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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Dec 07. 2022

나는 인간의 형상을 한 개?

망고의 눈에 비친 내 모습


망고는 요즘 산책 중, 엄마가  안 주던 간식을 느닷없이 주기 시작한 것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 엄마가 드디어 개과천선 했구나? 아니면, 만에 하나라도 아, 다른 개 친구를 만나면 덤벼들지 말고 얌전히 앉아야 하는 거구나?



잘게 자른 말린 오리고기를 한 움큼 봉지에 담아 다른 산책견들이 지나갈 때마다 "앉아, 기다려, 옳지!!" 하며 오리고기 하나를 주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브런치 글 쓴 며칠 후부터(게으른 엄마) 시작했으니 못해도 일주일은 해왔다. 그동안 망고가 이 간식의 의미를 이해했기를 바라… 는 건 희망사항이고, 아직은 갈 길이 먼 듯하다.


이틀 전에 내가 망고 응가 봉지를 공원 휴지통에 버리는 사이, 반대편 쪽에 뒷모습으로 서있던 아저씨 앞에 강아지가 앉아 있던 것을 망고가 먼저 발견한 것이다. 아, 우리의 망고는. 그동안 내가 지한테 바친 수업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리드 줄을 당기며 ‘왈왈’ 짖어대고 말았다. 나도 잘 안다. 13살이 다 되어가는 노령견에게, 새삼 산책 훈련을 고작 일주일 남짓 시켜놓고, 망고가 다른 개를 보자마자 앉아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 엄마, 절 보세여. 제가 앉았거든요. 얼른 말린 오리고기 한쪽 주시죠!”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이 산책 훈련은 내가 먼저 다른 산책견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망고와 거의 동시에 발견했을 때에만 유효하다. 아 직 은!!! 그래서 망고에게 선수를 뺏길세라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근처에 개들을 탐지하려 애쓰고 있다.

내가 먼저 산책견을 발견하면, 망고에게 간식을 봉지째 들이밀며 냄새를 맡게 한 후,  앉아를 시키고 셋까지 셀 정도의 기다림이 완성되면  간식을 하나 꺼내 주었다. 이 행동을 다른 개가 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천천히 서너 번 정도 반복한다. 혹 뒤늦게 알게 된 망고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흥분의 기색을 보였지만, 간식 앞에 장사 없다는 옛 속담(?)처럼 간식을 마다하고 그 개를 쫓아가진 않았다. 은근히 뿌듯해하던 찰나에 망고는 나의 환상을 산산이 깨부수어 준 것이다. 하하하…




이무렵, 애견훈련사이자 동물 행동 심리 전문가인 이종세 님이 쓴 <재미있고 쉬운 강아지 훈련 노트>라는 책을 우연히 찾게 되어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뭔지 모를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듯도 하였다. 만일 내가 다시 4개월의 망고를 키운다면야…. 그러나, 옆에 길게 누워 있는 나이 든 망고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것이 다 무슨 소용 이리요 싶다.


저자의 말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았던 대목은 “사람은 개를 사람처럼 대하고, 개들은 사람을 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 행동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망고를 12년 전에 만났을 무렵, 친구 어머니께서 아무리 이뻐도 “개는 개일뿐”이니, 너무 개를 이뻐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참 무정도 하신 분이구나’ 생각했는데, 그 말인즉슨, ‘개의 사고방식을 준수해 주어야 한다’는 뜻임을 이제야 짐작해 본다. 당연히 이뻐해도 된다. 절제된 애정이 필요할 뿐이다.


개들은 주인이 자신에게 감성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기보다는
무리의 생존을 위해서 강하고 침착하고 자신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42쪽)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반려견은 자신이 리더라고 생각하는 ‘알파 증후군’에 걸리게 된다고 저자는 경고를 한다. ‘점점 주인의 말을 잘 안 듣게 되거나, 심하게 짖거나, 으르렁거리거나, 사람을 물거나, 분리불안증” 같은 문제 행동들은 바로 이 ‘알파 증후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44쪽)



그렇다면, 이 사랑스럽기만 한 물체 앞에서 우리라는 주인은 대체 어떤 식으로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리더로서 인정받을 수 있단 말인가!!

문득, 망고가 생후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이웃 가족이 놀러 왔던 때가 떠올랐다. 그 가족의 아빠는 사람이 보아도 꽤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캐릭터였는데, 망고는 그날 시종일관 그 아저씨 곁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그때 그분은 ‘개들이 리더를 제일 먼저 알아보는 거라고’ 하며 껄껄 웃었는데, 망고는 나약해 보이는 제 주인보다 그 아저씨가 리더로 마음에 들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슬퍼졌다.


