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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과 비효율, 결과와 과정, 확신과 의심

by 육선이

(요즘 들어 내가 구닥다리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을... 자주 느끼고 있다. 글에서도 쉰내 주의...ㅎ)



1. 작년 12월 3일부터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나의 신념과 대립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다.



2. 가장 큰 문제는 나와 신념이 너무 다른 것 같은 사람들을 볼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보통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라거나 '그러려니 해'라며 넘기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까..? (그덕에 공부를 코딱지만큼이라도 하게 되지만...)



3. 어떤 사람들을 본다.


- 가짜뉴스나 음모론을 의심 없이 강하게 확신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렵지 않게 반례를 상상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사람들을 본다.


- 부국강병을 위해서라면 단기간 정도는 독재도 괜찮다는 사람들을 본다.


- 목표를 위해 그 외의 것들을 기꺼이 수단화하는 사람들을 본다.



4.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내 나름의 (엉터리)해석법이 생겼다.


- 효율을 추구하고 비효율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 결과를 중시하고 과정을 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 목표를 중시하고 수단을 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 확신을 사랑하고 의심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 이 중 한개의 특성을 가진 사람은 다른 특성도 가진 경우가 많다.



5. 부국강병, 경제적 자유, 월 1천 부자되기, 알파메일 되기, 가짜뉴스 믿기, 음모론 믿기 - 이런 것들이 효율/결과/목표/확신에 대한 편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6. 여기에는 강한 자기애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강대국 백성으로서의 자신, 경제적으로 상위 계급에 등극한 자신, 떵떵거리고 큰소리 칠 자격이 있는 자신, 강한 남성으로서의 자신, 선동되지 않은 소수의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신, 이 모든 게 '나와 달리 멍청한 타자'의 존재를 상정하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만을 사랑하게 만드는 거라면... 과장일까?



7. 이상적인 소리만 하면서 다수/주류 집단이 처한 실존적 위협까지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그들이 누리는 안온한 일상이 사실은 한 장 살얼음 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도 역사에서 여러 번 증명되어 왔으니까. 다만 그게 '옳은 것이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 과정에서 누구부터, 무엇부터 희생되었는지도 잊으면 안 되고,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막는 것도 다수/주류의 실존적 위협을 막는 것 만큼이나, 혹은 관점에 따라 그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소심하게 고백하자면 나 역시 다수/주류 집단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겠지만...



8.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기후 위기가 나날이 심해지고, 같은 추상적인 수사만으로도 인간 세상이 얼마나 버겁고 숨가쁜 곳인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보다 실용적이고 실제로 일도 잘 하고, 문제 해결도 많이 해 본 사람들에게 내가 의존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던 결과, 목표, 효율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과정, 수단, 비효율을 지나치게 혐오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굳이 몇년 동안 몇명이 죽었고, 사상적으로 무엇이 도래했고, 그게 또 어떤 악순환을 만들었는지 등등을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9. 또 잃고 나서야 무참한 폐허 위에서 반성하고 성찰하게 될까봐 두렵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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