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에 빠질 수 없는 도시 프라하, 특별히 세련되지도 않았고 관광객들이 많아 복잡하고 한국만큼 생활이 편리하지도 않은 이 도시의 매력은 어쩌면 붉은 지붕일까?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지만 나 역시 프라하를 많이 좋아해서 이때가 세 번째 방문이었다. 그동안의 프라하 여행 중 가장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어차피 항공권이 프라하 왕복이어서 다시 돌아올 도시라고 생각하니 프라하를 떠나는 마음이 다른 때만큼 서운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동화의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였다. 오래전에 반나절 정도 머문 적이 있었는데 무척이나 예쁜 마을이어서 다음번에 꼭 다시 와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미리 숙소를 예약해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계획을 세웠다. 프라하를 벗어나자마자 펼쳐진 보헤미안 지역의 가을 들판은 불과 한 시간 전까지 머물던 프라하를 잊게 할 만큼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시의 매력과는 달리 눈의 편안함과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자연이 가진 힘이었다. 그곳이 어디쯤인지는 그때도 지금도 정확히 모르지만 달리다 보니 너무나 예쁜 마을이 차도 안쪽으로 보였다. 그곳에 가고 싶었다. 한참을 가서 유턴을 하여 그쯤 일 것이라고 예상한 곳에서 작은 길로 들어섰을 때, 길가 양옆으로 길게 줄지어 선 나무들은 붉게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바람이 불어왔으며, 군데군데 심어진 사과나무에서는 주인 모를 사과들이 땅에 떨어져 무심히 뒹굴고 있었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웠으며 그리고 가을이었다.
그 길 끝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무작정 카페 이정표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마침 브런치를 먹으면 딱 좋을 시간이기도 했고 또 달리 아는 곳도 없으니 가장 적절한 선택이지 않은가? 그렇게 찾아간 카페에 동양 여자 세명이 들어서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아마도 외지인이 자주 찾지 않는 마을인듯했고 게다가 동양인이니 무척이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늘 보는 가족 같은 이웃들이 며칠 전도 아닌 바로 어젯밤의 이야기를 나누듯 친밀해 보였고 식당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소박했다. 아주 간단한 영어 메뉴판이 있었지만,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았고 우리는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바로 그 음식이 먹고 싶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메뉴판과 옆 테이블의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똑같은 것을 달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그 말은 통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문한 갈릭 수프는 정말이지 갈릭 그 자체였다. 쌀쌀한 날씨에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서의 후각을 자극하는 갈릭 향은 우리에게 익숙한 편안함을 느끼게 했고, 이어서 나오는 식사-옆 테이블과 다른 음식-역시 고기는 부드럽고 야채는 적당히 구워졌으며 커피는 향긋했다. 맥주야 두말할 필요 없지 않겠는가, 체코인데.
그날 체스키 크룸로프에는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여행에는 언제나 변수가 따른다. 부득이한 상황인 경우도 있고 여행자가 그 변수를 만들기도 한다. 여행의 묘미는 그 변수를 즐기는 것에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때 목적지인 체스키 크룸로프만을 향해 달렸다면 지금 이렇게 그날을 회상하며 그 바람 소리를 떠올리는 일은 없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환상적인 갈릭 수프 맛도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