저자가 말하는 집에서 개에게 지나친 애정을 표현하기 전에 주의할 점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42쪽)

개와 사람의 주거 공간과 식사 공간을 분리한다. 아직 서열이 확립되지 않은 강아지는 자유 배식을 하지 않는다. 시간 급식과 포상 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절대 식탁에서 사람의 음식을 주지 않는다. 참고로 강형욱 훈련사님은 반려견에게 사료를 먼저 준 후 급식이 끝나면, 그들을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낸 후에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이상적이라 생각은 했지만, 막둥이 느낌의 망고에겐 참으로 어렵기 짝이 없는 훈련이 아닐 수 없다.


개를 데리고 자거나 자주 안아주지 않는다. 이것은 더 어려운 미션이다. 아니 고문에 가깝다.


개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과도한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호들갑 떨지 말라는 건데, 난 문 앞에서 부터 솔 톤으로 망고야를 부르며 들어가는 호들갑형 엄마인 걸….


‘앉아, 기다려’ 같은 복종 예절 교육을 지속적으로 가르친다. 이건 좀 하는 편이긴 한데, 말하자면, 내가 아닌 간식 앞에 복종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망고에게 믿음직하지 못한 리더이다. 망고는 나를 지키기 위해 십여 년 간 안간힘을 써온 것인가!! 아, 참담하다. 이런 가운데, 산책하며 진행 중인 요즘의 훈련이 과연 먹힐 것인지 의구심이 대폭 증가했다. 뭐 그래도 난 꾸준히 해볼 거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내 소망은 망고가 공공장소, 즉 애견 운동장이라든지 카페에서 적어도 다른 개들을 쫓아다니며 짖지 않기이다. 이것도 아주 늦은 감이 많은 후회이지만, 어쨌거나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면 아래와 같다.(144쪽)


먼저 사람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그 공간에 익숙하게 해 준다.


다음, 강아지 한두 마리 정도가 있을만한 시간에 방문해 본다.


지속적으로 방문한다. 이 과정에서 가능한 한 개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즉, 부추기거나, 겁을 내는 개를 안심시키려 하거나, 억제하거나, 달래지 않는다. 개가 주인 옆에만 있으려 한다면, 주인은 느린 속도로 계속 움직여 준다.


모든 과정은 무조건 차분한 상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난 한 번도 이런 지속적인 훈련을 한 적이 없다. (반성 또 반성 중인 엄마) 인스타그램의 화려한 사진에 이끌려,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애견 운동장에 들뜬 맘으로 남편과 망고와 손잡고 가본 경험이 있다. 그것은 사진만 부리나케 찍고 한 시간도 안되어 망고를 안고 허겁지겁 되돌아 나온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망고가 다른 어여쁜 강아지들의 뒤를 연신 쫓아다니며 캉캉 짖어댔기 때문이다. 마침 그곳은 젊은 청년들이 삼삼오오 무리로 반려견 친구들을 데리고 와 놀아주고 있었기에, 망고는  그들에게 낯선 불청객이기만 했다.

망고는 그곳에서도 나약한 제 부하들을 (남편과 나?) 지키려 무던히 애썼던 것이리라. 가뜩이나 심성도 약한 망고인데 말이다. 그 후 우리는 강아지들이 많을 법한 곳은 절대 가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제 입양을 한 분들이라면, 그리고 고려중인 분들이라면, 이 저자의 책을 읽어 볼 것을 추천할 따름이다.




망고 입양 당시, 그러니까 12년 전에 미국 동물 병원의 한 의사 선생님이 망고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라는’ 말로 강한 충격을 먹었던 것처럼, 난 또  이 책을 보며 ‘아 참, 망고는 사람이 아니지!! ‘를 그만큼의 강도로 새삼 깨달았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산책로 입구에 당당히 서서 주위를 열심히 경계하는 태세를 보여주던 망고.

난 이제와 그런 망고에게 앞의 규칙들을 내세워 강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그냥 우리 산책이나 편안히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산책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앉아, 기다려, 옳지!” 훈련이라도 꾸준히 해보자.

결론은 버킹검이다.(50대 이상만 이해할 수 있을 농담일까?!) 열심히 체크해가며 읽어놓고 이런 결론이라니.. 허탈하다.


열심히 감시중인 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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