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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단테 Feb 20. 2023

치료의 목적

알코올 중독자의 열번째 만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대화로 조절을 한다. 두 사람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그룹에서도 자신의 대화 방식에 따라 그룹 속에서 표지션이 결정된다. 요즘에는 ‘인싸’, ‘아싸’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포지션을 확정하는 느낌이 들어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나아가야 할 때는 확실히 나아가는 편이지만 보통은 조용히 있는 편이라서 내가 어떤 포지션의 사람인지 단어를 통해서 결정되고 싶지 않아서랄까.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이해할 때도 쉽게 ‘무엇’이라고 결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이며 맞지 않는 사람과 거리 두는 방식이다.


앞서 나는 내가 대화를 잘 이어가고 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사람은 아니다. 나의 알코올중독의 시작은 우울증이었는데 우울증에 시달리는 기간에는 마치 나르시스처럼 모든 말들이 나를 향하곤 했다. 나를 향해하는 말이 아님에도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었고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말들도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곤 했다. 되돌아보면 너무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던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언해피 엔딩의 삶.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우울증 위험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잘 풀리지 않는 내 삶이 너무 비참하고 원통했다. 왜 이렇게 풀리지 않을까. 뭐가 부족할까.라는 생각이 나를 덮치면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라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밤이 되면 술에 젖어 술에 익사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시간이 흘렀고 금주에 적응하니 우울증에서 조금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어떤 말들을 던졌고 어떤 말들을 들었는지. 나에게 내가 던지던 말들이 너무 우습기도 했고 내가 타인에게 던졌던 말들도 너무 역겨웠다. 그런 것들을 깨닫고 나를 바꾸려 노력하면서 말투도 행동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어떤 방향이 옮은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이 즐거운가 행복한가를 돌아보고 보살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게 맞아?라는 질문보다는 오늘 잘 살았나?라는 질문. 잘 살았어. 수고했어. 다행이야 살아있어서.라고 위로해 준다.


그런 순간 속에서도 난 아직도 관계에서 실수할 때도 많고 대화 후 며칠을 후회하며 주먹으로 책상을 쿵쿵거리는 순간들이 많다. 


얼마 전  AA모임에서 내가 했던 말들이 그랬다. “ㅇ”은 금주를 시작한 지 약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너무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자신이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것에 집중했다.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고 그 다그침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하고 있었다. 어쩜 나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는지 누구에게도 조언을 하면 안 되는 자리에서 나는


"너무 스스로를 몰아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충분히 하고 있어요.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좋을 거 같아요"


라며 선을 넘는 발언을 해버렸다.

아.. 정말 그 이후 며칠을 벽을 치며 후회했는지 모른다. 내가 가장 하면 안 되는 짓을 했던 것 같고 더 이상 모임을 가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나 스스로가 하고 싶었던 마음속 말을 하는 공간인데 나는 상대방에게서 그 기회를 뺏어버린 것 같았다.


며칠 후 중독센터에서 간호사님과 상담을 하면서 사실을 이야기했고 너무 스스로 괴로워하던 나에게 

"단테 님도 치료받으러 온 사람이에요. 자신만 우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상처받지 않을 거예요." 라며 위로해 주었다. 조금 위로가 되었지만 AA모임을 다시 나가는 것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사과를 못하는 나 역시 견디지 못하는 나였기에 그날은 모자를 쓰고서야 모임에 나갈 수 있었다. "ㅇ"은 나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하며 고마워하며 


"그때 조언 주신게 너무 컸어요. 고마워요. 조금 스스로를 내려놓았어요. 지금 술을 안 마시고 있는 제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금주를 하고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그 말이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한 말이었는지 진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ㅇ"웃을 수 있었고 나 역시 마음을 놓고 웃을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대화로 조절을 한다. 그 대화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항상 갈 수는 없다. 대화는 언제나 상대적이고 나의 말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큰 스피커라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의 조각에 불가하다. 맞지 않고 기형적인 모양의 조각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가 거기에 맞는 조각을 붙여주어야 그릇이 완성된다. 어떤 모양의 그릇이 될지 결정되는 것은 내가 아닌 우리가 결정하는 것 같다.


거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투명한 유리에 금이나 은을 칠해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깨끗한 유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위해 금이나 은이 되어 주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끔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표현으로 거울을 보라고 할 때가 있다. 거기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웃으라는 의미인데 그때만큼은 그 사람에게 금이나 은이 되어주고 싶어서 그런 말을 던지는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지금 당신의 모습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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