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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Nov 15. 2022

엄마도 아빠도 없는  하늘 아래 망고

타인의 망고 돌보기


망고의 아빠, 즉 남편이 수술 일정이 빠르게 잡혔다. 척수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받아야 할 수술이었다. 빠르게 잡힌 일정이 다행이면서도 맘 한구석이 계속 불편한 건 망고를 어디에 맡기냐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주보호자인 나는 외출이나 외박이 전면 금지되어 환자와 꼬박 같이 병원생활을 해야 했다. 몇 밤이 될지도 모르는 아득한 시간을. 적어도 망고에게 그렇게 느껴질 그 시간들을. 남편에게 남겨두고 여행을 떠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친정엄마가 돌봐 주신다는 제안을 하셨지만, 친정에 이미 동거 중인 토이푸들, 별이 있고, 집안일에 늘 바쁘신 엄마에게 덤으로 망고까지 얹어놓기가 영 마음이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급하게 앱을 깔고 동네에 맡길만한 펫시터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친절하냐 안 하냐의 문제를 떠나서 영 낯선 곳에 망고를 던져놓고 올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애견 호텔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망고를 호텔이나 펫시터에게 맡겨 잠을 재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미국에 살 때는 근처에 토이푸들을 키우는 언니와 상부상조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서로 시간을 조율해 집을 떠났다.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막상 그날에 닥쳐서야 동생이 우리 집으로 와서 망고를 데려가야 하는 사달이 났다.

 이후 망고는 4박 5일을 엄마와 동생 가족과 함께 머물렀다. 보내기 전엔 그리 걱정이 되더니, 가고 나서는 남편 수술이다 뭐다 긴장했던 탓인지 망고 생각은 많이 할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나 동생이 전해주는 소식에 안심하고 웃음 지울 수 있었다.





망고를 타인, 혹은 친정엄마에게 부탁하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이 아이가 ‘실외배변견’이란 점이다. 나는 그 녀석의 보호자이니 하루에 네 번씩 꼬박 데리고 나가지만, 정작 이를 그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하기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펫시터를 찾다 보니, 실외배변견은 하루돌봄비 더하기 만원을 해야 했다. 그만큼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 용변을 보게 하는 일은 일반 강아지 돌봄 더하기 알파인 셈이다. 게다가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자기 전 볼 일을 보게 하지만, 사람도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찾듯, 이 아이들도 밤새 고인 방광을 비워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날이 일찍 밝아오는 여름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7시가 넘어야 동이 트는 겨울 시즌엔,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기도 전에 깨서 날 바라보고 있는 망고의 모습을 애써 보지 않으려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몇 분여 간의 신경전을 한 끝에, 겨우 용기를 내어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걸치고 입은 한댓 발 나와서 대문을 나선다. 물론 나가서 백 미터도 걷기 전에 아침 공기의 상쾌함에 미소를 짓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마치 내가 ‘망고 돌보기 직장’에다니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엄마는 처음으로 망고를 나 없이 나흘을 돌보신 뒤, 날 볼 때마다 “망고 돌보느라 고생이 많다.”는 말씀을 건네신다. “엄마안, 뭐가 고생이야. 운동되고 좋지. 내가 망고 없이 나가서 걸을 사람 이우?”하고 맞받아 치지만, 12년간 망고의 실외 배변을 위해 헌신한 나의 노고의 시간 속엔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숨어있다. 뭐, 이제 와서 망고에게 “인마, 너 엄마가 널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공치사하자는 일이 아니다. 실외배변견을 타인에게 맡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부디 알아주시길.


또 다른 망고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 어려운 이유는 ‘망고의 급발진’ 때문이다.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님의 말대로, 대부분의 문제견은 산책만 해줘도 문제가 다 해결이 된다고 했듯이, 이들에게 산책이란,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순위에 놓이는 일이다. 얼마 전, 티브이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래퍼 크러쉬가 반려견 두 마리를 매일 따로따로 산책시키는 것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한 적이 있다. 가서 손잡아 주고 애쓴다고 등이라도 토닥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망고도 하루에 두 번 긴 산책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렇게 두 번이다. 다 좋다. 산책을 하며 변화해 가는 나무들, 풀들, 꽃들, 새들이 모두 반갑고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데 망고는 사회성이 없고, 주인을 지키느라 지나치게 다른 강아지들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만나면 얌전히 걷다가도 급발진하여 달려들곤 한다. 물론 보호자인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 익숙하여 알아서 피하고, 미처 피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견주 분에게 미안하단 말을 연신하며 망고를 얼른 안아 든다. 그러나 망고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망고를 산책시킬 땐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언니도 망고를 홀로 산책시키다가 망고가 마주 오던 강아지에게 급하게 달려드느라 리드 줄을 강하게 당긴 바람에  언니의 약한 팔꿈치 근육이 놀라 오래도록 고생한 적이 있다.

그런 상황이 올까 봐 타인에게 망고 산책을 맡기기가 어렵다. 훈련 부족임을 알면서도, 게으른 탓에 그냥 그런대로 내가 핸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산책하곤 했다. 그런 타성에 젖은 우리들의 산책 탓에 망고는 엄마만이 돌볼 수 있는  문제견 아닌 문제견이 되고 말았고, 그 점이 이런 위급한 상황에선 마음의 돌덩이가 되었다.

