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운전이 어려운 이유
나 장롱면허야. 그래도 차는 렌트해야지!
제주에 오는 지인들에게 가끔 듣는 말이다. 면허 따고 나서는 운전 안 해봤는데 제주 가서 운전 한 번 해보지 뭐. 차도 별로 없다는데 그냥 직진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제주는 쏟아져 나오는 렌터카, 렌터카를 싫어하는 도민, 연세 많으신 운전자들이 한꺼번에 모여 다니는 특별한 곳이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운전 경력이 1년이 채 안되었던 나는 이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아 제법 능숙한 운전자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어운전이 습관이 되었다. 초보 운전자뿐만 아니라 운전 경력이 꽤 있는 사람이더라도 낯선 길에서 낯선 차를 가지고 운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운전이 미숙한 사람이 이 낯선 제주에서 남의 차를 가지고 운전 연습을 한다고 왔으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사실 제주는 운전하기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다. 시내는 종로만큼 복잡하고, 오거리와 로터리가 많다. 게다가 밤에는 가로등이 있긴 하지만 주변에 불 켜진 건물이 없어 깜깜하다. 또 길이 좁고, 1차선인 곳이 많아 천천히 가다가 욕먹기 십상이다. 갑자기 길을 가다가 깜빡이를 켜고 정차하는 차, 길을 몰라 역주행해오는 차, 풍경을 보느라 차선을 넘어가며 천천히 달리는 차, 주차 금지구역인데 주차해놓고 사라진 차 등 간혹, 솔직히 말하자면 자주 이런 렌터카들과 만나면 번호판 ㅎ만 봐도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어제는 밤 11시에 집에 가는데 앞에 검정 렌터카가 전조등을 안 켜고 신나게 달리고 있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제 흔한 일이라 다시 정신 차리고 운전대를 고쳐 잡고 집에 도착했다. 동네에선 이렇게 '어휴 저 렌터카 좀 봐' 해놓고 나도 서귀포나 성산 쪽으로 놀러 갈 땐 길을 잘 몰라 성격 급한 아저씨들에게 추월당하기 십상이다. 로터리는 또 어떤가. 회전차량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제주에선 그저 용감하게 들이대는 차가 먼저 가는 것이다. 혼자 운전할 때도 그랬지만 이제 아기를 태우고 운전을 하니 방어운전만이 답이다. 내 앞의 차가 언제 멈출지 모른다, 서두르지 말고 일찍 나가서 천천히 가자. 어디서든 방어운전이 안전하지만 제주에선 특히 더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건 관광지에서의 주차는 조금 수월하다는 것이다. 오름이나, 공원 같은 관광지는 주차장이 넓기 때문에 주차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내에서 주차는 서울이나 다름없다. 제주에 와서 생긴 습관 중 하나는 시내에 나갈 때는 꼭 주차공간을 미리 찾아본다는 것이다. 건물 내에 주차장이 있는지 없다면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있는지 확인하는 건 필수이다. 처음엔 잘 몰라서 주차 자리를 찾아 건물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다. 다행히 제주 시내에 곳곳에 공영 주차장이 잘 되어 있어서 도보 15분 내로 주차장이 있는 편이다. 제주는 90%가 현무암 지대이기 때문에 건물에 지하 주차장이 거의 없다. 있어도 지하 1층이 전부라 시내는 늘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또 사람이 많이 몰리는 해수욕장 근처도 주차 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여름철 해수욕장이나 시내에 차를 가지고 간다면 공영 주차장을 꼭 찾아보고 가길 추천한다.
나는 운전이 능숙하기 전 제주에 여행을 왔을 때 감히 렌트할 생각도 못해 사실 운전을 못하는데 렌트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다니는 여행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의 풍경, 진짜 제주를 볼 수 있다. 또 버스 안에서는 관광지에서는 들을 일이 없는 할머니들의 제주 사투리를 들을 기회가 생긴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목적지에 가면서 인스타그램에서는 핫하지 않지만 나만 아는 예쁜 카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우연히 발견한 해바라기 밭에서 혼자 조용히 꽃을 즐길 수도 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제주를 둘러보시고 사고도 조금 줄어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