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퀴어 재팬>을 보고
"퀴어(Queer)는 원래 '이상하다'라는 뜻이래. 우리한테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뭐 어때서?'라고 물으면 질문한 그 사람도 퀴어가 되는 거야."
영어 사전에 Queer라고 검색하면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뜻이 먼저 나온다. '보통과 다른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동성애를 퀴어라 하기 시작했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우리 중에 이상한, 그러니까 소수자성을 갖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다수자성을 부각하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가진 소수자성을 외면하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 하도록 배우는 건 아닐까.
시부야구에서 동성결혼의 인증제도를 도입한 이후 일본 LGBTQ+ 커뮤니티의 삶을 담은 <퀴어 재팬>에는 말 그대로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드랙퀸, 게이 에로티즘 만화가, 게임 공략집을 만드는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을 중심으로 여성만 입장 가능한 공간 '골드 핑거', FTM(Female to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사람) 모임 '그래미 도쿄', 매달 분장 쇼를 여는 '데파트먼트 H(Hentai, 변태)', 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이자 도쿄 세타가야구의 구의원, 게이 센터에서 근무하며 HIV 예방 캠페인 밴드를 하는 성 노동자, 농인 LGBT를 위한 수어 통역센터, HIV 양성자 옹호 활동가, 일본 레이시즘에 반대하는 프로젝트 진행자... 전부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를 온전히 보여주며, 영화는 하나의 주장으로 이야기를 모으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을 오롯이 담아낸다. 그들의 입장은 서로 지지하거나 대립한다.
"애매한 점이 재미있다. 애매한 건 인간밖에 없지 않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볼수록 그 드넓은 다양함 안에서 나는 어디에 있나 하는 질문이 남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자유'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받아들여지고 저건 안되고. 개인 안에서도 모순이 가득하다. 나는 이런 부분이 보이면 '일관적이어야 해!'라고 스스로를 재촉하고 괴롭혔는데, 애매한 점이 재밌다니. 그러고 보면 명확한 점이 있긴 한가? 명확한 척 만들어둔 것은 아닐까? 성별도 여성과 남성이라고 이름표를 달아두었지만, 사실 간성(intersex)도 있고 또 생물학적 성별과 다르게 정체화한 사람도 많다. 그런 부분을 모두 가림막 뒤로 숨겨두고 여성과 남성뿐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건 아닐까.
"전에는 퀴어에 모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LGBTQAP... 그냥 '변태'면 되지 않아?"
레즈비언 Lesbian, 게이 Gay, 바이섹슈얼 Bisexual, 트랜스젠더 Transgender, 퀘스쳐너 Questioner, 무성애자 Asexual, 간성 Intersex, 범성애자 Opensexual(Pansexual), 크로스드레서 Crossdresser..... 소수자성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위의 '애매함'을 피하려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카테고리화해서 분류하기 편하게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름을 붙이는 건 인정이자 동시에 제한이 되기도 하는 걸까. 어떤 때에는 이름을 얻기 위해 투쟁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름을 벗기 위해 투쟁한다.
"20세 이상, 미혼, 자녀 없음, 생식기 제거, 지향하는 성별과 유사한 외모"
위의 내용은 일본에서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을 허가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외모를 완전히 바꾸어도 주민증의 성별을 바꾸지 않으면 병원 진료도, 연금 수령도 불가능하다. 성별 변경 법률이 의회의 전원 동의로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며, 특히 '생식기 제거' 조건은 인권 침해 요소로 지적받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정책적으로 우리보다 한 발 앞선 듯 보였다. 2015년에는 시부야구가 '동성 커플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의하면 법적 부부와 동등한 효력을 가지며 주택임대, 환자 면회 및 수술 동의가 가능하다. 구에서 운영하는 구립 주택에도 입주할 수 있다. 2019년에는 일본 국민의 78%가 동성 결혼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으며, 2020년에는 돗토리현과 이바라키현에서 동성 커플에게 결혼 축하금, 결혼 휴가 등 복리후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헌법은 명시적으로 '혼인은 양성의 합의로서만 성립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시부야구, 세타가야구, 오사카시, 나하시 등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으로 동성 파트너십을 인증해주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어서 상속이나 세금 우대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다정함에 굶주렸다."
영화에는 성소수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키라 더 허슬러'는 쟈이니치와 한인 이주자들이 많이 모이는 신오쿠보에서 활동한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뒤섞인 거리는 재특회의 혐오 발언과 그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반발로 가득 찼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면서 정신이 피곤해졌다고 한다. 일본의 레이시즘은 일본의 질병이라고 표현하며, 레이시즘과 싸우는 이들이 LGBT 커뮤니티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기도 한다. 소수자와 소수자의 연대는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는, 치유 방식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차별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성 소수자라는 거대 담론 속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지만 각자가 원하는 지향점에는 공통점이 분명 있었다. '골드 핑거' 운영자는 "(정체성이) 무기나 매력 같은 플러스 요소가 되길 바란다"라고 했고. '그래미 도쿄' 운영자는 FTM이 하나의 개성으로 여겨지는 편한 공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데파트먼트 H'의 이용자는 한 달에 한 번 느끼는 비일상의 공간이고 소개했다.
영화 후반부에는 일본 오키나와 나하시에서 진행된 LGBT 행사에서 공개 결혼식을 하는 게이 커플이 등장한다. 하얀 예복을 입고 있는 두 남성이 중앙에 서 있고, 한 명의 여동생이 축사를 낭독한다. "우리 오빠를 발견해주어 고마워. 행복해야 해." 여동생과 오빠는 눈물을 글썽였고, 두 사람은 꽃가루 아래로 행진한다. 누군가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고 누군가는 지나가며 호기심(또는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 장면을 보며 나까지 눈이 촉촉해졌다. 그들이, 아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실 다르지 않다. 내가 나로서 편안하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것.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차별의 원인이 아닌 개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공간과 관계, 사회 안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
이는 혼자서 만들 수 없기에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나의 위치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을 찾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 곁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차별을 영원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차별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가능하다. 차별은 어떤 모습으로든 언제나 우리 곁에 있겠지만,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또 다른 손이 있다면 우리는 차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