이후, 엄마에게 동생에게 그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반성했지만, 난 오늘도 그대로 망고와 내 식대로의 산책을 했다. 언젠가 아니 내일부터라도 트릿을 준비 해나가 망고를 훈련시키리라는 약속을 혼자 속으로 해보며… 과연 지켜질까?


친정에는 같이 살고 있는 토이 푸들 ‘’이 있다. 뚜한 망고와는 달리 애교만점, 생기발랄, 귀염둥이 그 자체의 세 살 청소년기 강아지이다. 망고는 집 밖에 나가면, 세상이 제 세상인 양 들뜨고 의기양양하지만, 집안에서는 주로 먹거나 자기만 한다. 물론 나이 영향도 있다. 반면, 별이는 온 집안이 별이의 놀이터이자 무대이며, 타인으로 부터 지켜야 할 공간이다. 그래서 망고가 나타나면 별이는 망고 감시체제 모드가 되어 망고를 이뻐해주려 하는 가족 일원으로부터 망고를 떼어내려 무던히도 애쓴다. 그 덕에 망고는 주로 별이 없는 곳을 골라 다니며 잠을 청한다. 망고와 같이 친정에 많이 드나들었어서, 망고도 익숙해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내가 없을 때 망고는 어떻게 적응할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말씀으로는 주로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덕분에 애꿎은 별이는 할머니한테 2순위로 밀려나는 서러움을 받았다는데, 이 자리를 빌려 망고와 함께 공간을 공유해 주고 할머니 품을 내어 준 별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이좋아 보이는 듯한 뒷모습    by 동생



혼자 해도 재미있지만, 함께 하면 더 신나는 것이 장난 아닐까. 강아지들도 함께 짖으면 더 신이 나서 왈왈 짖어댄다. 망고는 배가 고프거나 밖에 나가고 싶을 때, “멍”하고 단발음의 말을 걸기도 한다. 즉, 그리 시끄러운 아이는 아닌데, 단 낯선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서 택배나 배달기사님의 인기척이 들리면 엄청 흥분하여 짖어댄다. 강형욱의 유튜브 채널 <견종 백과>에서 보니, 푸들이 많이 짖는 편이라 한다. 별이 또한 토이 푸들인지라 한 짖음 하여, 망고와 만나면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신나게 짖어대는 통에 우리 모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훈련을 시키려 해도 둘이 같이 있을 때는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이 짖어대기 때문에 훈련이고 뭐고 아주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또한 망고를 다른 곳에 맡기기 어려운 이유이다.




내가 데리고  때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타인에게 맡겨졌을 때는  확대되어 드러난다. 망고 보호자 경력 12년이 넘어서야 또 새롭게 깨닫는다. 결국은 나의 훈련 방식의 모자람으로 인해 타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문제견이 된 듯하다. 강아지 훈련이란, 강아지 종족과 인간이라는 종족이 같이 살아가며 그들이 지켜야 할 예의를 배워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강형욱 훈련사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늘 메시지를 전해왔다. 인간과 어울려 살수록, 다견 가정일수록, 지켜야 할 선을 알려주는 것이 반려견에게는 안정감을, 장기간 같이 살아갈 보호자와 그 가족과의 관계에는 원만함을 준다는. 요즘 티브이에 등장하는 문제견들은 보호자의 지나친 사랑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망고도 그중 하나라면 하나인 것 같다. 망고가 싫어하는 것들을 나름 내가 힘겹게 커버해 가며 살다가, 부득이하게 타인에게 맡겨졌을 때, 망고의 모든 것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고, 나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만일 망고가 우리 가족의 신입 일원이라면, 지금의 나는 열심히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가며 훈련 공부를 배워나가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12년 전의 나는 그런 쪽으론 아주 무지했고, 또 이제 12년 넘게 망고와 사는 나는 타성에 젖어 이제 와서 훈련은 무슨 훈련이야 하는 게으른 엄마이다. 망고를 훈련시키겠다는 의지도 없고, 망고 또한 배우려 하는 생각도 없다. 그 예로 망고는 ‘앉아’는 알아도 ‘엎드려’는 모른다. 한 번은 나도 끝까지 해보리라 맘먹고 간식을 손에 쥐고 엎드려 훈련에 돌입했으나, 앉아서 기다리다 지친 망고는 이내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누워버렸다. 티브이의 개들은 앉아서 생각하다가 엎드리던데 말이다. 망고는 포기가 빠르다. 보통 노즈 워크 장난감도 하다가 안되면 바로 포기해 버리는 쪽이다. 그때마다 언니의 반려견 콩이가 와서 그 어려운 숙제를 다 해결해 주곤 했었다. 아, 모두 나의 변명일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12살 넘은 망고에게 훈련을 시켜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든다. 그저 나와 사는 데는 큰 불편은 없으니까!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매사 불편하다. 산책할 때, 차 탈 때, 그리고 애견카페나 애견 운동장에 갈 수 없을 때, 타인이 집에 방문했을 때 등등 온통 신경 쓰이는 상황이다. 이미 충분히 그런 상황들에 익숙해져 있어서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못할 뿐이다. 앞으로 망고 돌봄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 또 분명히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에 돌덩이를 안고 망고를 바라보며 한숨짓겠지. 다는 아니더라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산책 중 급발진’ 행동은 아까도 언급했지만, 꼭 노력해 보아야겠다. 게으른 나를 다그치기 위해 훗날, 망고의 훈련 과정을 이곳, 브런치에서 나눠보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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