에 들었다. 주사기처럼 생긴 분홍색 플라스틱. 이걸 내 몸에 넣어야 하는 거군... 물끄러미 바라보다, 마음을 다잡고 집도를 시작했다. 위치를 잘 잡고... 비스듬히... 힘을 빼고... 이 정도면... 얼추 된 건가? 싶은 지점에서 어플리케이터를 꺼냈다. 분홍색 플라스틱에 빨간 피가 묻어있다. 15년간 면월경대를 손으로 빨며 월경혈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건만, 처음 보는 모습에 순간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어라? 잘못 넣으면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하던데, 전혀 느껴지지 않네...! 오 나 성공했나 봐!!! 성공의 기쁨이 피에 대한 거부감을 밀어냈다.


물로 어플리케이터를 씻어 버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전혀 불쾌감이 없다. 이런 세계가 있다니? 자유! 자유로다! 이제 물에 들어갈 수 있겠다! 오예! 이렇게 두 시간만 있다가 꺼내 봐야겠다-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30분 후에 첫 제거를 시도할 예정이다. 아까의 거부감에 몇 배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쓰레기가 발생하는 이상, 면월경대보다 우위의 선택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월경컵... 과연...). 하지만 세 번째 선택지를 얻었다는, 이 능동적 성취감! 그리고 좋아하는 일 앞에서 타고난 신체 구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움! 이 감정이 좀더 생생할 때 남겨두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 제거까지 성공할 거다. 난 사랑꾼이니까.


좋아, 이제 다이빙을 위해서는 정말 프렌젤만 남았다. 귀를 아가미 삼아보자!



+

제거에 성공했다. 어디서 많이 본 비쥬얼이다 싶었는데, 그거네 그거! 코피났을 때 코 막았다가 뺀, 빨간 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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